아무도 모른다/2005.05 ~ 2005.12
2005년 6월 27일, 여자의 얼굴
dancingufo
2005. 6. 28. 04:01
검은 물을 바라본다. 물 위에 반짝이는 불빛을 바라본다. 넋을 잃는다. 그리고 그 여자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 여자의 얼굴은 어쩐지 불행이나 어두움이란 말과 잘 어울린다. 나는 날카롭던 여자의 두 눈을 떠올리며, 여자의 목소리 역시 날카로웠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나는 여자의 목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없다. 분명 여자와 두어마디의 대화를 나눈 적이 있지만, 어쩐 일인지 끝끝내 여자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기억은 없다. 생생한 것은 오직 여자의 얼굴. 아름답지도 우아하지도 곱지도 마음에 들지도 않았던 얼굴. 그러므로 기억할 이유도 필요도 없는 얼굴이지만, 문득문득 살다가 그 여자의 얼굴은 떠오른다. 조용히 앉아서 검은 물을 바라보다가. 그 물 위에서 반짝이는 불빛을 바라보다가.
동정, 이거나 동질감, 이었을까. 안쓰러웠던 걸까. 마음이 아픈 걸까. 역시 이번에도 내 감정에 대해서 잘 모르겠다. 나 스스로는 내가 호불호가 확실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나는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도 너무 엄격하고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도 너무 너그럽다. 때문에 내가 이것을 좋아하는 것이 맞는지, 내가 이것을 싫어하는 것이 맞는지 알 수 없을 때가 더 많다. 어떤 것도 내게 확신으로 다가오진 않는다. 특별하다, 는 것이 정말로 특별한 것, 이 맞는지. 놓치면 안 되는 것이 과연 당신이 맞는지. 없으면 안 되는 것이 과연 있기는 한 건지. 역시 절심함이 결핍된 탓이다. 치열하거나 절실한 감정이 천성적으로 결핍되어 있는 탓.
가만히 자리에 누워있고 싶다. 사람들이 자꾸만 나를 찾아온다. 내 감정과 무관하게 당연히 해야하는 일들이 밀려온다. 늘 그렇듯이 견딜 수 없이 짜증이 난다. 이럴 때마다 내가 과연, 길을 걸어갈 때 타인과 나란히 걸어갈 인격을 갖췄는지 의심스럽다. 나는 현명하거나 지혜롭거나 똑똑한 사람이 될 수는 있지만, 설사 그렇다해도 확실히 미성숙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관계를 부정하면서, 타인을 좋아한다는 것은 모순된 일이다. 지금 내가 왔다가, 다시 돌아갔다가, 또 다시 돌아오는 길 위에 서있는 것은 모든 것이 부정확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살아오는 동안 줄곧 내 마음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고민했다.
이렇게 내가, 그 여자의 얼굴을 습관처럼 생각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 여자가 가진 자의식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것이 얼마나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고 또 병들게 하는지 알고 있다. 징그러운 괴물을 마주친 것처럼, 나는 여자에게 본능적인 거부감을 가졌다. 그것은 모나고 비틀린 것에 대한 혐오이자 경멸이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그 여자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이 바로 내 마음이다. 끊임없이 분열되며, 언제나 불명확한- 이 마음을 종잡을 수 있었던 적은 한번도 없다. 그러므로 여자의 얼굴이 사라지는 데 얼만큼의 시간이 필요할 지 지금으로선 짐작할 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