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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교육

부에노스 아이레스

dancingufo 2005. 5. 13. 00:16



몇번을 다시 본 것 같지만 언제나 아직 다 보지 못한 영화처럼 아쉬움이 남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육체의 아름다움에 쉽게 혹하는 내가, 왜소하고 볼품없고 유순하기만 하며 때로는 초라한, 양조위라는 배우에게 반한 기억.




양조위에 대한 기억.

1. 첩혈속집. 유덕화에 품에 안겨 피 흘리던 어린 사내. 무섭고 두려운 것이 많던, 툭하면 실수나 저지르던, 결국엔 등장인물 중 최초로 죽음을 만났고 죽으면서도 무섭다고 울었던 아량. 그 아량을 껴안고 죽음을 믿지 않던 오경관보다도 내 마음을 더 아프게 만들었던, 그래서 처음으로 유덕화나 장국영, 주윤발 말고도 홍콩배우가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었던 첩혈속집의 양조위. 그것이 첫 만남.

2. 비정성시. 사진관을 꾸려가는 4형제의 막내. 무언가로부터 언제나 소외되어 있는 듯이 느껴졌던 문청. 가족과 자신의 비극을 그저 눈빛 하나로, 일관된 침묵 따위로, 그렇지만 누구보다 절실한 태도로 말을 걸어온 귀머거리이면서 또한 벙어리인, 비정성시의 양조위. 그것이 내 마음을 아프게 만든 시작.

3. 부에노스 아이레스. 해피 투게더보다 내가 좋아하는 제목. 살아남았고, 돌아왔지만 그 후로 행복하게 살았으리라고는 말해줄 수 없는 아휘. 혹시나 연인이 떠날까봐 담배를 상자째 사재어놓고, 두 손을 쓰지 못하는 연인을 보며 고통보다도 솔직하게 기쁨을 느끼는, 그렇지만 결국에는 아무것도 지키지 못하고,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울음뿐인 채로 홍콩 거리를 헤매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양조위. 그것이 내가 잊지 못하는 장면.

4. 화양연화. 미묘한 그늘. 상처받은 사람만이 보일 수 있는 표정. 유순하고 개성없던 얼굴이 어느 새 시대의 우울을 가로지르게 하는, 인생에 있어 가장 아름다운 시간의 차우. 이 사람을 보는 일이 브래드 피트를 보는 것만큼이나 흥미롭다는 걸 느끼게 해주었던 화양연화의 양조위. 이것이 양조위를 그리워하게 만드는 순간.

5. 무간도. 눈썹 끝 한 자락에도 사악한 기운은 담을 수 없는 얼굴. 털털한 웃음 한 번으로 쓸쓸하고 서러운 인생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사람. 경찰옷을 입어도 어울리지 않고, 범죄조직 속에 서 있어도 어울리지 않는, 희망과 불안이 공존하는, 무간도의 양조위. 이것이 내가 느끼는 양조위의 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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