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5월 17일, 수다 본문

아무도 모른다/2005.05 ~ 2005.12

5월 17일, 수다

dancingufo 2005. 5. 17. 03:51

꿈을 꾼 적이 있다. 내가 스무살을 넘겼을 때, 엄마는 처음으로 내게 너는 뭐가 하고 싶냐고 물었다. 나는 웃으면서 대답했고, 엄마는 내 대답에 그런 건 'S씨 같은 사람이나 하는 거야.' 라고 말했다. 나는 컴퓨터를 하다가 엄마를 돌아보았다. 엄마는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나에게 삶을 지속시키는 유일한 이유, 라고 믿었다. 혈육도, 가족도, 나의 엄마조차도 그 이유를 이해할 수는 없는 거라는 걸- 그때 알았다.

내가 타인을 믿었던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믿고 싶기 때문에 믿지 않았던 타인은 있었다. 나는 손을 잡았고, 팔짱을 꼈고, 입을 맞췄고, 그 사람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외로워, 라고 말했을 때 그 사람은 외롭지 않게 같이 있어줄게, 라고 말했지만 살면서 나를 가장 외롭게 한 건 그 사람이었다. 말이나 약속이나 믿음은 사랑이 끝난 후에는 지켜지지도 않고, 지켜질 수도 없으며, 지켜질 필요도 없다는 걸- 그때 알았다.

나는 방에 앉아있다. 방을 쓸고 닦고, 이불을 탁탁 털고 침대보를 판판하게 펴는 것처럼 삶도 정리하고 싶다. 나는 끊임없이 생각을 하지만, 이 생각으로부터 어떤 결론을 도출하지는 못한다. 때로는 내가 무대 위의 배우처럼 우스꽝스럽다.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 눈을 감게 해주고 싶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떠든다. 그 입을 침묵하게 하고 싶다. 그렇지만, 그런 후에도, 내가 살 수 있을까. 관객의 눈과 입이 없는 배우는 아무런 삶의 의욕도 느끼지 못할 텐데.






나는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너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늘 내 마음을, 내 말을, 내 사랑을 믿지 않았다. 의심과 실망 속에 서있다. 너를 믿을 수 없어- 라고 말했고, 그런 너 때문에 마음 조려야 하는 나는 뭐가 돼- 라고 물었고. 그 눈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야. 믿기지 않으면 믿지 않아도 돼. 그렇지만 나는,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야.

친구의 옆모습을 본다. 혹시 따뜻함이 필요한 거냐고 묻고 싶다. 그렇다면 왜 하필 이 친구의 옆에 있는 것은 나인 걸까- 라고 생각한다. 어깨를 두드려주고, 다정하게 손을 잡아주고, 따뜻한 밥을 해주고, 그런 것이 사람에게는 위안이나 위로라면- 왜 하필 이 친구의 옆에 있는 것은 나일까.

스물 셋이 되었을 때, 넷이 되었을 때, 그리고 다섯과 여섯, 다시 이렇게 일곱이 된 후에도 나는 종종 생각한다. 헤어지길 잘 한 거야. 내 옆에 남아있지 않길 잘한거야. 사실 나보다 더 외로운 건 너였잖아. 그런 네가 외롭다는 것조차 나는 몰랐잖아. 그러니까 헤어지기로 한 건 잘한 거야. 날 두고 가기로 한 건 잘한 거야. 옳고, 바르고, 좋은 선택을 한 거야. 그때의 너는.





봄이 왔고, 서울은 푸른 색이다. 하늘을 보거나 앞을 보아야겠다고 생각을 한다. 원하는 게 있으면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보다 오래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삶은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길거나 오래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원하는 것을 하고, 바라는 것을 보고, 생각하는 것을 행해야 한다. 4월이 왔고, 꽃잎이 날렸고, 5월이 왔고, 태양이 뜨거워졌다. 나는 나이와 함께 어리석어지고, 시간과 함께 비겁해진다. 변명이 길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서워도 일단 달리고보는 무모함 같은 것, 나는 그것을 가져야 한다.

쉼없이 떠들면서 삶을 소진시키고 있다.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옷을 사고, 집을 마련하고, 그러면 정말로 이 마음이 안정이 될까. 통장에 잔고가 늘고, 더이상 지갑에 남은 돈 때문에 불안해하지 않고, 가고 싶은 곳을 여행하며, 사고 싶을 것을 사게 되면, 삶이 제대로 되었다고 느끼게 될까. 그래 그렇게 사는 동안 언젠가는 너도 잊겠지. 이름도 말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웃으면서 기억하는 것을 보면. 사는 동안 언젠가는 꿈도 잊겠지. 내가 삶을 가진 이유라고 생각했는데 안 하고도 이렇게 멀쩡한 것을 보면.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 아니었다면 삶을 지탱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정말 인간이 아니라면, 이렇게 모든 것을 시간으로 해결하려 들진 않았을 것이다. 내가 지구인이 아니라면 좋겠지만, 나는 너무나 흔해빠진- 식상한- 진부한- 하나의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그만, 내가 나를 책임져야겠다. 삶이 어디 생각이나 말만으로 해결될 만큼 그렇게 만만했던가.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