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5월 18일, 현기증 본문

아무도 모른다/2005.05 ~ 2005.12

5월 18일, 현기증

dancingufo 2005. 5. 18. 04:35

몸을 웅크리고 침대에 눕는다. 달팽이가 되어 땅 속으로 기어들어갈 듯한 기분이 된다. 세상은 빙빙 돌아 내가 원의 중심이 되어버린다. 무섭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이러다가 언젠가 내가 아프게 될까봐 무섭다.

예전에 엄마는 아픈 나를 업고 병원으로 가다가 힘이 들다며 그냥 집으로 돌아가 버린 적이 있다.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가도 좋았을 것이다. 엄마가 업고 병원까지 가기에는, 그때의 나는 너무 자라 있었다. 그런데 엄마는 그냥 나를 업은 채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병원에 가지 못했고, 방에 이불을 베고 누워 장난을 치고 있는 두 언니의 목소리를 들었다. 졸렸지만 방 안이 시끄러웠기 때문에 잠이 들 수 없었다. 엄마가 그런 언니들에게 짧은 야단을 쳤다. 나는 그 목소리에 엄마를 쳐다보았다. 엄마는 결국, 내가 나을 때까지 나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

엄마에 대한 기억은 늘 이런 식으로, 현실과 맞물려 되살아난다. 그대로 누워있다가는 정말로 땅 속으로 들어가버릴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나 앉는다. 몸을 움직인 탓일까. 위를 향해 오른 땅이 곡선이 되어 파도처럼 춤을 춘다. 타고난 건강체질이 아니었다면 견디지 못할 식습관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그러니까 이건 모두 다 내 탓. 그런데도 인간은 왜 아프면 아프다고 타인에게 말하고 싶어할까. 어째서 인간은 아픔과 외로움을 동반해서 느낄까. 피식 웃음이 난다. 요즘은 매일매일, 내가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는 듯한 기분이다.

엄마는 늘 내게, 이기적이어서 친구가 없다고 말했다. 사실 세 딸 중에서 가장 많은 친구와 어울리며 지낸 것이 나라는 사실을 엄마는 모른다. 엄마 눈에 나는, 언제나 철없고 이기적인 막내딸일 뿐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낯설어하는 것이다. 나는 어느 순간 엄마가 모르는 사람으로 자라버렸다. 엄마는 내가 책 대신 영화를 소비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걸 모른다. 엄마는 내가 주말마다 축구장을 다니고 있다는 걸 모르고, 엄마는 내가 서태지 대신 김은중에게 매일매일 사랑을 고백한다는 걸 모른다. 엄마는 내가 무엇이든 혼자 하는 것에 익숙하다는 걸 모르고, 엄마는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잘 웃고 잘 떠드는지 모른다. 내가 얼마나 거짓말을 잘하고, 내가 얼마나 허영에 가득찼으며, 내가 얼마나 고집스럽고, 내가 얼마나 약해빠졌는지, 엄마는 모른다. 엄마가 알던 나는, 아무데도 없다.

전화가 온다. 방문을 두드린다. 나는 내가 소통하길 원하는 대상하고만 소통하고 싶다. 그렇지만 좋은 것, 은 늘 싫은 것, 과 함께 오는 법이다.

나는 혼자 있고 싶다. 물론 나는 외롭다. 그렇지만 외로움 같은 것은 견딜 수 있다. 그래도 만약, 당신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나는 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왔다가 간다. 너를 좋아해, 라고 말하지만 유통기한이 없는 사람은 없다. 나는 일부러 타인에게 냉정하게 군 적은 없지만 그것이 상처가 될 수도 있었다는 걸 인정한다. 그래서 내게 똑같은 방식으로 생채기를 내고자 한다면, 사랑은 이미 끝난 것이다.

나는 당신이 내게, 무관심하다면 울어버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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