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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른다/2005.05 ~ 2005.12

5월 20일, 술을 마신다

dancingufo 2005. 5. 20. 04:57

술을 마신다.

처음 술을 마셨던 건 열 여섯살 때의 일이다. 아마 고등학교 입시를 앞두고 백일주 같은 걸 마셨던 모양이다. 잠깐, 몇 모금, 그렇게 마시다 말았으니 그때의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진짜 술을 마셨다, 라고 기억되는 건 열 일곱살 때부터이다. 어울려다니던 무리를 갑자기 바꿔버린 후에 나는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호프집을 들락거렸고 맥주와 소주를 번갈아 마셨으며 혼자 거리에서 구토를 하기도 했고 취기가 가라앉지 않아서 밤을 꼬박 샌 후에 아침도 먹지 못하고 등교를 하기도 했다.

술이 좋아서 마신 건 아니었다. 학교나 집을 겉돌며 말썽을 일으킨 것도 아니었다. 나는 모범생은 아니었을망정 선생들이 마음을 놓고 보는 우등생에 속하기는 했고, 착한 딸은 아니었을망정 걱정할 게 없는 바른 딸이긴 했다. 그렇지만 나는 술을 마셨다. 취할 만큼 마셨고, 그렇지만 쉽게 취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취한 친구들을 집으로 보내는 뒷정리는 늘 내 몫이었다. 나는 밤거리를 혼자 걷다가 얼굴의 홍조가 가라앉으면 집으로 돌아갔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엄마에게 돌아왔다는 인사를 했다. 그때 난 언니와 한 침대를 쓰고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우리 식구 중 그 누구도 내가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는 대신 호프집에서 술을 마시고 왔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그 해 내내, 내가 밤새 잠을 뒤척여야 했던 것은 불면증 탓이 아니라 술 때문이었다.

열 여덟과 열 아홉에는, 나에게 술이 필요없었다. 나는 다시 어울려 다니는 무리를 바꿔버렸고 그 친구들과의 시간에는 술이 없는 쪽이 더 어울렸다.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것은,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스무살 때부터였다. 나는 신입생이 되었고 하루가 멀다하고 술을 마실 일이 생겨났다. 그렇지만 특별히 선배나 동기들과 어울려 다니는 것에 취미를 붙이지 않은 나에게, 정말로 술을 많이 마셨다고 생각되는 날은 스물 한 살 때 찾아왔다.

스물 한 살. 나는 정말로 많은 술을 마셨다. 그때쯤의 나는 하루 걸러 하루씩의 시간을 취기에 오른 채로 보냈다. 친구들과 어울려서 살았고, 모르고 있었던 현실의 무게를 느꼈고, 우리는 그 무게를 함께 슬퍼했다. 나는 내 인생을 지탱하던 신념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그 의심 때문에 맨정신으로는 견딜 수가 없었고, 이 신념이 무너진 후에도 삶이 계속될 거란 사실이 끔찍했다. 엄마는 내게 등을 보였고, 그 등이 가슴에 생채기를 냈으며, 그 생채기를 낫게 할 방법을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애인은 입대를 준비하고 있었고, 나는 말로써도 행동으로써도 사랑을 증명할 방법을 알지 못했고, 결국 우리가 헤어지는 일에 동의해야 했다. 그 스물 한 살. 나는 정말로, 지독히도 많은 술을 마셨다.

그리고 그 후부터였을 것이다. 내가 조금도 술을 즐기지 않으면서 살게 된 것은. 헤어진 애인은 입대해버렸고, 나는 엄마의 어깨에서 내가 내려오는 것이 엄마가 더 많이 웃으면서 살 수 있는 길이라는 걸 인정했다. 친구들과는 다시 헤어져 살게 됐고, 나는 내가 믿든 그렇지 않든 나의 신념이 나의 유일한 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술을 마시지 않게 됐다. 가벼운 맥주 한 잔. 예쁜 캭테일 한 잔. 내가 마시는 술은 그것이 전부였다.

술을 마신다.

이제 나는 스물 일곱살이다. 예전에는 잔이 비는 족족 사람들이 채워주는 것을 억지로 마셨던 것 같은데, 이제는 빈 잔을 내가 채워도 좋다. 예전에는 절대로 취해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던 것 같은데, 이제는 적당히 취한 후가 기분이 좋다. 나는 아직도 '엄마'라는 말만 들어도 목이 아픈 마마걸이고, 나는 아직도 이 사람도 저 사람도 사랑할 가능성이 낮은 과거에 얽매인 사람이고, 나는 아직도 신념을 위해 절대로 목숨 따위 걸지 않는 비겁하고 게으른 사람이지만,

이제는 다시 술을 마신다. 살고 싶다, 는 생각을 한다. 사람처럼 살고 싶다. 웃으면서 살고 싶다. 희망을 가진 채로 살고 싶다. 거짓 말고, 거짓 말, 거짓 얼굴, 거짓 웃음, 거짓 행동, 그런 것 말고. 진심으로 웃으면서 살고 싶다. 진심을 얘기하고 진심을 들으면서 살고 싶다. 이 허무하고 쓸모없는 말들이 나를 나아지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끊임없이 바라고 생각하고 주문을 왼다. 나는 살고 싶다, 고. 그리고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절대로- 해야만 하고 놓을 수는 없다고.

적당히 나를 어지럽게 하는 취기가 좋아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골목을 오른다. 요리보고- 조리봐도- 술자리에서 불렀던 노래가 입에 배여 골목을 오르면서도 내내 흥얼거리고 있다. 사람이 없는 골목은 으스스하고 무섭다. 내 발자국 소리에 내가 놀라고 싶지 않아 괜히 더 즐거운 노래를 부르고 싶어진다. 아이스크림 한 입에 노래 한 구절. 아이스크림 두 입에 노래 두 구절. 팔짝 팔짝 뛰다가 신발이 벗겨질 뻔 한다. 아이처럼 웃자. 어린애처럼 뛰자. 대문 앞에 다다르니 거실에 불이 켜져있다. 딩동, 초인종을 누르면 대문 밖까지 들리는 노래 소리.

탁, 하고 대문이 열리면 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선다. 위를 올려다보니 하늘이 새까맣다. 문득, 도로 한 가운데서 별 좀 보자며 누워있던 니가 생각난다. 그때도 나는 니가 좀 유치해서 웃었겠지? 나란히 옆에 누워 하늘을 보면서 나는 좀 낯간지럽단 생각을 했겠지?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라고 나는 가끔 의심하지만 이런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이제 나는 웃으면서 생각한다. 정말로 나는 너를 사랑했다고. 정말로 나는 너를 너무나 사랑했다고. 이 말을 너에게 할 수 있었다면, 사는 것이 좀 더 빨리 괜찮아졌을 것이다.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지저분한 방을 대충 치워놓은 후에 컴퓨터를 켠다. 가난하고 외로워도 괜찮다. 돈 같은 거 많이 벌지 못해도 좋고, 이제 네가 돌아오지 않아도 좋다. 타인은 나를 위로하지 못하지만 나는 나를 위로할 수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의미없다고 생각한 말들이 화면 위로 오른다. 안녕하세요. 빙긋.

나는 다시 술을 마신다. 그리고 나는 이제 정말, 다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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