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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22일, 문제가 뭡니까? 본문

아무도 모른다/2005.05 ~ 2005.12

2005년 5월 22일, 문제가 뭡니까?

dancingufo 2005. 5. 22. 03:42

나는 하고 싶은 말을 잘 참지 못한다. 상황과 장소, 그리고 상대방에 따라 태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나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잘 참지 못하고 참지도 않는다. 그래서 물론 나를 유쾌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긴 하겠지만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다. 나는 미움받는 일에 익숙하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싫어하지 않는 이상 누가 나를 싫어하든 말든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다.





친구가 꼭 만나고 가라며 나를 데리고 간 곳에는 젊은 스님이 한 분 계셨다. 생년월일시를 묻고 이름을 물으시더니 다짜고짜 내게

"본인은 예의가 바른 편인가?"

라고 물으셨다. 나는 잠깐 웃음을 짓다가

"네."

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신 스님은

"예의없는 사람을 아주 싫어하네. 무식한 사람도 못 참아하고... 그 자꾸 따지고 들고 밝혀내는 거 좋아하지? 근데 그걸 안 하면 몸에 열이 식어서 계속하는 게 좋긴 한데. 가끔은 눈 감아주는 날도 있고 그래야지. 남의 얼굴에 더러운 거 묻어있으면 그거 모른 체 지나가주는 일이 없고 허구헌 날 그냥 거기다 대고 불을 켜버리니 사람들이 싫어할 때가 있잖아."

"인자함이 모자라. 사람을 이해하고 너그럽게 받아주는 거."

라며 내 성품을 꼬집으셨다. 함께 있던 친구는, 스님의 표현이 재미있는 듯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큭큭 웃음소리를 냈다. 어쩐지 나도 우스워져서 스님을 마주보고 앉아 한참 웃었다. 남이 보여주기 싫어하는 더러운 얼굴에다 대고 불을 켜버리는 사람이라니. 딱이야딱이야, 라는 친구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생각해도 맞는 말이었다. 나는 무엇이든 내 할 말이 있으면, 그냥 지나치는 성격이 못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싫어할 때가 있다는 걸 나도 잘 아는 채로 살아왔다.





인자함이란 뭘까, 라고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부족한 점이나 단점을 알면 고치려고 노력할까, 그런 궁금증도 일었다. 나는 한번도 나의 무엇을 고쳐봐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원래 이래. 이런 내가 싫으면 내 옆에 안 있으면 되잖아. 누구에게라도 그 이상의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나 이런 거 모르고 친해진 것도 아니고, 이제와서 고치라고 하면 내가 좀 당황스럽지. 나는 이런 내 논리가 맞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면 남들은 이런 말을 하지 않으면서 사는 것 같다. 그렇지만 자기를 고쳐나가면서 살지 못하는 건 나 뿐 아니라 결국, 다들 엇비슷하다. 그렇다면 대체, 특별히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란 무엇인 걸까? 이렇게 가끔 이쁨을 받듯 가끔 미움도 받으면서 사는 일이란 잘못된 걸까?







하루종일 온몸에 묻히고 다녔던 피곤이, 몸에 따뜻한 물을 가져다대자마자 철썩- 하고 소리를 내며 내 어깨를 무너뜨렸다. 스킨이나 로션을 바를 힘도 나지 않아서 그대로 누워버릴까 하다가 너무 지저분한 방이 눈에 걸려 벗어둔 옷들을 대충 옷장 속에 걸어넣었다. 결국 움직이던 몇 분 사이 잠은 달아나버렸고 나는 벌겋게 충혈된 눈을 하고선 잠시 바닥에 그대로 드러누웠다. 문득 A의 눈이 생각났다. 나는 이런 고민이나 우유부단함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타인의 마음을 무시할 자신은 있다. 그렇지만 과연 내 마음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러기에는 나는 나를, 너무나 좋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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