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2005년 5월 28일, <정체성> 中 본문

아무도 모른다/2005.05 ~ 2005.12

2005년 5월 28일, <정체성> 中

dancingufo 2005. 5. 30. 02:15

‘감정은 누구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며 그것은 그냥 생겨나고 모든 검열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무심코 눈이 훑어 내리던 페이지에 가슴팍을 탁- 쳐 내리는 구절이 있어 다시 한번 읽어본다. ‘어떤 행동이나 한번 내뱉은 말에 대해선 자책할 수 있지만 감정에 대해선 그럴 수 없으니 우리는 감정에 대해 아무런 힘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좀 더 제대로 이해해내기 위해 다시 한번 읽어본다. ‘감정에 대해선 그럴 수 없으니 우리는 감정에 대해 아무런 힘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엔 그 진실을 깨닫기 위해서 한 번 더 읽어본다. ‘감정에 대해선 그럴 수 없으니 우.리.는.감.정.에.대.해.아.무.런.힘.도.행.사.할.수.없.기.때.문.이.다.’

예를 들면 그런 것이다. 나의 괴로움은, 내가 나 스스로가 느끼는 모든 감정의 이유와 그 감정의 타당함에 대해 고민하는 데서 비롯된다. 나는 왜 계속해서 이 꿈을 꾸는가. 나는 왜 축구와 영화를 소비하는 일에 대해 즐거움을 느끼는가. 나는 왜 너를 좋아하고 생각하는가. 나는 왜 그를 미워하고 싫어하는가. 이 모든 감정을 내가 느끼는 이유와, 이 감정을 느끼는 것의 타당함을 생각하는 동안에는 나는 자유로워질 수도 없고 즐거워질 수도 없다. 그것은 그 감정이 내가 원한 것이 아니며, 나는 그 감정에 아무런 힘도 행사하지 않았고, 때문에 그 감정에 대해 자책할 필요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스스로 그 감정들에 대해 권한을 행사하고 책임을 지려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차피 불가능한 일. 원하는 동안에는 절대로 온전하게 즐거운 내가 될 수 없다.

지하철 안이 춥다. 짧게 내려오는 반팔로는 맨팔에 돋는 소름을 가라앉힐 수 없다.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니, 어느 덧 목적지에 가까워진 풍경이 보인다. 내가 괴로운 이유가 모두 내 안에 있듯이, 내가 즐거워진다면 그 이유 역시 내 안에서 생겨날 것이다. 내가 나를 조금만 내버려 둔다면, 내가 내 감정에 조금만 솔직하고 진실해진다면, 항상 똑같은 괴로움을 반복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똑같이 그때처럼 아프지 않아도 되고, 똑같이 소중한 걸 놓치지 않아도 되고, 똑같이 독한 척 돌아서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그렇다면 정말 나는, 이쯤에서 그만 생각을 멈춰야 하는 것일까.

나는 왜 계속해서 이 꿈을 꾸는가. 나는 왜 축구와 영화를 소비하는 일에 대해 즐거움을 느끼는가. 나는 왜 너를 좋아하고 생각하는가. 나는 왜 그를 미워하고 싫어하는가. 이 모든 내 감정들을 그냥,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는 것이 옳은 것일까. 이 꿈이 결국 나를 갉아먹어도? 축구와 영화가 내 모든 열정을 소진시켜도? 니가 절대로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대우하지 않아도? 그가 계속 많은 말로 날 답답하게 만들어도? 침묵하고, 눈을 감고, 내버려두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걸까.

어떤 행동이나 한번 내뱉은 말에 대해선 자책할 수 있지만 감정에 대해선 그럴 수 없으니 우리는 감정에 대해 아무런 힘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에-

내 모든 감정은 생겨날 자유가 있다... 이것이 진실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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