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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린,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본문

피도 눈물도 없이

전혜린,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dancingufo 2005. 5. 30. 22:09

[장 아제베도! 내가 원소로 환원하지 않도록 도와 줘! 정말 너의 도움이 필요해. 나도 생명 있는 뜨거운 몸이고 싶어. 가능하면 생명을 지속하고 싶어. 그런데 가끔 가끔 그 줄이 끊어지려고 하는 때가 있어. 그럴 때면 나는 미치고 말아. 내 속에 있는 이 악마를 나도 싫어하고 두려워하고 있어. 악마를 쫓아 줄 사람은 너야. 나를 살게 해줘.]

이것은 전혜린이 이 세상에 남긴 최후의 편지가 되었다. 2~3년 전에 문득 깨닫게 된 것이지만, 인간을 괴롭히는 것은 언제나 스스로의 마음이다. 그녀가 삶을 그만두는 순간까지 느꼈을 모든 고통과 괴로움은 세상이나 타인이 그녀에게 준 것이 아닐 것이다. 사람은 스스로의 마음이 생산하는 기쁨이나 슬픔으로 삶을 유지한다. 그리고 그 기쁨이나 슬픔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고 치유하고 극복하느냐- 하는 것은 각자가 해결해야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이다.

나는 그녀의 글에서 고통을 읽어내진 않는다. 그녀의 말들에 동의하지도 않으며, 그녀의 생각에 심취하지도 않는다. 다만 살고 있는 세대도, 가정 환경도, 교육 과정도, 열정을 바치는 대상도 너무나 다른 나와 그녀가- 어느 순간 결국은 비슷한 고통을 맞닥뜨리게 된다는 사실에 조금은 아이러니해진다. 때때로 느끼는 것은, 삶은 지극히 단순한 대상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자살이 극단적인 투정이나 극한 상황에서의 도피라고 생각하고는 한다. 그렇지만 타인에 대한 완전한 사랑이나 혈육에 대한 지극한 애정, 자신의 일과 신념에 대한 곧은 의식으로도 삶을 계속할 수 없는 순수한 그 자체로서의 고통- 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때문에 견딜 수 없다면 이들은 죽는 것이 맞다. 그것이 타인에게 상처가 되고, 또 자신에게 흠집을 남긴다 해도, 모든 인간이 이 세상에 났다는 이유만으로 죽어 없어지는 순간까지 무조건 참고 버텨내야 한다면 그건 너무 가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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