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2005년 9월 2일, 내 앞에 있는 현실 본문

아무도 모른다/2005.05 ~ 2005.12

2005년 9월 2일, 내 앞에 있는 현실

dancingufo 2005. 9. 3. 02:05

01.

어쩐지 마음이 좀 불안해졌다. 지하철이 들어오는데 술에 취한 아저씨는 자꾸만 노란 선 앞으로 발을 디뎠다. 뒤로 물러서 달라는 방송이 반복해서 흘러나왔지만, 비틀거리는 아저씨에겐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는 어쩐지 마음이 불안해져 멍하니 서서 그 모습을 쳐다만 보고 있었다. 방송을 내보내는 남자의 목소리는 점점 더 다급하고, 점점 더 크고, 점점 더 신경질적으로 변해갔다.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지하철의 불빛이 보였다. 순간 그 아저씨를 낚아채 뒤로 물러서게 만든 것은 내 옆에 서있던 젊은 남자였다.


02.

내 앞에서 죽음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사실, 에 대해 생각했다. 그것은 내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 과는 또 다른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저 마음이 멍해져 앞을 보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그 여자의 팔을 본 것은, 맨팔에 쓰윽- 하고 와닿는 그 감촉이 너무 부드러웠던 탓이었다.


03.

검은 머리를 길게 기르고, 검은 원피스를 입고 있는 그 여자의 팔에는 불에 데인 듯한 상처가 있었다. 가느다랗고 매끈해 보이는 그 팔에는 어울리지 않는 상처였다. 나는 어쩐지 그 상처가 낯 익어서 가만히 시선을 두고 있었다. 바라보고 있다보니, 슬픈 생각이 드는 상처였다. 크고, 도드라지고, 슬픈 생각이 드는, 그 여자의 상처는 그런 상처였다.


04.

마음이 편하지가 못했다. 터벅터벅 계단을 걸어오르고, 터벅터벅 어두운 골목길을 걸어오르며 생각했다. 마음이 편하지가 못했다. 마음이 불안했다. 마음이... 불길한 생각들에 사로잡히고 있었다.


05.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선 것은, 내가 발을 내딛은 그 바로 옆을 빠른 걸음걸이로 달아난 쥐 한 마리 때문이었다. 미처 소리를 지를 틈도 없었다. 급하게 뒤로 물러서느라 발을 헛디딘 참이었다. 발목이 쓰윽 꺾이다 만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정신을 차려 내 발 밑을 봤을 땐, 이미 쥐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06.

탁탁 내 볼을 두 손으로 때렸다. 왜 이렇게 넋을 놓고 다니는 건가, 싶어 나에게 좀 짜증이 치밀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들을 보고 불길하다고 느끼는 내 생각의 잘못이다 싶었다. 빨리 들어가서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걸음을 빨리 해 집 앞에 다다랐다.


07.

골목을 돌아 집 앞으로 걸어갈 때였다. 옆집 주차장 앞에 아래위로 하얀 옷을 입고 선 아주머니가 서있었다. 시선을 떼지 않고 집 앞까지 가는 동안, 아주머니는 나를 그냥 쳐다보고 있었다. 나도 그냥 그 아주머리를 쳐다보며 걷다가 갑자기 두 팔에 소름이 돋았다.

무서웠다. 시선을 되찾아 와 급하게 키홀더를 찾았지만, 이상하게 쉽게 손에 잡히질 않았다. 그러는 중에도 가만히 나를 보고 있는 아주머니의 시선이 느껴졌다.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고, 바람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무서웠다. 귀신이라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그래도 무서웠다. 겨우 키홀더를 찾아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땐, 손에 땀이 묻어나고 있었다. 마음이 불안했다. 마음이 불길한 생각들에 사로잡혀 있었다.


08.

평화를, 자신감을, 곧고 밝은 마음을 가지고 싶었다. 그렇지만 곧 어렵다고 생각해버리는 내 마음만이, 현실로서 내 앞에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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