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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도 눈물도 없이

무라카미 류, 스트레인지 데이스

dancingufo 2005. 9. 14. 00:57

01.

[낭비는 범죄다. 꼭 해야 할 필요도 없는 것, 그것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을 계속한다는 것은 옳지 않으며, 타인의 에너지만 낭비시킬 뿐이다. 재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놈들이 음악을 하고, 음악과는 정말 손톱에 때만큼도 인연이 없는 놈들이 그 CD를 사고 그 콘서트에서 미친 듯이 춤을 추다니, 재능이란 것은 위기감으로 지탱되는 의지가 아닌가. 그것은 왠지 하루하루가 지겹다고 24회 할부로 YS99를 사볼까 하는 것과는 다르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부끄러워질 정도의 거대한 낭비였다. 그 속에서 뭔가가 태어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가진 낭비가 아니라, 낭비라는 것도 모르고 무조건 행동하는 낭비이므로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건 낭비도 아니다. 눈속임이다.]


02.

[불안해 죽겠어? 악몽을 꿔? 정말 악몽이 두려워, 벗어던지고 싶어, 나도 나 자신을 잘 몰라, 하고 벽에다 똥칠하는 할망구가 될 때까지 그렇게 중얼거리며 살 생각이야. 그건 싫어? 엉? 그건 싫단 말이지. 뭔가 하고 싶긴 하군 그래. 그럼 벗어. 죽을 정도로 싫은 그 상태에서 도망치고 싶은데 못할 게 뭐가 있겠어? 옷 벗는 것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지.]


03.

[필사란 반드시 죽는다는 뜻이죠. 죽을 각오로 힘을 낸다고들 하지만 난 그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알겠어요? 만일 섬을 살 수 없다면, 그것을 자신의 죽음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이겠지요. 다시 말해 섬을 사고 싶다고 생각할 때, 섬을 사려고 하지 않는 자신을 무척 증오하는 일이에요. 그런 자신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요. 죽을 각오로 힘을 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힘을 내서 안 되면 미안해요, 하고 죽어버리면 그만이니까. 뭔가를 실현시키고 싶고, 뭔가를 실현할 수 없는 자신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는 식으로 생각하면 죽을 수 없을 거예요.]


04.

[나는 그대를 사랑하고 있다. 그렇지만 내게는 힘이 없으니 그대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헤어져야 한다. 다른 사람과 행복하게 지내도록... ... 그것은 상냥함이 아니라 하나의 감상에 지나지 않는다.]


05.

[점멸. 이 세상에는 지루함과 우울만이 있는데, 인간은 그 중 하나를 선택한다. 램프가 켜지면 우울이 되고 꺼지면 영원한 지루함이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없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제야 겨우 알게 되었지만, 아마도 이 세계에는 엄청나게 감미로운 우울이란 것이 존재할 터이다.

엄청나게 감미로운 우울은 무엇을 어느 정도 받아들였는가에 따라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받아들여야 할 것이 바로 눈 앞에 늘 준비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지루함은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그 반대일 것이다. 지루함은 눈에 보이지 않는 다층적인 틈 같은 것이어서, 강렬한 의지를 가지지 않으면 받아들일 마음이 없어도 몸 속으로 스며들고 만다.

우울은 우울로서 기체처럼 떠있는 것이 아니다. 우울에는 눈에 보이는 징후 같은 것이 있다. 우울의 싹, 우울의 징후는 늘 섹시하다. 마음을 설레게 하는 키스, 그런 것 속에 모든 우울이 감추어져 있다.

무력감에 의해 뭔가가 시작된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그러나 무력감만이 자신의 윤곽을 인식하게 한다.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나는 주변과는 전혀 다른 무엇을 무력감으로서만 확인해 왔다. 딱히 무력감 따위를 원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이십대 후반이 되면 지루함의 뒷면에 잘 숨어든다. 그리고 어느 때가 되면 세계에 균열이 일어나고, 진실이라는 유일한 옷을 걸치고 무력감은 밀려온다.

나는 하고 싶은 짓을 0.1퍼센트도 하지 않았고, 그것을 정말 하고 싶은지 아닌지조차 모른다. 그러나 나쁘진 않다.]


06.

나는 침묵한다. 류의 말이 왜 내게 고통인지 이제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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