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무라카미 하루키, 1973년의 핀볼 본문

피도 눈물도 없이

무라카미 하루키, 1973년의 핀볼

dancingufo 2005. 9. 17. 04:50

01.

[한 계절이 문을 열고 왔다가 물러가고, 또 한 계절이 다른 문을 열고 찾아온다. 사람들은 당황하여 문을 열고, 어이 잠깐만 기다려줘, 한 가지 얘기 안 한 게 있다구, 라고 외친다. 하지만 거기에는 아무도 없다. 문을 닫는다. 방안에는 벌써 한 계절이 의자에 자리잡고 앉아, 성냥을 그어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다. 만약 잊고 얘기 못한 게 있다면, 이라고 그는 말한다, 내가 들어주지, 잘하면 전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아니 됐어, 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대수로운 일이 아니니까. 바람 소리만 사방 가득하다.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한 계절이 죽었을 뿐이다.]


02.

["외롭지 않아요?"
"익숙해졌어. 훈련으로."
"어떤 훈련?"
"나는 좀 특별한 별자리에 태어났어. 즉 말이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손에 넣어왔지. 그런데 말이야, 무언가를 손에 넣을 때마다 다른 무언가를 짓밟아왔던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조금은."
"아무도 안 믿지만 이건 정말이야. 3년 전쯤에 그렇다는 걸 깨달았지.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어. 더이상 아무것도 갖고 싶어하지 않겠다고."
"그럼, 평생을 그런 식으로 살아갈 작정이에요?"
"아마도. 다른 누구한테도 폐를 끼치지 않을 수 있잖아."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구두 상자 안에서 살면 되겠군요."]


03.

[자 생각해봐, 라고 쥐는 자신에게 말한다. 도망가지 말고 생각하라고, 스물 다섯 살... ..., 이제 생각해도 좋을 나이다. 열두 살 남자아이를 둘 합친 나이야, 너한테도 그럴 만한 가치가 있나? 없지, 한 명분도 없어. 빈 피클 병에 쑤셔박힌 개미집만한 가치도 없지. ... ...그만둬, 시시한 메타포는 이제 진력이 나. 아무 소용이 없어. 생각해봐, 넌 어딘가에서 태엽이 잘못 감겼어. 기억해보라고. ... ...알 턱이 있겠어.]


04.

["이 거리를 떠나기로 했어요."
"떠나다니... ...어디로 간단 말이야?"
"딱히 정한 데는 없어요. 모르는 곳으로 가죠. 그다지 넓지 않은 편이 좋겠죠."
"그래서 뭘 할 작정이지?"
"일하죠."
"이 동네에서는 안 되나?"
"네"

"왜 여기서는 안 되는지 안 물어봐요?"
"알 것도 같아서 말이야."
"있죠, 제이 안 돼요 그럼. 모두가 그런 식으로 묻지도 말하지도 않으면서 서로를 이해한들 아무런 해결도 없어요. 이런 말은 하고 싶지 않지만... ..., 난 아무래도 그런 세계에 너무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던 것 같아요."]


05.

하루키는 문자를 가지고 유희한다. 그의 책을 맛있게 읽으면서도, 나는 그의 이런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소설도 놀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말인가. 주제에, 문학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다니 우스운 꼴이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