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2005년 10월 6일, 나의 어린 소년 본문

아무도 모른다/2005.05 ~ 2005.12

2005년 10월 6일, 나의 어린 소년

dancingufo 2005. 10. 7. 03:01

어느 날 문득, 소년이 다 자란 남자처럼 굴 때- 나는 그 소년이 싫어졌다. 마음껏 어여뻐한 후에 소년이 자라나는 순간 정을 떼버리는 것은 물론 나쁜 일이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유난스레, 어린아이들이 싫었다. 밑으로 하나 있는 남동생이 나보다 꼭 10년 후에 태어났고 그 동생을 업고 안고 어울리지도 않는 누나 노릇 하면서 사느라 일찌감치 진저리가 났던 건지도 모른다. 결혼도 그렇거니와 내 아이를 가지는 일 같은 것은 살아서 하고 싶지 않은 일 중에 하나였다. 괴롭고 힘들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면, 나는 꼭 임신이나 출산에 관한 꿈을 꿨다. 내가 가장 괴로운 상황, 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내게 아이가 생기는 상황이기 때문에 스트레스는 꼭 그런 식으로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러던 내가 이렇게 꼬마들만 보면 웃음이 나게 된 건, 물론 내 첫조카의 덕이 컸다. 나는 아직도 그 날, 그곳의, 내가 처음 만났던 내 조카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유리창에 바짝 얼굴을 가져다 대니 내 팔의 3분의 2쯤 될만한 크기의 사내 녀석이 작은 침대 위에 엎드려 누워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이의 팔목. 아이의 발목. 그리고 그 새하얀 등 위로는 보송보송한 털이 나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나 신기해서 간호사가 나를 쳐다보는 것도 잊은 채, 하하- 웃음을 터트려가며 더욱더 바짝 유리창에 얼굴을 가져다 대었다. 그 모습은, 처음으로 나에게 인간이 아름다운 존재라는 생각을 하도록 만들었다. 나는 내 첫조카를 처음 마주친 그 순간의 감동이, 분명히 서태지가 가요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을 때의 감동보다 컸다고 기억한다.

그러니까 나는, 그 아이가 너무나 예뻐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절대로 좋은 이모는 아니었지만, 세상의 그 어떤 이모 못지않게 조카를 사랑하는 이모기는 했다. 아이는 침대에 누워 옹알이를 하는 아이었다가, 뒤뚱 뒤뚱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거리를 걷는 아이었다가, 도망가는 나 못지 않게 빠르게 나를 잡으러 뛰어오는 아이가 되었다. 한 시간도 넘게 업고 있을 수 있던 아이는, 번쩍 들어올려 안는 것도 힘에 부치는 아이가 되었다. 내가 아이를 사랑하는 동안 5년이 지났다. 아이는 힘이 세지고, 말이 많아지고, 행동이 빨라졌다. 그리고 그렇게 아이가 자라나는 동안, 이성적으로 해결이 안 되기 때문에 싫다- 라고 생각해왔던 '아이'라는 종족들이 얼마나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운지 나는 확실하게 깨달아 버렸다.

며칠전, 출근길에서였다. 맞은 편에서 걸어오는 아이는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잔뜩 울상이 되어 있었다. 그런 아이를 달래느라 달려와 아이의 손을 잡는 엄마는, 나보다 몇살 많지도 않을 듯한 아주 젊은 엄마였다. 분홍색 치마를 입고, 분홍색 모자를 쓴 아이는 예뻤다. 나는 내 곁을 스쳐가는 그들을 한 7초쯤 더 바라보았다. 저런 아이를, 평생 내 아이로 가져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조금- 슬펐다. 그것은 나를 흠칫, 놀라게 하는 생각이었다. 언니는 여전히 예쁜 아이들을 보고도 결혼이나 내 미래의 아이에 대해서는 상상하지 않는 내가 이상하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나는, 내 또래의 다른 여자들이 자신의 아이를 가지고 싶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더욱 더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제, 이해가 간다.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가끔 내 어린 소년들의 손을 잡을 때, 내 어린 소년들이 내게 웃을 때, 저 아이들의 엄마가 되고 이모가 된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 생각을 한다. 평생 그럴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조금 쓸쓸하고 허탈해지는 것이다.

결혼을 한 삶도, 그렇지 않은 삶도 분명히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내가 결혼같은 것과는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결혼한 삶이 내게서 앗아갈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도 안다. 엄마가 있고, 아빠가 있고, 가난하거나 불행하지 않은 사람만 아이를 가지는 것이 옳은 사회이므로- 나는 어느 쪽으로 보아도 아이를 가지지 않는 것이 맞다. 게다가 이기적이며 무책임하고 변덕스럽고 과잉된 자의식으로 똘똘 뭉쳐 있으니까. 견딜 수 없는 것이 너무 많고, 지겨운 것도 싫은 것도 화가 나는 것도 너무 많은 사람이니까. 이 삶은 혼자서 향유하고 혼자서 버텨내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마치, 보상심리처럼 다른 소년들을 예뻐한다. 그러니까 나는 그 소년들이 자라나는 것은 싫다. 처음 만났던 그 때 그 모습으로 박제해두고 싶은 것은 물론 내 욕심이다. 하지만 나는, 조금만 더- 라는 생각을 자꾸만 한다. 조금만 더 나의 어린 소년들로 남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 말이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