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2005년 10월 8일, 귀걸이 본문

아무도 모른다/2005.05 ~ 2005.12

2005년 10월 8일, 귀걸이

dancingufo 2005. 10. 9. 03:10

난 귀걸이를 좋아한다. 애용하는 유일한 악세사리기도 하고, 내 돈 주고 사들이는 유일한 악세사리기도 하다. 물론 사는 만큼 또 많이 잃어버리기 때문에 자주 사들인다고 해서 귀걸이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귀걸이의 수가 남들보다 많은 건 사실이지만 말이다.

취향, 이라는 것이 있는데 난 옷도 그렇고 모자나 신발도 그렇고 귀걸이 역시- 화려하고 특이한 것이 좋다. 이런 것을 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웃기진 않을까, 너무 눈에 띄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성격인 것이 다행스러운 셈이다. 하여 조그맣고 아기자기한 귀걸이는 선물 받은 것 외엔 없다. 내 귀걸이는 죄다 치렁치렁하거나, 꽃이 피어 있거나, 나비가 날아다니거나, 크다.

세상엔 많은 돈을 들이지 않아도 맘 편하게 살 수 있는 예쁜 귀걸이들이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마음에 쏙 드는 귀걸이를 발견하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럭저럭 예쁘다 싶은 것은 많고 또 그런 것은 보통 사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정말로 '딱 이거다'라고 생각했던 귀걸이는 내 평생 몇 개 없다. 그런 귀걸이를 발견하는 일은 내 마음에 쏙 드는 남자를 만나는 일 만큼이나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바로 며칠전, 자주 들르는 악세사리 가게에서 나는 바로 그 운명의 귀걸이를 만났다. 월급을 타고 나면 꼭 한번씩 그 가게를 들르고 있고, 그 날도 특별히 뭘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가 아니라 예쁜 귀걸이가 있지는 않을까 싶어 발길을 멈춰본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저것 둘러보던 중 그럭저럭 마음에 드는 것은 있어서 바구니에 골라 넣었으나 그 귀걸이가 썩 내 마음을 충족시킨 건 아니었다. 그래도 걔 중엔 그게 젤 낫다 싶어 그냥 돌아서려다가, 문득 저 밑에 숨어있던 귀걸이 하나를 발견했다.




바로, 이 귀걸이다. 나는 이 귀걸이를 보는 순간 분명히 탄성을 내질렀을 것이다. 이것은 분명 몇년만의 일이었다. 나는 너무나 이 귀걸이가 마음에 들어서 처음에 골랐던 것을 그냥 두고 와도 좋다는 사실마저 잊어버리고 말았다. 두 쌍을 나란히 들고 계산을 하러 갔더니, 왜 꽃만 가득이냐고 나비도 한 마리 골라 가지 그러냐는 아주머니께서 농담을 듣고서야
둘 다 장미꽃 귀걸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니까




먼저 고른 이쪽은, 내 손에 들어오자마자 내 사랑을 받을 틈도 없이 다른 귀걸이에게 뺏겨버린 불쌍한 귀걸이다. 그래도 머리를 하나로 묶어 해보니 위의 것보단 오히려 이것이 더 잘 어울린다. 오랜만에, 너무 마음에 드는 귀걸이를 만나서 같이 산 귀걸이마저 사랑스럽게 느껴지니까 괜찮다. 그러다 문득 불안한 생각이 드는 것은, 난 또 언제 이 어여쁜 귀걸이를 잃어버릴 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하여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한번 그 가게에 들러 똑같은 것으로 이 귀걸이를 하나 더 사둬야지- 싶다. 저 아름다운 장미 귀걸이(물론 위의 것 말이다)를 잃어버린다면 난 첫사랑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걸 알았을 때 만큼이나 낙담하게 될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