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2005년 10월 14일, 내 안의 기적 본문

아무도 모른다/2005.05 ~ 2005.12

2005년 10월 14일, 내 안의 기적

dancingufo 2005. 10. 15. 01:57

01.

사람들은 참 제멋대로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나를 미워하든, 나 때문에 상처받았든, 나에게 상처받았든, 나를 용서할 수 없든, 그런 것은 상관없다. 나는 그저 나에 대해 제멋대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 뿐이다.


02.

사람들은 보통, 자신의 존재를 필요이상으로 커다랗게 상상한다. 물론 삶의 절반은 착각과 오해로 점철되는 것이니 사람들의 그러한 습관을 부도덕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본능적으로 어리석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에 대해 연민을 느끼는 것이다. 잠에 들어서야 본모습을 드러내는, 인간은 나약하다. 내 종족이 지닌 이 나약함 만큼 나를 절망하게 했던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03.

벌레의 이빨에 대해서 생각한다. 먹이를 갉아서 제 입 속으로 꾸역꾸역 집어넣는 그들의 이빨 말이다. 삶은 내내 나를 향해 벌어진 그 이빨을 마주보는 일이었다. 숨을 쉬고 있는 동안에는 늘 불안하거나 위태로웠다. 그리고 어느 순간, 풍족하며 너그럽고 선하고 올곧은 인간을 만난다 해서 내가 치유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04.

두 발의 새끼 발가락 밑에 굳은 살이 생긴 것을 바라보고 있다. 감각을 잃은 것인지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보아도 아무런 느낌이 없다. 가만히 발등을 내려보고 있으려니, 내 나이가 여기에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꼬박 27년을 쉬지 않고 살았다는 증거. 내가 죽은 적도 없고 이 삶을 쉰 적도 없다는 증거. 그리고 나처럼 노동을, 노동의 가치를, 노동의 대가를 모르는 인간도 세월의 흔적이 담긴 발을 갖게 된다는 것이 모순처럼 느껴진다. 이 발은 마치, 그 동안 열심히 살아왔어- 라고 얘기를 하는 듯 하니 말이다. 이것은 확실히 모순이다. 고작 이런 삶을 살았을 뿐인데도, 그 동안 수고했어- 라는 이야기를 담고 있으니 말이다.


05.

어린 시절의 기억. 어린 동생. 그 동생을 업거나 달래거나 야단치거나 귀찮아하던 나. 나에게 그런 것처럼, 그 녀석에게도 인생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될 것이다. 이 피를 지닌 인간에게, 생이 어디까지 잔인해지는지 이제부터 그 녀석도 느끼게 될 것이다. 나라면 그 시간을 최대한 늦춰봤을 텐데, 언제나처럼 그 녀석은 나 만큼 현명하지가 못하다.


06.

난 조금 기운이 빠진다. 웃는 일, 이나 떠드는 일, 에도 지친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에 맞게 행동하는 일이란 설사 그 일이 내가 자청한 것이라해도 때때로 상상 이상의 스트레스를 안겨준다. 나는 이 허탈함과 피곤함과 스트레스를 해결할 일이 로맨스, 라고 단정한다. 잊고 살았던 것이 분명하긴 하지만, 역시 그만큼 분명하게 인생에는 로맨스가 필요하다. 축구만으로는 안 되는 것이다. 인생에는 축구 말고도 로맨스가 필요하다.


07.

내 안에 기적이 있다. 가능하다면 나는 아직도 그 말을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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