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2005년 10월 20일, K 본문

아무도 모른다/2005.05 ~ 2005.12

2005년 10월 20일, K

dancingufo 2005. 10. 21. 03:58

01.

K의 많은 괜찮은 점들 중에서 내가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 점은, K는 자기가 잘 아는 이야기든 그렇지 않은 이야기든 내가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무척 재미있다는 듯한 표정으로 들어준다는 점이다. K는 말수가 적은 편이고 때문에 같이 있는 동안에는 이것저것 지껄이기 좋아하는 내가 주로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래도 그 시간이 싫지 않은 건, K가 내 이야기를 아주 재미있게 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냥 덤덤, 무덤덤 재미없다고 생각했던 K에게서 처음 매력을 느낀 건 아마도 나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K의 표정을 발견했을 때일 것이다.


02.

K는 생각과 말이 모두 도덕적이다. 그것은 내가 가지지 못한 점이고 나는 K의 그런 면들이 조금은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그런 K와 나는 그다지 잘 맞는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K를 보면 '저렇게 바른 생각과 말을 가질 수 있도록 자라난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새삼스러운 호기심을 느낀다.


03.

물론 솔직하게 말해서, K는 내게 그다지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사람은 아니다. 그렇지만 확실히,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이긴 하다. 난 비교적 정상적인 K의 생각과 말에, 조금은 말도 안 되는 생각과 말을 늘어놓았지만 그럼에도 K는 내 뜻 대로 해보겠다 말을 한다. 난 대부분의 타인이, 내 말을 잘 들어주지 않을 거라 생각하며 내 말을 잘 이해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하며 때문에 제대로 된 관계맺음이 이루어질 수 없을 거라고 본능적으로 생각하지만- K는 그런 내 생각을 슬그머니 피해서 내게 온다. 사실은 그란 사람 자체가 너무나 온건하고 유하기 때문에 타인을 받아들이는 데도 그렇게 온건하고 유한 건지도 모르겠다.


04.

그런데 난, 그런 K를 보면서 문득 생각이 났다. 내가 사실은 거짓말을 한 게 아닐까, 하는 것 말이다. 내가 사실은 나쁘게 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 말이다.

나는 원래 시작이 어려운 타입, 이라거나 몇번 만나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서, 라거나 그냥 친하게 지내다보면 자연스럽게 가까워지는 것, 이라는 것은 모두 다 변명이거나 거짓말인 게 아닐까. K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마치 모르는 사실처럼 외면하고 있는 게 지금의 나 아닐까.


05.

난 바보처럼 굴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지금의 나는, 정말이지 너무나 바보같다. 문제는, 내가 한동안은 이 바보같은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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