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2005년 10월 28일, happy birthday 본문

아무도 모른다/2005.05 ~ 2005.12

2005년 10월 28일, happy birthday

dancingufo 2005. 10. 29. 01:36

01.

친구의 생일이었다. 햇수를 세어보니 처음 만난 지 14년, 알게 된 지 13년, 친구가 된 지 12년째이다. 어느덧 인생의 절반쯤은 인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며 살아온 것이다. 게다가 같은 방에서 일년 넘게 부대끼며 살았고, 결국 지금은 가족 대신 가족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니 꽤 질긴 인연인 셈이다. 그런데도 달랑 생일 축하한단 문자 한 통 보낸 게 다라니- 이럴 때마다 내가 별로 세심하지도 다정하지도 못하다는 사실이 실망스럽다. 원래 지나간 생일은 챙기는 게 아니라지만, 이번엔 날짜같은 거 상관 말고 시간과 금전에 여유가 있을 때 반드시 다시 한번 제대로 축하를 해줘야지 싶다.


02.

그다지 열심히 봤단 생각도 안 드는데 어느덧 <위기의 주부들> 1시즌을 다 봤다. <에반게리온> 스물 몇 편을 보는 동안 꽤 고생을 한다 싶었는데 한 편 당 시간이 두 배로 긴 <위기의 주부들>은 금세 금세 본 걸 보면 꽤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수잔은 참 예쁘고, 르넷은 참 멋진 여자란 생각이 들지만, 편이 거듭할수록 마음이 쓰이는 것은 브리 쪽이다. 시작부터 내내 안쓰럽다 싶더니 결국 남편을 잃으며 1시즌이 끝났다. 2시즌 들어서면 더 불쌍해진단 말이 있던데, 이보다 더 불쌍해지면 어쩌란 말인가 싶어 지레짐작 겁을 먹게 된다.


03.

돌아오는 길에 Y가 오뎅과 호떡을 사주었다. 중국에 있는 동안 가장 먹고 싶었던 한국의 음식은 바로 이런 포장마차에서 파는 간식꺼리들이다. 부쩍 추워진 날씨에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오뎅 하나씩을 베어먹으며 쓰잘데기 없는 농담들을 주고 받는다. Y는 매일매일 내게 세 잔의 커피를 타주고, 거의 매일 아침을 먹고 오지 않는 나에게 간식꺼리를 챙겨주며, 허구헌날 밀리는 내 일들을 거들어주지만, 절대로 다정하거나 세심한 체 하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가 굉장히 무심하다고 믿고 있다. 나는 알게 모르게 이런 Y를 참 좋아하게 되었는데 여기서 이런 Y란 나에게 친절한 Y인 것인지, 나에게 친절하면서 생색은 내지 않는 Y인 것인지, 아니면 그냥 좋은 사람인 Y인 것인지 그건 잘 모르겠다.


04.

확실히, 날씨가 추워졌다. 이 겨울도 치마로 버텨내려면 스타킹을 사야겠다. 예쁘고 따뜻하고 로맨틱한 스타킹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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