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2005년 10월 30일, 랄랄랄 본문

아무도 모른다/2005.05 ~ 2005.12

2005년 10월 30일, 랄랄랄

dancingufo 2005. 10. 31. 03:15

01.

아침에 눈을 뜨는데 입술이 너무 아팠다. 거울을 보니 밤새 모기가 문 것인지, 아래 입술이 퉁퉁 부어있었다. 그 많은 데를 두고 왜 하필 입술을 문 것인지. 양치를 하는 동안, 립글로스를 바르는 동안 입술이 아파서 꽤 고생을 해야했다.


02.

다행히 약속 장소로 나가는 버스 안에서 보니 입술을 거의 가라앉아있었다. 그렇지만 정말로 비극적인 일이 버스 안에서 일어났으니, 동생 녀석이 선물해준 DCFC 핸드폰 고리가 D자만 남겨놓고 나머지가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하필 경기날에 이걸 잃어버리다니 싶어서, 나와 지인은 내게서 도망간 CFC를 찾아 걷던 길을 되돌아가보기도 했으나 그 세 글자는 결국 내게 돌아오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내가 액땜을 했으니 우리가 승리할거야, 배짱 좋게 큰 소리를 치긴 했지만 사실 난 그다지 좋은 예감같은 건 가지지 못한 채로 인천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03.

아침도 먹지 못했고, 입고 있는 옷은 얇았다. 약속한 친구들은 하나 둘, 약속 장소에 늦게 나타났고 때문에 경기가 시작한 후에야 앉을 자리를 찾아 움직일 수 있었다. 경기장 안은 상상 이상으로 추웠고 하여 난 내내 추위에 떨어야했다. 머지않아 두통이 찾아왔고 그 동안의 45분은 우리가 승리할 거란 기대감 따위 불러 일으키지 못한 채 지나갔다.


04.

오만하게도, 내 예감만을 너무나 믿었던 것이다. 승리에 대한 예감이 없으니 당연히 승리도 없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토록 오만한 내 앞에 그들이 가져다 준 것은 너무나도 멋진, 통쾌한, 아름다운 승리였다. 이 승리로 인해 내가 얼마나 기쁠 수 있는지 알고 있다는 듯, 그들은 웃으면서 유유히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05.

기뻐서 랄랄랄- 노래를 불렀다. 기뻐서 빙빙빙- 손에 든 머플러를 돌렸다. 기뻐서 깡총깡총- 계단을 뛰어내렸다. 이 주의 시작이 기뻤던 것처럼 이 주의 마지막도 기뻐서 얼마나 다행인지. 난 모든 우울한 사실을 잊고 이 환상적인 기쁨만을 간직한 채 월요일을 맞기로 했다. 오늘 하루만은 김은중도, 당신도 모두 다 잊은 채 대전 시티즌의 승리만을 기억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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