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2005년 11월 19일, 문득 본문

아무도 모른다/2005.05 ~ 2005.12

2005년 11월 19일, 문득

dancingufo 2005. 11. 20. 17:07

01.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신도림행 지하철을 타버렸다. 한 코스만 더 가면 7호선으로 갈아탈 수 있는데, 신도림 역에서 내리게 된 것이 억울하여 터덜터덜 대림으로 날 데려다줄 지하철을 타러 갔다. 미처 주말이라는 것을 잊어버린 탓에 하필이면 그 시간대가 막차가 끊길 시간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 내가 가야할 곳을 찾는데 몇시 몇분 어디행 막차가 들어오고 있다는 방송이 커다랗게 울렸고, 그 방송을 따라 바쁘게 우루루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있었고, 난 갑작스레 몰려드는 그 사람들 사이에서 길 잃은 사람처럼 가야할 곳을 몰라 멍하니 서있었다. 사람들이 한 차례 굉음을 내며 우루루 뛰어가고 나면 다시 다른 행 전철의 막차를 알리는 방송의 소리가 커다랗게 울렸고 그 방송소리가 끝나면 다시 또 뛰어가는 사람들의 무리가 있었다. 나는 문득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가끔 역겹고 혐오스러웠다. 이렇게 생각하는 내 자신이 싫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나는 결국 내가 가야할 곳을 찾지도 못하고 내가 탈 전철의 마지막 시간을 듣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 서있어만 했다.
 
 
02.
 
그렇게 몇 차례 사람들의 무리가 지나가고 주위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문득 신도림 역에서 출퇴근행 전철을 타보면 인생을 알게 된다던가 했던 박민규의 글이 떠올랐다. 나는 이런 인생 따위 모르는 게 낫지 않았던가 생각을 하며 출구를 찾아나섰다. 더이상 내가 탈 전철이 오는 곳을 찾을 힘이 없었다. 다행히 지갑 속에는 충분히 택시비를 댈 수 있는 돈이 들어있었다.
 
 
03.
 
낯선 곳에서 밤을 보내는 일은 무섭지만 조금 재미있기도 했다. 나는 호기심에 가득 차서 차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문득 사거리 위에 붙어있는, 저쪽으로 돌면 어디어디로 간다는 표지판이 보였다. 아마도 그 남자가 살고 있을 곳이었다. 나는 문득 이대로 방향을 꺾어 그 남자가 살고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단 생각을 했다. 내게는 극단적인 충동성이 있다고 했던 며칠전 심리검사 결과가 떠올랐고, 하여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이 충동적인 생각이 떠오르기 전에는 내가 나에게도 단 한번 물어본 적 없는 질문이었다. 나는 그 남자를 만나고 싶어했던가. 내 진심은 그런 것이었던가.  
 
 
04.
 
차를 모는 아저씨는 신대방 삼거리역인 줄 몰랐다며, 제대로 들었다면 12시 시간대에 여기로 오지 않았을 거라고 투덜댔다. 난 손님의 마음을 급격하게 불안하고 불쾌하게 만드는 재주를 가진 그 아저씨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싫은 것에 대한 반응은 놀랄 만큼 빠르게 나타남. 또 다시 심리검사의 결과가 떠올랐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예의없는 것들에 대해 어떻게 아무런 반응없이 지나갈 수 있다는 걸까. 나는 내 두 손을 꼭 잡았다. 마음이 불쾌하고 불안해졌다.
 
 
05.
 
집 앞에 내릴 때쯤에야 깨달은 것은 결국 신촌에서 집까지 바로 택시를 타고 온 것과 비슷하게 차비가 들었다는 사실이었다. 오래 버스를 기다렸고 다시 지하철을 기다렸고 만원으로 꽉꽉 찬 지하철 안에 서있어야 했고 그 지하철이 집 앞까지 오지 않는 바람에 중간에 내려 미아처럼 헤매여야 했건만 결국 비슷한 액수의 차비를 치르다니. 나는 내 바보 같았던 행동이 떠올라 어이가 없어졌다. 피식. 하긴 처음 있는 일도 아닌 거니까. 피식. 잠깐 좀 바보 같아져도 상관없는 거니까.
 
 
06.
 
밤거리는 추웠다.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넣고 걸음을 빨리 했다. 먼 하늘로 낯선 별이 반짝반짝거리는 것이 보였다. 뭔가를 하는 게 옳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너에게도 내 진심을 말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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