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2005년 12월 21일, 針小棒大 본문
01.
일찌감치 문을 열고 나서면, 거리는 금세 내린 눈에 쌓여 은은한 빛을 내고 있다. 구두굽에 눌러붙은 눈덩어리가 녹아내리며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몇번이나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골목길에는 늘 사람이 적다고 생각했건만, 씬이 바뀌자 등장하는 엑스트라 군단처럼 갑자기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모여든다. 이것이 바로 아침의 풍경인가. 신기하고 괴이하여 나는 그 풍경을 가만히 보고 있다. 아마도 공기는 갓 냉동실에서 꺼낸 아이스크림의 맛일 것이다. 차갑지만, 신선한 공기다. 나는 조급하지 않게 그 공기를 들이마셨다 내뱉으면서 느리게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일찍 시작되는 하루다. 어울리지 않게 부지런으로 시작되는 하루다.
02.
길을 잘못 들어, 뱅뱅뱅 영화관 입구를 찾아 돌다가 쌓인 눈을 어찌나 밟아댔던지 발바닥이 꽁꽁 얼어붙었다. 이해할 수 없는 부지런 아닌가, 생각이 들자 피식 웃음과 함께 짜증이 치솟는다. 나에게 어울리지 않거나 이해할 수 없거나- 하는 것들은 왜 이렇게 불쾌함과 불안함을 안겨다주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여 나는 자주 다짐하는 것이다. 바보같이 굴지 말자. 아니, 사람인 것처럼 굴지 말자.
03.
시간 속에서 기억은 희미해지고 변형되지만 그럼에도 외면할 수 없는 위력을 뽐낼 때가 있다. 나는 그 때 내가 얼마나 자주 웃었는가 하는 것이나 내가 얼마나 다정했는가 하는 것보다 내가 얼마나 무책임하게 그 시간을 그냥 버린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한다. 물론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의 갈래에서 너는 얼마나 오래 내 곁에서 책을 보고, 커피를 마시고, 영화를 보고, 웃음을 짓고, 이야기를 했을지 확신할 수가 없다. 그래도 어떤 식으로 거리가 멀어지고 횟수가 뜸해져도 심장 한 가운데 네가 살아있던 그 시간에 빼앗긴 것보다는 나았다. 하필이면 그 시간에 너를 잃어버린 것보다는 나았다.
04.
알고 있다. 이렇게 시간이 흘렀는데도, 아무것도 변하도록 그냥 내버려두지 못했다는 것이 나의 가장 치명적인 결함이라는 것을.
05.
그런 것은 안 된다. 오감에 의지하여 내 마음의 크기나 무게를 쉬이 판단해버리는 것, 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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