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2005년 12월 21일, 針小棒大 본문

아무도 모른다/2005.05 ~ 2005.12

2005년 12월 21일, 針小棒大

dancingufo 2005. 12. 22. 03:38


01.

일찌감치 문을 열고 나서면, 거리는 금세 내린 눈에 쌓여 은은한 빛을 내고 있다. 구두굽에 눌러붙은 눈덩어리가 녹아내리며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몇번이나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골목길에는 늘 사람이 적다고 생각했건만, 씬이 바뀌자 등장하는 엑스트라 군단처럼 갑자기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모여든다. 이것이 바로 아침의 풍경인가. 신기하고 괴이하여 나는 그 풍경을 가만히 보고 있다. 아마도 공기는 갓 냉동실에서 꺼낸 아이스크림의 맛일 것이다. 차갑지만, 신선한 공기다. 나는 조급하지 않게 그 공기를 들이마셨다 내뱉으면서 느리게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일찍 시작되는 하루다. 어울리지 않게 부지런으로 시작되는 하루다.


02.

길을 잘못 들어, 뱅뱅뱅 영화관 입구를 찾아 돌다가 쌓인 눈을 어찌나 밟아댔던지 발바닥이 꽁꽁 얼어붙었다. 이해할 수 없는 부지런 아닌가, 생각이 들자 피식 웃음과 함께 짜증이 치솟는다. 나에게 어울리지 않거나 이해할 수 없거나- 하는 것들은 왜 이렇게 불쾌함과 불안함을 안겨다주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여 나는 자주 다짐하는 것이다. 바보같이 굴지 말자. 아니, 사람인 것처럼 굴지 말자.


03.

시간 속에서 기억은 희미해지고 변형되지만 그럼에도 외면할 수 없는 위력을 뽐낼 때가 있다. 나는 그 때 내가 얼마나 자주 웃었는가 하는 것이나 내가 얼마나 다정했는가 하는 것보다 내가 얼마나 무책임하게 그 시간을 그냥 버린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한다. 물론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의 갈래에서 너는 얼마나 오래 내 곁에서 책을 보고, 커피를 마시고, 영화를 보고, 웃음을 짓고, 이야기를 했을지 확신할 수가 없다. 그래도 어떤 식으로 거리가 멀어지고 횟수가 뜸해져도 심장 한 가운데 네가 살아있던 그 시간에 빼앗긴 것보다는 나았다. 하필이면 그 시간에 너를 잃어버린 것보다는 나았다.


04.

알고 있다. 이렇게 시간이 흘렀는데도, 아무것도 변하도록 그냥 내버려두지 못했다는 것이 나의 가장 치명적인 결함이라는 것을.


05.

그런 것은 안 된다. 오감에 의지하여 내 마음의 크기나 무게를 쉬이 판단해버리는 것, 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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