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2005년 12월 25일, 아는 것과 행하는 것 본문

아무도 모른다/2005.05 ~ 2005.12

2005년 12월 25일, 아는 것과 행하는 것

dancingufo 2005. 12. 26. 04:54
 
01.

크리스마스였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란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축제일 것이다. 물론 내게도 크리스마스의 의미란 그렇다. 이 날은 그저 기분좋게 쉬는 날이다. 이번 해는 하필이면 일요일과 겹쳐서 그다지 기분이 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어쨌거나 이렇게 온통 축제 분위기를 내는 날이란 것은 나름대로 좋다. 그런 날 내가 그다지 축제 기분을 내지 않았더라도 말이다.


02.

이번 크리스마스는 계획했던 대로 책을 읽으며 보냈다. 나이가 들수록 책을 가까이하지 않게 되는 것은 사실이고, 그런 나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면서도 사무실에 오갈 때나 책을 펼쳐들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휴일이랍시고 집에 앉아 진득하니 책을 읽어본 지도 꽤 되었다. 하여 이번 크리스마스엔 별다른 약속도 없는데 독서다운 독서나 좀 해보자 싶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며칠전부터 선택해둔 책이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이었다. 아무래도 두 권짜리다보니 하루만에 읽기란 버거운 듯 하여 이틀전쯤 읽기 시작하였는데 시작할 때부터 마음을 아릿하게 하던 것이 결국 조금 감상에 빠지고 말았다. 어릴 땐 한국 소설을 꽤 읽어댔는데 신경숙의 책이 뜸해지면서부터였을까. 외국 소설 쪽으로 잠시 눈을 돌린 채로 있었다. 그러다 나름대로 오랜만에 잡은 것이 이 책인데, 누구는 한국의 예술엔 한이 있어 끈적끈적하다지만 내 입장에선 가슴을 판판하게 차오르게 하는 것은 결국 이런 쪽인 듯 하다.

슬프다고 질질 짜고 엉엉 울게 만드는 것도 체질엔 안 맞지만, 적당히 쿨하고 가볍게 구는 것도 재미는 있더라도 그다지 체질에 맞진 않는다. 몇몇 소설가들은 또 그렇지 못하겠지만, 내가 좋아한다고 말하는 한국 소설들은 그 어느 쪽에도 서있지 않다해도 전자보다 슬프고 후자보다 재미있다. 그리하여 나는 황석영의 글을 읽으면서 생각하는 것이다. 오랜만에, 원하던 글을 읽고 있다고. 꽤 오랫동안 이런 글을 읽고 싶었던 것 같다고.


03.

나는 글이라는 것이 많이 꾸미지 않아도,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마음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이러하고 저러저러하며 그러그러하다고 설명하는 것은 한 마디로 마음을 표현할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온갖 수식어를 등장시켜 그저 예쁘장하게 말하거나, 참신함이 지나쳐 부적절하게까지 느껴지는 표현 역시 능력의 부족 때문이다. 정작 전달하거나 표현할 생각은 사라지고 길고 긴 수식어만 남는 글은 좋은 글이 될 수 없다. 물론 또 어떤 글은 적절한 비유와 묘사로 하여 깊게 마음에 남는다. 그렇지만 남용, 이 되어선 안 된다. 치장, 이 되어서도 안 된다.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지 않기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쁘게 묘사하고 적절하게 수식할 줄은 알지만 그런 묘사와 수식 없이도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잘 하지 못한다. 나는 최대한 짧고 간결하게 말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겉멋에 빠져있고 장황한 글을 쓴다. 너도 나도 글을 쓰고 있긴 하지만, 사실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이다.


04.

몰랐던 것은 아니다. 나는 늘 오만함에 빠진 채로 살아왔으며 지금도 그렇다. 동시대의 타인들이 내 생각 만큼 멍청하진 않다고 누군가 주장한다고 해도 나는 그 말을 믿으려 들지 않을 것이다. 내가 존경할 수 있는 사람, 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문제는 그런 사람이 없다기 보다는 내가 웬만해선 타인을 존경하지 않을 거란 사실인 것이다. 나를 고치는 일이 급선무라는 것을 알지만, 역시 이쪽에서도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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