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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 7일, 히히- 웃는 엄마 본문

아무도 모른다/2006.01 ~ 2006.12

2006년 9월 7일, 히히- 웃는 엄마

dancingufo 2006. 9. 7. 21:13


언니가 서울에 왔을 때의 일이다. 내 쪽에서 무언가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박관념처럼 머리 속에 붙어버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맛있는 것을 사주거나 재미있는 곳에 데려다주고 싶지만 여기저기 좋은 곳을 찾아다닐 줄 모르는 나는 그런 것에 익숙하지 못해서 한참을 헤맨다.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은 언제나 그렇듯 언니를 만족시켜주지 못한다. 그럼에도 언니는 예전처럼 핀잔을 주기보다는 그럭저럭 괜찮다며 웃고 넘어가준다. 그런 언니의 모습이, 이제 언니와 나 사이도 결국은 멀어져버렸음을 짐작케 한다.


그렇다. 결국은 멀어져버린 것이다. 


스무 살 이후의 삶은 그렇게 끊임없이 가족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한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우리 가족의 나쁜 피로부터, 그 피가 주는 무게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내가 웃거나 깔깔대거나 박수를 치거나 뛰어다니기 시작한 것은 그 가족으로부터 멀어진 이후의 일이었다. 나는 다시는 자주 울고 어둡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거나 서로에게서 받은 상처 때문에 눈물을 멈출 수 없는 그런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랬다. 그래서, 이렇게 멀어졌다.


점심시간이 되어 오늘은 뭘 먹을까- 하며 식당을 찾아 내려가는 중이다. 통화할 수 있으면 전화 한 통 달라는 엄마의 문자를 보고 전화를 건다. 용건은 다름 아닌 동생에 관한 것이다. 그러게. 다 늙어서 걘 왜 낳았어. 아들이 있으면 뭐가 달라지기라도 할까봐? 내가 두고 두고 엄마의 어리석음을 탓하게 만들고 비아냥거리게 만드는 존재. 열여덟 살짜리 내 남동생.


녀석은 염려했던 그대로, 그럭저럭 학교생활을 해나가는 학생이 되지 못했다. 당연하다는 듯 그렇게 하지 못해서 나는 지긋지긋해졌다. 왜? 다른 집 자식들은 잘만 하는 학교 졸업을, 우리 집 자식들은 왜 못하는데? 왜 그런 것도 하나 조용히 못하는 건데? 나는 이해를 못해서, 화가 나서, 답답해서 투덜거려도 엄마는 이제 예전처럼 나보다 더 큰 소리로 나를 야단치지 않는다. 그리고 딸들이 자라는 동안에는 그토록 극악스럽던 엄마도 하나 있는 아들 앞에선 그저 한없이 약할 뿐이다. 수화기 너머에는 늙고, 약하고, 이제는 지친 엄마가 그저 한숨을 쉬며 있을 뿐이다.


엄마의 기준에선 서울로 대학을 간 이상은 모르는 게 없어야 한다. 낯이 선 일 앞에선 누구나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법. 엄마는 그럴 때면 내게 전화를 한다. 이렇고 이렇다, 저렇고 저렇다고 사정 설명을 하는 엄마에게 그런 걸 내가 어떻게 아냐며 짜증스레 얘기하게 되는 것은 요즘 내가 너무 바쁜 탓. 아니, 동생이 너무 말썽을 피우는 탓. 아니아니, 더는 가족의 일에 신경을 쓰고 싶지 않은 탓이다. 이렇게 이기적으로 굴고 있다. 한사코 도망갈 생각만 하고 있다. 더는 구차해지고 싶지 않고 더는 굴레 같은 것에 묶이고 싶지 않고 더는 우울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바쁜 날이 이어진다. 손에 익지 않은 업무가, 그다지 꼼꼼하거나 치밀하지 못한 내 기질과 힘을 합쳐 나를 자꾸 자신감 없는 사람으로 만든다. 그래서 기를 쓰고, 맡은 일을 끝내기로 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인정을 받고자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바쁜 일상 속으로 툭, 툭, 비집고 들어오는 얼굴이 있다. 엄마의 검고, 지친 얼굴이다. 윤기를 잃고 생생함도 잃고 예전에 날 그렇게 들들볶던 팔팔한 기운도 잃고, 이제는 그냥 히히- 웃는다. 짜증을 내거나 인상을 찌푸리는 내게 그냥 히히- 웃는 엄마가 있다.


그런 엄마 때문에 덜컥, 심장이 내려앉는다. 슬프다. 이렇게 모든 것을 뿌리치고 도망치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하다가도. 그래서 혼자 안도의 숨을 쉬다가도. 거기 그렇게 남아있는 엄마 때문에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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