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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 13일, 남포동에서- 본문

아무도 모른다/2006.01 ~ 2006.12

2006년 10월 13일, 남포동에서-

dancingufo 2006. 10. 19. 17:51



2006년 10월 13일, 남포동 대영 시네마 앞.



게스트들을 모시기 위한 야외 무대가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축구 선수도 아닌 게스트들에게 별반 관심이 없어- 이 아침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이 무대 앞에 서보지 않았다.


나처럼 예매 않고 당일표를 사기 위해 줄 선 사람들이 꽤 많다. 극장의 90%가 해운대로 옮겨가는 바람에 대부분의 사람이 해운대로 몰렸다. 덕분에, 남포동에는 당일표가 언제나 남아 있어 나같이 게으른 관객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예전에 비하면 영화제 분위기가 많이 죽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남포동 극장 거리는 부산 영화제가 한창이란 느낌이다.


13일. <관타나모로 가는 길>과 <악어>, <플랑드르>를 예매한 후- 영화 시작 시간이 조금 남아있어 무작정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마주친 리어카 위의 예쁜 사탕들. 모양도 색도 너무 예쁘다. 하나 사서 가져올 것을, 사진찍는 데만 정신이 팔려 카메라 셔터만 누른 후에 그냥 지나쳐 버렸다. 너무 아쉽다.


걷다보니 맞은편 거리에 자갈치 시장이 보였다. 그러고보면 3년 전에 이곳에 왔을 때도 자갈치 시장에 놀러갔지- 라는 기억을 떠올리며 터덜터덜 자갈치 시장으로 향하는 길.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다가, 하늘을 올려다보니 보이는 PIFF ZONE. 몇번이나 보긴 했으나, 뭐하는 곳인지 들어가보지 못했다.


자갈치 시장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보았다. 정겹기도 한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 그런데 사투리를 구사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저 말들을 제대로 알아듣기나 할까?


자갈치 시장 입구에 걸린 걸개. 보고 한참 웃었다.


그리고 시장에 들어섰다. 관광객도 좀 있을 줄 알았는데, 손님도 별로 없고 장사하는 아주머니 아저씨들만 잔뜩이었다. 하여 카메라를 목에 걸고 다니기도, 그 카메라에 장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기도 꽤 어려웠지만. 그래도 누가 찍지 말라고 말이라도 하지 않는 한 내가 찍고 싶은 건 다 찍을 테다- 라는 기분으로 돌아다녔다. 사진을 찍는 데는, 카메라 기종(;)이나 사진을 찍고자 하는 열정도 중요하지만, 사실은 누가 뭐래도 카메라를 갖다댈 수 있는 뻔뻔함도 중요하다는 걸 깨닫은 날. 


이곳은 그 유명한, 부산의 자갈치 시장. 물고기 투성이다.


오징어일까? 흐음- 원래는 저렇게 생긴 놈들이구나, 싶었다.

어릴 땐 생선냄새가 너무 싫어서, 엄마를 따라 시장 다니기를 싫어했다. 생선엔 손도 안 댔고 가까이 가는 것도 싫어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회이고, 누가 뭐라 그러지도 않았는데 혼자 이렇게 자갈치 시장을 돌아다니고 있다. 자라다보면 내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만 해도 신기한 것 투성이다.

하지만 역시, 아직까지는 이런 모습을 보고 '거참- 맛있겠네'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_-


이곳에 와서 느꼈다. 바다 속엔 정말 가지각색의 생물체가 살고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이 녀석은, 내가 자갈치 시장에서 가장 재미있게 본 녀석. (문어- 인 거겠지?;)
어쨌건 원래는 이 녀석이,


이런 통 안에 들어있었다. 그러니까 사진 속에서 반은 잘려서 보이지 않는 통 안에 들어있던 놈인데- 어느 순간 갑자기 혼자 바닥으로 기어 내려가더니 첫번째 사진에서처럼 마구 마구 기어다니는 시작했던 것이다! 난  걸어가다가 그 문어 때문에 너무 놀래서 아아앗~ 혼자 소리까지 질러가며 그 자리에 멈춰섰다. 돌아다니는 모습을 찍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활발히 움직이는 놈이라 카메라에 담기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혹시 다른 데로 도망가 버릴까봐 얼른 카메라 액정을 열고 초점을 맞추는데 장사하던 아저씨가 물었다.

"아가씨, 그건 뭐하러 찍어?"
(사실 사투리로 물었지만 말이다. 이상하게 나는 이렇게 서울에 와있으면 내 고향말인데도 불구하고 사투리가 잘 생각이 안 난다-_-)

달리 할 말이 없어, 나는 액정에서 시선도 안 떼고-

"예뻐서요."

그랬더니, 아저씨가 웃었다.

"아니, 걔가 뭐가 예뻐. 아가씨가 더 예쁘그만."

누구한테 듣는 말이든 예쁘단 말은 언제나 듣기 좋아서, 나는 헤헤헤 웃었다. 생각해보면, 비교대상이 문어였는데 말이다-_-

어쨌건 내가 사진을 다 찍고 나자 아저씨는 문어를 잡아다가 원래 있던 통 안으로 집어 넣었다. 하지만 이 녀석, 만만찮은 강적이라 이번에도 제 자리에 가만히 있지 않고 옆통으로 얼른 기어 들어갔다. 하여, 지금 온전히 보이는 저 통 속에는 문어가 세 마리다.

어쩐지- 인상깊은 놈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문어와 작별하고 돌아서 가다가 발견한 리어카. 음음음-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리어카다.


자세히 찍으니까 조금 더 무시무시.


그리고 시장을 한 바퀴 휘이- 도니, 영화 시간이 다 되어 자갈치 시장을 빠져 나왔다. 돌아서 나오는데, 자갈치 시장다운 인삿말이 보였다.

안녕히 가십시오! 또 오십시오! 사실은 꽤 예의바른 사람들인 것이다. 정겨운, 부산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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