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2006년 10월 13일, 남포동에서 - (2) 본문

아무도 모른다/2006.01 ~ 2006.12

2006년 10월 13일, 남포동에서 - (2)

dancingufo 2006. 10. 20. 11:17

자갈치 시장을 나와 극장으로 돌아가는 길. 여기저기 영화 부스가 세워져있어 카메라에 담았다. 다들 제각각 마련한 이벤트로 예비 관객과 만나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어느 부스에 붙여져있던 포스터. 1000만인의 밥상. 영화 노동자의 땀.




그리고 어느 한 구석엔, 이렇게 포스트 잇에 원하는 글귀를 적어놓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처음 내가 갔을 때만 해도 사람들이 다닥다닥 저 벽에 붙어서서 열심히 뭔가를 쓰고 있었는데, 내가 몇 발짝쯤 뒤에 서서 카메라 초점을 맞추는 사이 사람들이 대거 사라져 버렸다. 나는 사람들 시선에 신경 않고 카메라를 들이댈 수 있는 뻔뻔함은 가졌으나 사람들 몰래 카메라를 가져다대는 용의주도함은 가지지 못한 모양이다.


웬만한 행사장에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보디가드 언니오빠들.


그리고 혼자 극장에 들어가 <관타나모로 가는 길>을 보았다. 내용이 내용인 만큼 즐겁고 신날 것은 없었으나 그래도 꽤 집중해서 보았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오니 어깨 근저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아마 영화를 보는 내내 인상을 쓰고 긴장을 한 채 의자에 앉아있던 탓이리라.

그래서 영화제도 볼 겸, 오랜만에 나를 만나기도 할 겸, 남포동으로 오고 있다는 친구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혼자 까페에 들어가기로 했다. 시끌벅적한 곳은 싫다고 생각하면서도 멀리까지 가는 것도 귀찮아 근처 건물에 있는 까페를 선택했는데, 이게 웬 횡재. 들어갔더니 딱 한 테이블에만 연인이 앉아있었다.

이곳이 그 까페. 4층에 자리잡은 까페인데, 실내와 야외가 보기 좋게 연결된 예쁜 까페였다. (비록 아르바이트생의 선곡 센스가 영 꽝이었지만 말이다.)


보시다시피, 저 멀리 앉아있는 한 쌍의 연인 외엔 내가 손님의 전부였다.


녹차라떼를 시키고, 책을 꺼내서 읽기 전. 내가 앉은 테이블을 한 컷.


책을 읽다가 좀 졸려서, 위를 올려다보니 예쁜 방울이 눈에 들어왔다. 다시 카메라를 손에 쥐고 고개를 들어 한 컷.


그리고 나와서 친구를 만났다.

"나는 부산에 살아도 한 번도 안 가본 영화제를, 넌 어떻게 서울에 살면서도 챙겨서 내려와?"

키가 작고, 눈이 동글동글하고, 웃으면 귀여운 친구는 헤헤헤 웃으면서 나에게 물었다. 스무살에는 내가 자기와 너무 잘 안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고보니 나만큼 자기랑 잘 맞는 사람도 없는 듯 하다면서 동글동글 웃는 모습을 보니 다시 귀여워 나는 어깨를 톡톡 두드려줬다.

"원래 내가, 시간이 지나야 진가가 드러나는 사람이지."

하하- 웃으면 까르르르- 웃는 친구. 이 친구를 만난 건 일년 반만이었다. 그런데도 어색하지 않아서, 어쩐지 좋았다.

그렇게 친구와 함께 <악어>와 <플랑드르>를 본 후에, 잠깐 남포동 거리를 걸어다녔다.


밤이 되자 아침보다 훨씬, 사람이 많아졌다. 부산 사람들은 굳이 영화제에 놀러갈 준비를 하지 않고도 이 축제를 즐길 수 있으니까, 어쩔 수 없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짝반짝하는 예쁜 나무. 세상의 모든 반짝반짝하는 것은 참 어여쁘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친구와 잠깐 이런 저런 수다를 떨다가, 역시 나처럼 서울에서 내려온 친구와 합류하기 위해 해운대로 향했다. 그렇게 나는, 이 저녁에 남포동 극장 거리와 헤어졌다.



물론, 본의 아니게 다음 날 오후 다시 또 이곳으로 돌아와야 했지만 말이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