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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교육

나의, 오래된 정원

dancingufo 2007. 1. 9. 00:47



그 집에 들어섰을 땐 책장이 보였고, 남의 책장을 훑어보길 좋아하던 나는 그 집의 책장도 훑어보고 있었고, 그 때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왔던 책이 이상하게도 ‘오래된 정원’이었고, 그래서 그 책을 슬쩍 꺼내어 보는데 그 집의 주인은 나에게 말을 해왔다. 영화로 만들어질 거거든요. 읽어보고 있었어요.

그것은 ‘오래된 정원’과의 첫 마주침. 2005년 4월의 일이다.





그리고 소설이 영화로 다시 태어나기 시작할 무렵이던가. 나는 소설을 먼저 만나기 위해 ‘오래된 정원’을 손에 들었다. 겨울이었고, 12월이었고, 그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읽었을 때는 크리스마스가 끝나가고 있었고, 그리고 그 저녁에 잠이 들면서 나는 한윤희에 대해서 생각을 했다.

그것이 ‘오래된 정원’을 내가 기다리게 된 시작. 2005년 12월의 일이다.





그리고 2007년 1월 6일. 나는 드디어 ‘오래된 정원’을 만나러 간다. 다시 겨울이 돌아왔고, 바람이 불고 있고, 날이 많이 춥다. 나는 그 바람과 추위를 헤치고 극장으로 향하면서 감히 생각을 한다.

이 영화는 내 영화다, 라고.  

이 영화는 임상수의 영화고, 이 영화는 염정아와 지진희의 영화고, 이 영화는 이 영화를 만든 수많은 사람들의 영화고, 그리고 나에게 이 영화는 다름아닌 내 영화다- 라고 말이다.  





소설이 영화로 다시 태어나기로 한 이후- 캐스팅이 결정되고, 촬영을 시작하고, 캐릭터가 새롭게 태어나고, 음악이 덧입혀지고, 개봉이 미뤄지게 되는 그 모든 과정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나에게, 이 영화는 내 영화다.

사람들은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거나 슬프게 보거나 또는 지루하게 보거나 괴리감을 느끼며 볼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냥 내 영화를 본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은 척 무덤덤히 관객석에 앉았지만, 사실 난 조금-

... ...두근거렸다.

 



드디어 개봉을 했구나, 하는 흐뭇함. 대체 어떤 모습으로 영화화되었을까 하는 기대감. 꼭꼭 좋은 영화였으면 하는 바람과, 그렇지만 사실 엔딩 크레딧을 보지 않아도 이 영화가 좋은 모습일 것을 믿는 순진무구함 때문에,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오래 전 연인을 만나러 가는 여자 같았고, 오래 전 제자를 만나러 가는 선생 같았다. 그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두 시간. 기다렸던 시간에 비하면 턱없이 짧은 시간. 그렇지만 나는 이 두 시간의 만남만으로도 이제는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검은 스크린 위로 하얀 글자들이 넘실거리기 시작하면, 나는 내 생애 처음 만난 내 영화와 미련없이 헤어지면서, 아직도 노래가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되새기며, 뒤를 돌아본다.  

음악이 참 좋아.




2007년 1월 5일. 1년 9개월 만에 드디어 내 앞에 하나의 실체로 나타났던, 내 영화를 만났다. 이 영화, 나에게 최고로 재미있는 영화도 될 수 없을 것이고 최고로 특별한 영화도 될 수 없을 테지만- 내 생에 처음 만난 내 영화였고, 그리고 내 생에 마지막으로 만난 내 영화일 것이다.  

이렇게 태어나느라 그 동안 참 수고가 많았다. 만나게 되어 참 반가웠단다. 나의, 오래된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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