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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404] 수원 vs 광주, 둥근 것은 아름답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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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404] 수원 vs 광주, 둥근 것은 아름답다.

dancingufo 2007. 4. 8. 04:29



[글=김민숙] 세상에는 둥글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들이 있습니다. 둥글게 꽉 찬 보름달이 그렇고, 미인의 둥근 눈이 그렇고, 아이들의 둥글둥글한 얼굴이 그렇습니다. 이렇게 세상에는 둥근 모양새로 아름다움을 뽐내는 것들이 있습니다. 모난 곳 하나 없이 둥글둥글하기만 한 축구공이 역시, 그러합니다.  


우리는 자주 ‘축구공은 둥글다’라는 말을 합니다. 이 말은 축구공 그 자체의 둥근 모양을 뜻하기보다는 어떤 두 팀이 경기를 할 때 승패가 꼭 전력의 강함과 약함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즉 상대적으로 전력이 약한 팀이라도 언제든 강팀을 이길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축구공은 둥급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승리라는 것이 어느 쪽을 향해 굴러갈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성질 때문에 축구란 것은 더한 재미와 감동을 갖춘 스포츠가 됩니다. 상대적인 약팀이 최선을 다해 달려서 승리를 누리는 것은 참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래서 ‘축구공이 둥글다’라는 것은 축구의 가장 아름다운 진리 중 한 가지가 됩니다.



지난 4월 4일, 수원 월드컵 경기장에서는 수원과 광주의 경기가 열렸습니다. 비록 수원이 서울과 성남에게 연달아 패한 직후였지만, 대부분의 축구팬들은 이 경기의 승자가 수원이 될 거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수원은 현재 K리그 14개 팀 중 가장 훌륭한 선수 자원을 갖춘 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데 비해, 광주는 군에 입대한 선수들로만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필요한 선수를 영입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팀이기 때문입니다.


수원은 모든 자리에 든든한 자원을 두루 갖추고 있는 강팀입니다. 그렇지만 광주는 현재 리그 순위에서 최하위에 머물러있는 약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축구 전문가들과 축구팬들은 수원이 어렵지 않게 광주를 이겨낼 거라 믿었습니다. 저 역시 수원이 이 경기를 기점으로 연패를 탈출할 거라 생각하면서 수원 월드컵 경기장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경기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울리면서부터였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광주를 상대적인 약팀으로 인정하고 있었지만, 경기를 뛰고 있는 11명의 광주 선수들은 그 어느 누구도 자신들을 약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했습니다. 광주 선수들은 시작부터 매우 적극적인 공격을 펼쳤고,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여 주었으며, 물러서지 않는 투지를 선보였습니다.  


사실 원정 경기에서 강팀을 만날 때 대부분의 약팀은 다소 소극적인 경기를 펼치기 마련입니다. 그런 경기의 경우, 결과를 무승부로만 이끌어내도 약팀으로서는 성공한 경기라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약팀은 강팀의 공격에 맞불을 놓아 큰 점수 차로 패하기보다는, 수비 위주의 경기를 펼쳐서 무승부 경기를 하게 되길 원합니다. 그것은 상대적인 전력상의 부족함을 메울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기 때문에, 팬들은 그런 경기를 펼치는 약팀을 비난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날 광주 선수들이 보여준 경기는 이와 달랐습니다. 안정환, 나드손, 이관우, 송종국, 마토 등 수원 선수들의 면면은 참으로 화려했지만 광주 선수들은 그들의 화려함에 주눅 들지 않은 듯했습니다. 이날 광주 선수들이 보여준 것은 한 발 더 뛰고, 한층 더 부지런하게 움직이면서 자신들의 상대적인 부족함을 메우려는 노력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노력에는 그에 맞는 대가가 있었고, 결국 광주 선수들은 자신들이 원했던 승리라는 아름다운 결과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수원 선수들이 광주 선수들보다 열심히 달리지 않았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수원 선수들 역시 연패에서 탈출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했음이 분명합니다. 저는 내심 수원이 이 경기를 승리함으로써 분위기 반전에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원은 좋은 경기를 했고, 수원 역시 승리할 만한 자격이 충분히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경기를 지켜보면서 광주 선수들을 향해 힘찬 박수를 보내게 된 것은, 잊고 있었던 축구의 아름다운 진리 한 가지를 광주 선수들이 새삼 일깨워 주었기 때문입니다.


응원하는 팀이 부진에 빠져 있을 때, 강팀을 만나는 일은 참 부담스럽습니다. 선수 면면을 살펴봤을 때, 도저히 이길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 강팀을 상대하기 전이면 저는 종종 ‘우리가 무슨 수로 승리할 수 있겠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곤 합니다.


팀의 부진은 저를 세상에서 가장 비관적인 축구팬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하여, 저는 ‘우리처럼 약한 팀이 어떻게 저 강한 팀에게 승리할 수 있겠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마치 축구공은 더 이상 둥글지 않다고 믿게 된 사람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지난 수요일, 광주 선수들은 그런 제게 축구공은 변함없이 둥글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외국인 선수 한 명 없이, 열악한 조건에서, 그것도 상대팀의 지지자들로 꽉 찬 원정 경기에서, 화려하기 그지없는 선수들을 갖춘 팀을 상대로, 결국 승리를 얻어내고야 만 광주 선수들은 저로 하여금 잊고 있었던 축구의 아름다운 진리 하나를 다시 기억하게 만들었습니다.  


세상에 질 게 뻔한 경기란 없었던 것입니다. 어떤 팀을 상대하는 경기라 해도 그 경기에는 늘 ‘승리의 가능성’이 존재했던 것입니다. 저는 한동안 그 사실을 잊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잊고 있던 동안에도, 축구의 그 진리는 변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 날 광주 선수들은 짜릿한 승리의 기쁨을 누리면서 경기장을 빠져 나갔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광주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냈고, 그 박수를 받은 광주 선수들의 얼굴에는 열심히 달렸던 보람의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광주 선수들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던 순간, 저는 문득 다시 기억해 냈습니다.


그렇습니다. 축구공은 여전히 둥급니다. 그렇게 모난 곳 하나 없이 둥글둥글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공이 어느 곳을 향해 굴러갈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축구의 진리입니다.


끝을 예측해낼 수 없다는 것. 그래서 모든 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것. 경기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승리’라는 꿈을 꿀 수 있게 하는, 축구란 참으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축구공은 둥급니다. 그리고 둥근 것은, 아름답습니다.  


글: 김민숙, 사진=광주의 경기모습 ⓒ광주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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