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김애란, 달려라 아비. 본문

피도 눈물도 없이

김애란, 달려라 아비.

dancingufo 2007. 7. 8. 17:43


세상에는 이제 나보다 어린 작가들이 등장할 것이다. TV에, 스크린에, 그라운드에, 나보다 어린 그렇지만 분명히 재능 있는 이들이 등장한 것은 꽤 오래 전부터의 일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더 이상은 나보다 어린 이가 무언가를 성공적으로 해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역시 글쓰기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글쓰기만은 조금 더 오랜 시간 삶을 살아온 자만이, 조금 더 오랜 시간 생각하고 고민하고 아파하고 사색한 인간만이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김애란의 등장은, 나를 조금 놀라게 한다.

물론 이전에도 나보다 어린 작가들이 존재하긴 했다. 귀여니만 해도 뭐 작가라고 부르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 (이렇게 말해놓고 보니 난 그녀의 정확한 나이를 모르겠다. 어쨌건 대학에 들어간다고 말이 많았던 게 내가 대학생이 된 이후이니 나보다는 어릴 것이다.) 하지만 나보다 어리면서, 내 마음에 드는 글을 쓰는 작가는 아직 만나보지 못했던 터였다. 그러니까 김애란은 1980년대에 태어난 작가들 중, 내가 최초로 마음에 들어한 작가가 된 셈이다.

나는 1980년에 태어났다. 그리고 스물 여덟해를 살았다. 살아오는 동안 많이 읽고 생각했고 겪었고 울었고 아팠고 웃었지만, 한 번도 내가 어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어른이 되기 이전에는 글을 쓸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김애란은, 글을 썼다. 좋은 글. 읽고 나서 좋다고 생각되는 글. 누군가에게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글. 김애란은 그런 글을 썼다. 그녀는 나보다 조금 더 일찍 어른이 된 것일까? 아니라면 원래 글이라는 것이, 꼭 어른이 되어야만 쓸 수 있는 건 아니었던 것일까?

여담이지만, 한참 이 책을 재미있게 읽고 있던 중 책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어디서 잃어버린 것일까 한참을 생각했는데 동네 은행의 현금 출금기 위에 놓아두고 온 모양이다. 혹시나 하고 이틀 후에 찾으러 갔더니 누군가 가지고 가버렸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나라는 사람은 돈 만원 잃어버리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책이나 CD를 잃어버리는 것은 끔찍하게 싫어한다. 그래서 며칠쯤 무척 짜증을 내다가 생각한 것인데, 남의 것이 분명한 책을 굳이 들고간 사람이라면 그이도 책을 읽는 사람일 거라는 사실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딱히 돈이 되는 물건도 아닌데 무엇하러 남의 책을 가지고 가겠는가.

그래서 생각하기를, <달려라 아비>는 좋은 책이니까. 그러니까 내가 그 책을 잃어버린 덕에 생각지 못했던 이가 그 책을 잃게 된다면 그 또한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리하여 나는 비록 또 한 번 이 책을 사야했지만, <달려라 아비> 정도의 책이라면 두 권을 사는 것도 아깝진 않으니까.

나의 첫 <달려라 아비>가 누구의 손에 들어갔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이도 그 책을 재미있게 읽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다음에 또 다른 김애란의 책이 나온다면, 그 책 역시 읽어볼 만큼의 독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나는 김애란이라는 이 젊은 작가에게 조금은 도움을 주는 독자가 되었단 사실에 얼마간은 기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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