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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교육

스쿠프.

dancingufo 2007. 7. 29.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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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한 가지를 알려면 그것에 대한 모든 것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같은 사람에게 지난 40년 동안 영화를 만들어 온 우디 앨런이란 감독은 매우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그러니까 류승완이나 스티븐 달드리는 (그들의 데뷔작이 나왔을 때, 내가 그들을 만났기 때문에) 같이 한 걸음 한 걸음을 걸어가면 되는 감독이었지만, 우디 앨런은 이미 너무 많은 길을 걸어온 감독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가 걸어온 길을 내다볼 엄두를 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1965년에 데뷔작을 내놓았는데, 그 땐 나뿐 아니라 나보다 일곱살 많은 큰 언니도 이 세상에 없었고 생각해보니 막내 삼촌이나 이모도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열 다섯 편 정도의 영화를 만들어냈을 때 이 세상에 태어났고, 내가 그를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이미 마흔 편 정도의 영화를 찍은 상태였다. 그러니까 나는 우디 앨런을 알려면 마흔 편의 영화를 봐야만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조금은 겁을 먹었다. 그를 알려면 너무 많은 걸 알아야 했기에 차라리 그에 대해 알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스운 일이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하나를 알려면 모든 것을 알려고 하고,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면 그 하나조차도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 말이다.  

지금까지 그의 영화를 서너 편 정도 보았지만 몇 달이 지난 후엔 그 제목과 내용이 서로 혼합이 되어 나는 내가 본 그의 어떤 영화가 어떤 내용이었는지 잊어버렸고 그러한 상태는 결국 나로 하여금 우디 앨런을 점점 더 기피하게 만들었다.

컴퓨터 속에 몇 편쯤 더 그의 영화가 들어 있었지만, 나는 몇번이나 그 영화들을 보려다가 관두었고 그래서 우디 앨런이란 이름을 들을 때마다 어쩐지 미처 풀지 못한 숙제가 존재하는 것마냥 마음이 불편했다.

우디 앨런은 내게 그런 존재였다. 이 영화, <스쿠프>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쩌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마음 편히 볼 수 있는 그의 영화를 하필이면 이 순간에 만난 것은. 이 영화는 나로 하여금 더 이상 우디 앨런을 부담스러워하거나 지루해하지 않도록 만들었다. 그가 꽤 재미있고 유쾌하며 실은 그럭저럭 즐거운 대화를 나눠볼 만한 사람이라는 것도 느끼게 했다. 나는 그의 캐릭터로 인해 즐거워졌고, 그래서 차근 차근 그에 대해 하나씩 알아가도 좋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비록 이제 그는 마흔 편이 아니라 쉰 네 편의 영화를 만든 감독이 되어있지만, 그래도 나쁘지만은 않은 것이다. 이렇게 재미있는 감독의 영화를 볼 기회가 아직은 한참이나 남아있다는 뜻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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