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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cingufo 2007. 8. 10. 01:44



2005년의 문학을 기억한다. '인천'을 연호하던 소리가 커다란 경기장 안을 가득 울려, 뱅뱅뱅 귓가를 돌던 그 소리가 결국엔 하늘 끝까지 치솟아 오를 것 같던 2005년의 문학을 말이다.

그때는 문학의 온 관중이 하나 같았다. 늘 상대팀의 지지자로 그곳을 찾았던 나는, 그래서 문학의 관중을 무서워했고 동시에 그들을 질투했다. 당시의 나는, 성적과 무관하게 경기장을 온통 자신들을 사랑하는 사람들로 채울 수 있는 힘이 오로지 내 팀에게만 있는 줄로 알았다. 그러한 힘이 있기 때문에 나는 내 팀이 너무나 아름답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비록 우승컵을 들지 못해도 늘 내 팀이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2005년의 어느 날, 나는 뜻하지 않게 문학에서 또 한 번 그러한 팀을 만나야 했다. 그 해 내가 문학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 나는 직감적으로 이곳에는 오로지 인천의 팬들만 존재한다는 걸 알았다. 나는 하늘을 치솟아 오를 듯 커다랗게 들리는 '인.천'이란 소리에 귀가 먹먹해졌고 그래서 문득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인천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마주쳤다. 잔디 위의 인천 선수들을, 너무나 소중하게 바라보고 있는, 인천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2005년의 문학은 아름다웠다. 2003년의 퍼플 아레나가, 더없이 사랑스러웠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인천 또한 아주 아름다운 팀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팀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스타 선수나 챔피언의 별이 아니라, 관중석을 찾은 이들의 사랑. 오로지 그것만이 하나의 팀을 아름답게 할 수 있다면, 인천은 분명히 아름다운 팀이었다. 인기 몰이를 해줄 유명한 선수도 없었고, 가슴에는 별의 흔적조차도 없었지만, 그래도 그들은 열심히 달리는 것으로 하여 사랑을 받았다. 그것이 나에게 인천이 아름다워진 유일한 이유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오랫동안 인천을 스크린에 옮겨 놓은 [비상]을 외면해야 했다. 내 팀은, 인천보다 가난했고 열악한 환경 속에 있었고 더 오랜 시간 동안 더 많은 패배를 만나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쉬이 [비상]을 만날 수가 없었다. 그들의 이야기가 내 팀의 이야기로 들려서 울고 싶어질까봐 겁이 났고, 더 오랜 시간 더 많이 힘들었던 내 팀 앞에서 저들이 아픈 체를 한다고 생각하게 될까봐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비상]을 못본 체 했고, 괜스레 웃었으며, 그냥 어깨만 으쓱하고는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아주 다행스럽게도 [비상]은 그저 '우리가 얼마나 힘든지 너희가 아느냐?'고 묻는 영화가 아니었다. 최소한 가난과 나쁜 성적을 가지고 동정심을 자극하는 영화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 영화에 존재하는 것은 승리하고 싶어하는 선수들이었고, 그들을 승리로 이끌고자 하는 감독이었고, 그들의 승리를 지켜보고 함께할 팬들이었다. 그것은 비단 인천의 것만이 아니라 K리그의 것이었고, 축구의 것이었고, 그리고 동시에 패하거나 주저앉거나 좌절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해서 축구를 포기하지 못하는 많은 축구팬들의 것이었다.




전반전에만 세 골을 먹는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알기 때문에, 그러고도 다시 또 후반전을 치러내야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기 때문에 나는 조금 울었다. [비상]의 인천을 바라보는 동안, 다른 이들이 '이길 수 없는 상대'라고 말하는 상대와 정면 승부를 펼쳐야만 할 때의 두려움이 떠올랐고, 그럼에도 어쩌면 우리가 승리할지도 모른다는 아주 작은, 너무나도 작고 희미한 기대를 품곤 하던 때의 기억이 떠올라서 나는 조금 울었다. 일년 동안 치러지는 몇십 번의 경기를 한 번도 빠짐없이 뛰어내야만 하는 선수를 생각하며 조금 울었고, 그들이 몇몇 유명한 선수들의 화려함 아래서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기분으로 달리고 있는 것일까를 생각하며 조금 울었다.

그렇게 나는 [비상]을 보면서 조금씩 여러번을 울었다. 그속엔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K리그가, 너무나 사랑하는 축구가 있었다. 펼쳐진 잔디 위에서 선수들이 달리고 있었고, 그들이 넘어지고 다치고 아파했고, 울었고 그래서 나도 조금 울었다.




[비상]은 그런 영화였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패배와, 그럼에도 다시 승리를 향해 달릴 때의 의지와, 그 의지를 품고도 패배를 만나야만 했을 때의 눈물과, 그 눈물을 함께 흘려줄 이들의 따뜻함이 담겨 있는 영화였다. 그러니까 많은 축구팬들이, 특히 K리그를 좋아하는 이들이 이 영화를 꼭 보았으면 좋겠다. 볼만한 영화이고, 보다보면 보고 있음을 후회하지 않을 영화이고, 보고 나면 오래 기억에 남을 그런 영화니까 말이다.

'사랑한다, 인천'이라고 그들이 외친다. 물론 나는 인천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외침 속에서 그들의 진심을 본다. 그것은 내가 품고 있는 진심과 너무나도 닮아서, 그래서 문득 미소를 짓게 된다. 그들이 오래오래 인천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 앞에서, 인천 또한 오래오래 아름답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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