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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선. 본문

나쁜 교육

경의선.

dancingufo 2008. 1. 9.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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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나다에 갔다. 딱히 어떤 영화를 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냥 오랜만에 나다에 가고 싶었던 탓이다. 몇시쯤 가면 좋을까, 생각을 하다가 상영표를 검색해 보았더니 적당한 시간에 운 좋게도 김강우가 주연을 맡은 영화를 상영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즐거운 마음으로 대학로를 향했는데,

그랬는데 이번에도 또다시 길을 헤매고 말았다. 벌써 10년째, 일년에 한 두번쯤은 꼬박꼬박 찾고 있는 극장인데도 여전히 나는 나다로 가는 정확한 길을 모른다. 몇번 출구로 나가야 하는지만 알아 두어도 그렇게 엉뚱한 곳에서 헤매진 않을 텐데, 나는 늘 그것조차 헷갈려서 이번에도 또 맞은 편 거리에서 한참을 헤맸다. 그리고 상영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여전히 나다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아서 결국 난 네 명의 타인에게 길을 물었고 네번째 사람에게서 정확한 답을 얻어낸 후에야 나다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또다시 기억이 오류를 일으킨 것이다. 난 언제나 그 거리에 나다가 있을 거라 여겨왔고, 그래서 늘 그곳에서 헤맸지만 사실 나다는 그 거리와 반대편에 있었기에 그 헤맴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그렇게 헤맨 후 나다에 도착할 때마다 '아, 여기가 아니라 저기!'라고 생각하지만 다음에 그곳을 찾을 때면 여지없이 기억은 오류를 일으켜서 '저기가 아닌 여기'로 향하게 되고 그래서 또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할 때면 그런 나 자신을 바보같다고 생각하지만 그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응, 그러니까 이번에도 나는 나다를 한 번에 찾지 못했고, 사실 지금 생각해도 나다에 가려면 혜화역 몇 번 출구로 나가야 하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렇게 헤매다가, 마음이 급하고 정신이 없는 상태로 경의선을 만났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에 이미 이 영화가 올해의 치유 영화 어쩌고 하는 분야에서 (한국 영화 중) 2위를 차지했단 기사를 접했기에, 아마도 꽤나 감동을 주는 타입의 영화인가보다-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경의선은 그런 영화였느냐 하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고.

그냥 반복되는 일상의 어떤 지점이, 괴롭거나 외롭거나 하는 시간이, 너무나 조용하고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어와서 그래서 조금 무서운 기분이 드는 그런 영화였다. 그래서 조금 소름끼치고 그래서 조금 외면하고 싶은 영화였지만 그래도 김강우의 연기는 꽤 좋아서 흐뭇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러니까 나는 김강우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이 배우가 마음에 들었다. 그것은 이 배우의 연기력이 좋았던 탓이 아니라 이 배우가 '내가 좋아하는 얼굴'을 가지고 있는 탓이었다. 쌍꺼플이 없는 눈이라거나, 단정한 콧날이라거나, 점잖아 보이는 입매무새 같은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모범생일 것 같은 이미지. 하지만 언뜻 보면 차가워 보이기도 하는 이미지. 그런 것들이 마음에 들어서 김강우라는 이름을 잘 기억하고 있다가, 그가 나오는 작품들을 챙겨 보곤 했는데.

그랬는데 이 배우는 연기력 또한 꽤 마음에 든다. 나는 기본적으로 연기를 하는 이들에게 심취하는 편이 아니라 딱히 좋아한다고 말할 만한 배우가 몇 없지만

이성재라거나, 김강우처럼 그 얼굴이 마음에 들어서 좋아하게 된 이들이 연기 또한 마음에 들게 할 때 조금 뿌듯한 기분이 든다. 응, 김강우. 그래서 조금 뿌듯했고 지금까지는 신중한 걸음으로 천천히 걸어온 것 같으니 올해엔 좀 더 크고 신나는 걸음으로 펄쩍- 하고 걸어가는 것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오랜만에 찾았던 나다를 나오면서,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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