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기다리다 미쳐. 본문

나쁜 교육

기다리다 미쳐.

dancingufo 2008. 5. 29. 12:37


아주 오래 전 일처럼 느껴질 때가 많지만, 2000년 즈음 데니안을 좋아했다. 그러니까 god라는 그룹이 '어머니는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를 외치고 다닐 때, 나는 god를 처음 보곤 데니안이 무척 미남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그룹의 1집 앨범을 다 듣고, 랩을 할 때의 목소리가 무척 멋진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았고, 그 사람이 바로 데니안이라는 걸 알았을 때 자연스레 호감도가 커졌던 것 같다.  

한동안은 god가 나오는 프로를 꽤 열심히 챙겨 보기도 했지만, 사실 내가 좋아한 건 데니안과 윤계상뿐이었다. 여러 아이돌 그룹들을 좋아해보았지만 그 중 일부 멤버가 좋은 만큼, 나머지 멤버들이 싫었던 건 god가 유일했다. 아마 그래서 일찌감치 그 그룹의 팬 노릇은 그만둔 것 같지만 그래도 두 사람에 대한 애정이나 관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데니안의 팬을 자청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너는 윤계상 팬이잖아!'라는 소리를 지겹도록 들어야 했지만, 어쨌든 지금도 나는 두 사람 모두를 좋아하고 있다. 달리 극성스러운 애정이야 남은 것이 없지만, 그래도 인터넷에 그들에 관한 소식이라도 뜰 때면 빠짐없이 그 글들을 읽어볼 만큼은 말이다.  

간신히 얼굴 마담 역은 맡았지만, 그래서 인기는 꽤 높았을지 모르지만, 그룹 내에서 달리 하는 일은 없던 이가 윤계상이어서, 생각해보면 나는 측은지심을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챙겨 보고 더 응원하고 그런 마음이 생겼던 거라면. 데니안에 대한 마음은, 대충 보면 그 존재가 희미하지만 그래도 음악에 대한 의지나 열정은 확고하게 느껴져서 기본적으로 믿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잘 헤쳐나가겠지- 라거나, 잘 하고 있을 거야- 라는 식의 마음 말이다.

내가 데니안보다 윤계상을 더 좋아하게 된 건(이제는 이 사실을 인정하지만, 한 몇 년 동안은 그래도 난 데니안의 팬이라고 우기고 살았다.) 이런 마음의 차이 때문이었다. 나는 윤계상은, 언젠가는 무대 위를 떠나서 방황하게 될 거라 생각했다. 그에 비해 데니안은 늘 무대 위에 남아있을 줄로 알았다. 방황할 사람은 걱정이 되었지만, 남아있을 사람은 걱정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이런 믿음과는 달리, 두 사람은 결국 크게 다르지 않은 길로 접어들었다.

<기다리다 미쳐>에 데니안이 출연한다는 걸 알았을 때, 반갑거나 놀랍거나 하는 마음보다도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다. <발레 교습소>에 윤계상이 출연하고, 기대한 것보다 더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주었을 때 내가 꽤 흐뭇하고 즐거웠던 것을 생각하면 역시 내가 데니안에게 바라는 건 윤계상에게 바라는 것과 다른 것이었던 모양이다. 때문에 한동안 이 영화를 볼까 말까 망설였지만, 어느 한가한 휴일 오후 그냥 데니안을 봐버리기로 했다. 무대 위의 데니안이 아니라, 영화 속의 데니안. 오랜만에 보는 얼굴은 반가웠고, 예전에 내가 좋아하던 그 가수가 맞구나 싶었지만, 그래도 역시낯선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단순히 더 이상은 데니안이 미남자로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이 내가 바란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덕분에 영화는 나쁘지 않고, 기대 이상이라는 평에도 동의하지만, 그다지 기분 좋게 영화를 보진 못했다. 아이돌 가수의 미래라는 것이 다 거기서 거기이긴 하지만. 그들 중 누군가는 조금 더 꿋꿋하게 남아서, 음악에 매진해 줄 수는 없는 것일까. 정말로 그들은 모두 다 음악이 아니라 방송을 하고 싶어했던 것일까.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