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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dancingufo 2008. 8. 18. 01:17


개봉 전부터 온갖 미디어를 다 동원해 엄청나게 때려댔으니, 내가 일찌감치 이 영화를 보고 싶어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제목 센스도 괜찮고, 포스터 센스도 마음에 들며, 송강호도 나오니까.

그리고 김지운은 호감 감독도 아니고 비호감 감독도 아닌 만큼, 크게 훌륭하다고 여겨본 적 없는데 어디 나가서 상 받고 왔다 하니 어떤 영화를 찍었기에 상씩이나 받았나 궁금한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개봉하면 재빨리 영화관에 가서 보자, 싶었고 생각 만큼 재빠르게 보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챙겨서 보았는데.

일단 영화는 아주 재미있었다. 속도감도 좋았고(마지막엔 조금 지루하기도 했지만 140분의 러닝 타임이 실감나게 느껴질 정도는 아니었다.), 음악도 아주 좋았고, 김지운 영화니까 아주 당연하게 영상도 좋았다. 내가 눈 호강 시켜주는 영화에 혹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어쨌든 장면 하나하나에 세심한 정성을 기울인 것이 테가 나는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조금 기분이 좋긴 하다. 사실 여태까지 김지운은 지나치게 세세한 곳에 신경을 쓰느라 큰 부분을 놓치고 있다는 느낌도 들곤 했는데 이번 영화는 그런 느낌도 없고 해서 확실히 이 영화는 내가 본 김지운 영화 중 최고였던 것 같다.

내가 이 영화를 즐겁게 보게 해준 일등 공신은 송강호다. 정말이지, 보는 동안 몇번이나 깔깔깔 소리를 내어가며 웃었는데 그 대부분의 송강호의 덕이었다. 송강호는 그저 우스꽝스러운 데 그치지 않고 웃으면서 감탄사를 늘어놓게 하는 배우라 결국 당신이 최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뛰어난 연기력을 갖춘 배우들은 지나치게 센 포스로 영화를 잡아먹어버리는 경우도 있는데, 송강호는 정말 굽힐 때와 설 때를 제대로 안다. 그래서 영화를 살리고, 자기도 살며, 상대 배우도 살릴 줄 아는 배우. 여러모로 최고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배우다.

그리고 나도 눈이 있는 만큼 절로 '우와~'라는 감탄사를 연발할 수밖에 없게 했던 정우성의 간지는 실로 놀라웠다. 초반에 무게 딱 잡고 나오는 이병헌도 꽤 멋져서(물론 난 여전히 이병헌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송강호와 이병헌의 포스에 정우성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궁금한 마음도 들었다. 그런데 귀시장서 줄 타고 날아다니는 장면부터 조금씩 간지를 발휘하기 시작하더니, 막판에 만주 벌판에서 말 타고 달릴 때는 뭐, 그냥 아주, 저 사람 한국인 맞나- 싶었으니까.

잘은 모르지만, 정우성 정도면 남자들도 보면 참 멋있어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이와 같은 생각을 <달콤한 인생>의 이병헌을 보면서도 했는데, 그러고보면 역시 김지운은 폼생폼사 남자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데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

김지운이 예전에 <어린 연인>이라는, 요즘 애들은 전혀 모를 테고 내 또래 사람들도 거의 기억 못할 영화를 찍었던 걸 기억하는데 그 영화 본 적은 없지만 어쨌든 좋은 평은 거의 못받았을 거다. 그런데 그 후에 <조용한 가족>으로 슬쩍 기지를 발휘하는가 싶더니 <반칙왕>부터는 여기저기서 좋은 평을 참 많이 들었다. 그리고 <장화, 홍련>과 <달콤한 인생>으로 확실하게 뜬 것 같지만, 사실 난 그 두 편 다 지나치게 폼 잡는군 싶어서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번 <놈놈놈>은 아주 마음에 들어서 어떤 사람이든 좋은 쪽으로 성장할 수 있는 거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이 영화에서는 정우성이 좋은 놈이고 이병헌이 나쁜 놈이고 송강호가 이상한 놈이라는 걸 알았는데(영화를 보기 전에는 막연하게 이병헌이 이상한 놈일 거라 생각했다. 정우성은 당연히 좋은 놈, 송강호가 나쁜 놈.). 사실 셋 다 사연 있어 그러고 떠돌아 다니는 데다가, 나라도 잃고 타지에서 황량하게 살아가고 있으니까 모두 불쌍한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우성이 좀 착한 목소리로 조곤조곤 이야기하고 있다고 해서 크게 좋은 놈같지도 않았고(그런데 가만 보면 정우성은 독립 운동가인 것도 같으니까 어쩌면 진짜 좋은 놈인지도 모른다.) 송강호도 좀 독특한 얼굴로 좀 독특한 옷을 입고 좀 독특한 말투로 말을 하긴 하지만 크게 이상한 놈 같지도 않았다. 물론 이병헌은 진짜 나쁜 놈 같은 구석이 있긴 했지만, 사실은 윤태구(극중 송강호)가 진짜 1등이라는 것 때문에 엄청 상처를 입고 사람들이 윤태구에 대해서 말할 때마다 발끈하니까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못난 놈에 더 가까운지도 모른다.

어쨌든 박창이(극중 이병헌)를 보면서 한 생각인데, 남자들은 학교 다닐 때도 누가 짱이고 누가 그 다음 짱인지에 목숨 거는 것 같더니 나이 들어서도 여전한가 보다. 대체 싸움 순위가 뭐가 그렇게 중요한지 모르겠지만 그건 뭐 놈들 세계의 일이고.

좋은 놈도 보고, 나쁜 놈도 보고, 이상한 놈도 보았지만 그렇다고 크게 놈들에 대한 이해가 넓어진 건 아니다. 다만 웃긴 놈도 보고, 멋진 놈도 보고, 대단한 놈도 보았으니 영화로 만날 수 있는 괜찮은 놈들은 다 만난 것 같다.

신드롬을 불러 일으키는 영화들은 (때로는 예외도 있긴 하겠지만) 나름대로 다 그만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거란 생각을 한다. 네가 대체 <놈놈놈>을 좋아할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웃하던 친구의 걱정과는 달리 이 영화를 즐겁게 볼 수 있어 참 좋았다. ost를 구해 들어야겠구나- 생각을 하고 있고 기회가 닿는다면 한 번 더 보는 것도 괜찮을 거란 생각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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