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2008년 11월 5일, 팔십 세 번째 책. 본문

아무도 모른다/2008.01 ~ 2008.12

2008년 11월 5일, 팔십 세 번째 책.

dancingufo 2008. 11. 6. 02:00

날이 춥다. 그리고 감기는 나을 생각을 않는다. 요 며칠, 계속해서 말을 할 일이 있어 나을만 하면 다시 붓고 나을만 하면 다시 붓는 것의 반복이다. 저녁이 되면 푹 잠긴 목에 매번 다음날의 발표를 걱정하고 있으니, 이것도 꽤 스트레스다. 쉬면 괜찮아지려니 했지만 이번엔 회복의 속도도 예전만 같지 않다. 덕분에 요즘은 기분까지 덩달아 가라앉아버렸다.

프랜시의 이야기를 읽다가 어쩐지 좀 짠해졌다. 사실 프랜시는 그렇게까지 불쌍한 아이는 아닌데, 그런 상황 속에서도 불쌍하지 않을 만큼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이 짠한 것이다. 나는 열 몇살 때  단 한 번도 그렇게 긍정적이었던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올해엔 꼭 100권 이상의 책을 읽겠다고 결심하고 있었는데, 어쨌든 <나를 있게 한 모든 것들>이 83권째 책이다. 스타트가 꽤 좋아서 100권을 충분히 넘겠다 싶었던 연초의 생각에 비하면 기대 이하의 성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목표 달성엔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아 다행이다.

자꾸만 뒷걸음질을 치게 된다. 잘못한 것도 없고, 아무것도 달라진 것도 없는데, 왜 자꾸 내가 이렇게 피곤해지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냥 계절을 타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버리는 것도 나쁠 건 없다. 하지만 이렇게 계속 걸어도 달라질 건 없다는 걸 아는데, 어째서 뒷걸음질 치면 안 된다는 걸까. 내가 도망가면 안 되는 이유가 대체 무엇이지?

시월에 산에 올라 보았던 새빨간 단풍잎이 생각났다. 그리고 해안도로를 달리면서 보았던 남쪽의 바닷가도. 그 말대로 돈과 내 시간을 바꾸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다가올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을 용기가 없는데, 날더러 어쩌라는 말일까. 가난한 내가 아니라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로 있을지도 모를 내가, 너무나 두려운 걸 대체 어쩌라는 말일까.

다시 공기가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아마 또, 자주, 골목을 오르면서 생각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새벽 집으로 돌아오던 골목길에 내가 한 생각이 그렇게 거짓인 것만도 아니다. 때때로 나는, 이 모든 것들이 영영 내게서 사라져버리기를 원한다.

그래서 상처주고 싶지 않다는 이 바람도 언젠가는 새까맣게 잊힐지도 모른다. 기실 그것보다 더 강한 바람은 절대로 상처받거나 울고 싶지는 않다는 사실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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