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 본문

피도 눈물도 없이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

dancingufo 2008. 11. 17. 02:43

나는 엄마가 울고 있는 걸 본 적이 있다. 어쩌면 이 기억은 잘못된 기억일지도 모른다. 엄마는 내 앞에서 눈물을 보였을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도 언젠가 엄마가 울고 있는 걸 분명히 본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아마도 자라는 동안 내내, 엄마가 슬플 거라고 생각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엄마를 생각하면 목이 아프다. 엄마는 자주 웃고 농담을 잘하며 유쾌한 사람인데, 나는 자꾸 엄마를 생각하면 울고 싶어진다. 엄마의 삶을 슬픔으로만 가득 찬 것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런데도 이렇게 엄마를 생각할 때마다 목이 아픈 것은 언제나 엄마에게 미안하기만 한 내 마음 탓일 것이다.

사실 아무리 신경숙의 책이라 하더라도 <엄마를 부탁해>라는 제목을 봤을 때는 이 책을 읽고 싶지가 않았다. 이 책을 읽게 되면 내가 엉엉 소리를 내서 울게 되리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이 지독한 콤플렉스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어차피 엄마에 대한 미안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딸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어쩔 수 없는 마음으로 책을 손에 쥐고 보니, <엄마를 부탁해>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적나라하게 슬프다. 신경숙은 이렇게 무작정 우리를 울게 하는 사람이 아니었건만 이번의 신경숙은 지금까지와는 다르다. 책을 들고서 자꾸만 눈물이 나 결국은 지하철 안에서 읽는 것은 포기해 버렸다. 그리고 침대 위에 누워 뚝뚝 눈물을 흘리면서,

어떤 사람에게는 반드시 써야만 하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상에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이야기가 있다. 외딴 방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이 고행이었을 것처럼 이 또한 그리 쉽지는 않겠지만, 마음속에만 묻어둘 수는 없는 이야기라는 것이 누군가에는 분명히 존재한다.

나는 바티칸 시국에 가고 싶다. 올초부터 꾸준히 해온 생각이다. 신경숙은 그런 내 마음을 알고 있기라도 하다는 듯 바티칸 시국에서 장미 묵주를 샀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 번 그 나라에 대해 궁금해 하다가, 문득 프랑크푸르트에 가보고 싶다던 엄마의 말을 떠올렸다.

책에서 너무 많이 봐서 그런가. 엄마는 프랑크푸르트에 가보고 싶다.

라고 말하던 엄마.

엄마. 독일을 좀 재미없지 않아?

라고 대답하던 나.

나는 좋은 딸이 아니다. 생각해보면 엄마에게 말도 없이 비행기를 타고, 그로부터 한참이나 시간이 지난 후에 엄마에게 그 이야기를 하면서도, 엄마에게 선물 하나 건네준 적이 없다. 그러니 반드시 엄마를 프랑크푸르트에 데리고 가야겠다. 언젠가 한 번쯤은 반드시 엄마와 함께 비행기를 타야만 한다.

누군가 반드시 살아남길 원하는데 작가는 그를 무참히 죽여 버린다. 이번의 신경숙도 다르지 않다.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용기가 어떻게 생겨나는 것인지 나는 아직 모른다. 그저 그들이 기억하고 있는 것보다는 그 삶이 조금 더 가벼웠기를. 조금만 더 행복했기를. 그리고 나는 절대로 잊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엄마, 나는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좋아.

라고 말했던 날의 진심. 그리고 엄마가 있으므로 무리를 해서라도 잘 살아나가겠다는 다짐 역시.

나에게 다시 기도할 시간이 주어진다면,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해야겠다. 부디 우리 엄마를 부탁한다고 말이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