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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 이성과 감성. 본문

피도 눈물도 없이

제인 오스틴, 이성과 감성.

dancingufo 2008. 11. 21. 02:41




스물 한 살에 <센스 앤 센서빌리티>를 보았다. 보면서 무척 지루했기 때문에 보고 난 후에도 그저 '재미가 없었다.'라는 기억만 남은 영화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서 받은 영향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내가 한동안이나마(실은 몇 년동안 그랬던 것 같으니 꽤 오래) 휴 그랜트를 싫어했다는 것이다. 영화가 끝나는 순간, 그 내용이 거의 기억도 안 날 만큼 재미없게 보았음에도 극중의 휴 그랜트가 매우 우유부단하여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느낌이 강하게 남은 탓이었다.

그리고 몇 년 후에 나는 <어바웃 어 보이>를 본 덕분에 휴 그랜트를 꽤 마음에 드는 배우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그러면서도 내가 휴 그랜트를 어째서 싫어했는지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만큼 나에게 <센스 앤 센서빌리티>는 희미하고 가벼운 인상조차도 남기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했는데 참 우스운 것은.

<이성과 감성>을 읽으면서 나는 어찌나 이 이야기가 재미있던지 읽는 내내 히히하하호호 웃음을 지었다는 사실이다. 제인 오스틴은 역시 재미있다고 속으로 몇 번이나 감탄을 했다. 그리고 책을 다 읽은 후 별 생각없이 작품 해설을 읽는데... 그랬는데 말이다.

'이성'은 센스. '감성'은 센서빌리티. 그러니까 <센스 앤 센서빌리티>는 <이성과 감성>을 영화화한 작품이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머리를 한 대 맞기라도 한 것처럼 멍해서 잠깐 가만히 앉았다가 그제야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휴 그랜트가 바로 에드워드 페라스처럼 우유부단해서 내 마음에 안 들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 바로 에드워드 페라스! 엘리너가 애정을 바치기엔 너무 눈에 띄는 점이 없다고 생각했던 에드워드 페라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에드워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싫다는 생각까지야 들지 않았지만, 엘리너의 짝이 되기엔 너무 많이 부족한 느낌이었다. 그런데도 결국 엘리너와 에드워드가 결혼에 이르는 것을 읽고 좀 맥빠지는 기분도 없지 않았다. 사실 엘리너에겐 차라리 브랜든 대령이 어울린다고도 생각했다. (작품 해설을 한 사람은 독자들이 메리앤을 더 좋아할 거라고 했지만, 난 내내 메리앤이 싫었다. 그러니 페라스씨에게 엘리너가 아깝듯이 메리앤에겐 브랜든 대령이 아깝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에드워드라는 인물에 대한 내 거부감은 몇 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던 것인지, 에드워드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은 바로 그 이유로 나는 휴 그랜트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이제야 깨닫고는 조금 우스운 생각이 들었고, 그리고 이 마음으로 다시 한 번 <센스 앤 센서빌리티>를 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끔 하는 생각이지만, 내가 만약 열 몇살 때 제인 오스틴을 읽었다면 나는 결코 이 작가의 글을 재미있어하지 않았을 것이다. 갓 스물을 넘겼던 언젠가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더 적은 편의 영화를 보았고, 훨씬 더 적은 수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에 대한 진지한 감상 같은 것, 가지고 있지 않았으니 <센스 앤 센서빌리티>를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제인 오스틴의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그렸는지 다시 보고 이번에도 이 영화가 나에게 지독히도 심심한 영화로 남을지 확인을 해보아야겠다.

나는 제인 오스틴이 좋다. <오만과 편견>을 너무나 재미있게 읽었고 <이성과 감성>도 매우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방법이나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비슷비슷한 감은 없지 않지만, 그 또한 제인 오스틴의 색깔로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이 작가의 방식은 마음에 든다. 하여, 다음엔 <엠마>를 읽을 계획인데  이 작품은 비록 그 제목이 좀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그 내용 만큼의 앞의 두 작품 만큼이나 내 마음에 쏙 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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