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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렌 조이 파울러, 제인 오스틴 북클럽. 본문

피도 눈물도 없이

커렌 조이 파울러, 제인 오스틴 북클럽.

dancingufo 2009. 1. 8. 03:13

내 취향은 버나데트와 같다. 오스틴의 작품 중 최고의 작품은 당연히 <오만과 편견>이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다아시 만큼 매력적인 남자 주인공은 오스틴의 그 어떤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오스틴의 남자 주인공들은 대체로 지루하고, 그렇지 않다면 바람둥이다. 하지만 다아시는 분별력이 있지만 오만한 구석이 있으며, 냉철해 보이지만 누군가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는 손을 내밀 줄 안다. 또한 사려 깊고 현명하며, 무엇보다 작품 속에서 변화를 보이고, 오스틴이 그린 대로 보자면 키도 크고 미남인 데다 부자이기까지 하며 쉽게 사랑에 빠지지도 않는다. 다아시는 절대로 지루하지 않고 바람둥이도 아니다.

오스틴의 남자 주인공 중 다아시 만큼 다채로운 특질을 가진 인물은 없다. 오스틴이 가장 좋아한 여자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조슬린은 그 인물이 바로 에머라고 말한다.), 남자 주인공은 분명히 다아시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해서 유독 다아시만(!) 그토록 멋지게 그려낼 수 있단 말인가. 오스틴의 이야기가 무척 재미있긴 하지만, 오스틴의 남자들은 그다지 멋진 편이 아닌데 말이다.

다아시 만큼 압도적이진 않지만, 리지(엘리자베스 베넷) 역시 매력적인 인물이다. 오스틴의 여자 주인공들은 대체로 언제나 분별력 있게 행동하는 편인데(물론 에머나 메리앤은 그렇지 않지만.), 그에 비해 리지는 매우 재치가 넘치면서도 때때로 무례한 행동을 하고 신중하지 못한 판단을 내릴 때가 있다. 엘리너나 앤이 지나치게 한결 같아서 다소 평면적이라면, 리지는 이런 특질 때문에 매우 입체적인 인물로 느껴진다.

사실 <오만과 편견> 읽으면서 리지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적도 많지만, 오스틴의 여자 주인공들 중 다아시와 어울릴 수 있는 여자는 리지뿐인 듯하다. 아마도 그래서 나는 리지를 조금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다아시와 제인(리지의 언니.)이 결혼했어야 한다고 말했다지만(메리 러셀 밋포드라는 여자가 그리 말했다.), 다아시와 제인이라니. 그런 결합을 나는 상상도 할 수 없다. 다아시는 절대로 제인 같이 온순하기만 한 여자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제인 역시 절대로 다아시를 감당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마냥 착하고 온순하기만 여자 주인공은 재미가 없다. 그렇지만 나는, 패니 프라이스만은 무척 좋아한다. 패니는 너무 병약하고 지나치게 소극적인 데다 소심하기까지 하지만, 그래도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을 만큼은 강한 면을 가지고 있다. 오스틴의 여자 주인공들 중 패니 만큼 굳건하게 자신의 사랑을 지킨 인물이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라. 리지는 한때 콜린스를 좋아했으며, 앤은 주위의 반대 때문에 웬트워드 대령을 포기한 적이 있고, 에머는 아주 오랫동안 나이틀리씨의 사랑을 깨닫지 못했으며, 메리앤은 윌러비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패니는 에드먼드가 메리를 사랑하는 동안에도 언제나 변함없이 에드먼드만을 사랑했으며, 헨리가 자신에게 그토록 끊임없이 구애를 할 때도 한결같은 태도로 헨리를 거절했다. 패니는 가장 약해보이지만, 사랑 앞에서는 가장 강한 인물이다. 물론 그것이 내가 패니를 예쁘게 여기는 이유는 아니지만 말이다. (내가 패니를 좋아하는이유는, 단순히 패니가 사랑스러워서이다.)

조슬린이, 오스틴이 에머를 가장 좋아했을 거라고 생각한 근거는 에머만이 자신의 이름을 책 제목에 올렸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그도 그렇다. 오스틴이 누군가의 이름을 책 제목으로 내건 것은 <에머>뿐이다.

하지만 나에게 에머는 그다지 매력적은 인물이 아니다. 에머는 신중함과 지혜로움이 결여된 인물이고, 다소 속물적이어서 품위 또한 갖추지 못했다. 에머가 가지고 있는 것은 미모와 재산, 신분, 그리고 젊음뿐이다.

이런 에머에 비하면 엘리너와 앤은 품위 있고 분별력을 갖추었으며 남을 배려할 줄 아는 현명한 여자들이지만, 크게 매력적인 구석은 없다. (하지만 난 두 사람 모두를 좋아하는 편이다.) 엘리너와 앤은 너무 착하고 너무 배려심이 깊고 너무 신중해서 종종 지루해진다. 게다가 엘리너는 결혼마저, 더 할 나위 없이 지루한 남자와 하지 않던가. 

에드워드 페라스는 엘리너의 짝이 되기엔 여러모로 부족하다. (오스틴이 짝지어준 주인공 커플 중, 남자가 여자에 비해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커플은 엘리너와 에드워드 커플뿐이다. 물론 <에머>의 프랭크 처칠 역시 자신보다 훨씬 나은 제인과 결혼하지만 이 커플은 조연에 속하니 제외하자.) 그에 비해 에드먼드는 패니의 짝이 되기엔 손색이 없다. 에드먼드 역시 에드워드처럼 지루한 인물이긴 하지만, 그래도 에드먼드는 결단력이 있고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줄 안다.

다만 나는, 에드먼드가 그토록 좋아했던 메리를 버리는 과정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에 이야기의 후반부에서 에드먼드에 대한 애정을 조금 잃었다. 게다가 패니를 좋아하는 독자의 입장에서, 에드먼드가 너무 오래 패니를 짝사랑에 빠져있게끔 내버려둔 점과 그다지 매력적이지도 않은 메리 때문에 패니를 알아보지 못한 점이 괘씸하기도 하다. 

캐서린과 틸니는 아예 나의 관심 밖이니 딱히 거론할 것도 없다. 하지만 내가 너무 좋아하는 그리그는 오스틴의 작품 중 <노생거 사원>을 가장 좋아한다! (버나데트는 <노생거 사원>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고 말한다. 역시 버나데트의 취향은 나와 잘 맞다. 그런데 버나데트도 다아시를 좋아했던가? 그건 잘 모르겠다. 누군가가 메리를 좋아했는데, 어쩌면 그이가 버나데트였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렇다면 그 취향만은 나와 맞지 않다. 나는 메리를 좋아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싫어한다.)

어쨌든 비록 그리그는 나와 취향이 맞진 않지만, 나는 그리그가 매우 좋다. 사실 그리그는 다아시 만큼이나 마음에 드는 인물이다. 그런 점에서 조슬린과 에머의 공통점은 비단 중매를 좋아한다는 것뿐만은 아닌 듯하다. 에머가 그랬던 것처럼, 조슬린도 운이 좋다. 에머는 자신보다 훨씬 더 현명한 나이틀리를 만나고, 조슬린은 자신보다 훨씬 젊고 속눈썹이 긴 데다 세 살 때 자기 스스로 강아지가 되기로 마음 먹기까지 한 그리그를 만나니까. 

그래도 다행스러운 건, 에머보단 조슬린이 훨씬 더 괜찮은 여자라는 점이다. 조슬린은 그리그보다 나이가 많긴 하지만, 그리그의 짝이 되기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사실 <제인 오스틴의 북클럽>에 등장하는 여자들 중 조슬린이 가장 내 타입이긴 하다. 그 다음을 고르자면 아마도 당연히, 프루디겠지. 

프루디는 제인 오스틴을 좋아한다. 그리고 나도 그렇다. 프루디는 <맨스필드 파크>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사십장이 넘는 메모를 한다. 나도 제인 오스틴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면 밤도 새울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나는 프루디 같은 친구를 원한다. 그녀가 프랑스어를 쓰지 않는다면 더욱 더 좋겠지만, 프랑스에 가보지도 않았으면서 프랑스를 사랑하는 프루디의 마음을 모르지는 않는다. 나 역시 스페인에 가보기 전부터 스페인을 너무나 사랑했으니까. (생각해보면 프루디는 다소 패니와 닮지 않았던가. 늘 조금 어둡고, 늘 조금 놀란 듯한 표정의 다소 신경질적이고 지나치게 예민한 여자라면 패니와 꽤 닮았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오스틴의 여섯 작품이 다 나름대로 재미있지만 그 재미에 차이가 있는 것처럼 <제인 오스틴의 북클럽>에 등장하는 여섯 명의 인물들도 나름대로 다 매력이 있지만 그 매력에 차이가 있다. 알레그라는 내게 그냥 그런 인물이다. 그녀가 그렇게 예쁘다고 해도, 나는 그녀의 성격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게다가 그녀는 제인 오스틴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것 같다. 실비아 역시 내 마음을 크게 흔들지는 못한 걸 보면, 이 모녀는 나와 궁합이 맞지 않는 모양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알레그라는 메리앤 같고, 실비아는 앤 같다. 어쩌면 나이가 든 캐서린에 가까운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분명한 건 오스틴의 여섯 작품이 다 읽어볼만 한 가치가 있는 작품인 것처럼, 이 여섯 인물의 이야기 역시 모두 다 들어볼만 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리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너무나 사랑스럽다. 프루디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으면 그 누구도 프루디를 미워할 수 없을 것이다. 조슬린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나는 그녀를 너무나 잘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당연히 직선적인 비교는 불가능 하지만, 어쨌든 오스틴의 책들이 다 흥미로웠고 나를 즐겁게 했던 것처럼 <제인 오스틴의 북클럽> 역시 매한가지다. 만약 제인 오스틴을 좋아하고 그래서 제인 오스틴을 읽는 사람이 있다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 책 역시 읽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스스로 제인 오스틴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제인 오스틴을 이렇게나 멋지게 다시 살려놓은 작품이 있는데도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제인 오스틴의 팬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오스틴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 책 역시 꼭 읽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누군가 내게 와서 이 책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면, 나 역시 40장이 넘는 메모를 해가며 즐겁게 수다를 떨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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