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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타 크리스토프,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본문

피도 눈물도 없이

아고타 크리스토프,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dancingufo 2009. 6. 4. 02:32

Lucas가 있고 Claus가 있다. 그리고 둘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가 있다. 이 중 어느 쪽을 진실로 믿을 것인지는 읽는 이가 정하면 된다. 나의 경우엔 처음과 두 번째는 Lucas가 쓴 이야기로서 읽었고 세 번째 이야기는 진실로서 읽었다.

'비밀 노트'는 Lucas가 쓴 이야기로서, 진실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읽으면 안 되는 비밀 노트이다. '타인의 증거'는 자신에게 형제가 있음을 증명하고 싶어서 Lucas가 만들어낸 이야기다. '50년간의 고독'은 Lucas는 홀로 버려졌기 때문에, Claus는 홀로 남겨졌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고독에 관한 진짜 이야기다. 이것이 나의 해석이지만, 누군가는이런 나의 해석을 틀렸다고 생각할 것이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은 그런 책이다. 진실을 판단하는 것은 읽는 이의 몫이다. 누구도 누군가를 틀렸다고 말할 수 없고, 누구도 자신이 옳다고 역시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쪽이 진실이고 어느 쪽이 거짓인가 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도 아니다. 이야기는 이야기로서 읽으면 된다. 어차피 우리가 읽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진실이 아니니까 말이다. 

전쟁이 있고 아이들이 있고, 성장이 있고 상처가 있다. 무뎌지는 마음이나 몸. 헤어짐과 고통. 사랑하는 마음과 잔인한 마음. 죽음. 외로움. 그리움.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를 넘어서, 내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정체성에 관한 혼란. 피붙이를 죽음으로 내모는 지키고 싶은 것에 대한 욕구. 이 많은 것들 중 어느 것을 마음에 남기는가 하는 것도 역시 읽는 이의 몫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마음에 남긴 것은,

어느 것이 진짜 이야기든, 늘 홀로 버려지는 쪽에 서있는 Lucas의 외로움. 소중한 것들로부터 한 번도 사랑받지 못했고, 종국에는 형제에게서도 '아니오.'라는 대답 밖에 듣지 못한 Lucas가 마음이 아프다.

사실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건 신경숙 때문이다. 교보문고 사이트에서 명사가 추천하는 책이라는 형식으로 몇 명의 소설가나 동화 작가, 가수나 배우가 대여섯권씩 책을 추천하는 코너가 있었는데 거기서 신경숙이 이 책을 추천한 것이다. 그런데 두어달 전, 나는 신경숙 때문에 선택했던 <고양이 대학살>을 정말로 어렵게 읽어냈고 <사랑은 지독한 혼란>은 읽다가 아예 중도하차 해버렸기 때문에(물론 이대로 안 읽을 생각은 아니고, 언제고 다시 읽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는 잘 모르겠다. 시작부터가 흥미롭지 못했던 이 책을 다시 읽기엔, 당장 읽고 싶은 다른 책들이 너무 많다.) 신경숙이 추천했다는 이유만으로 책을 사는 게 조금 망설여졌다. 그래서 얼마간 고민을 하다가 한 번만 더 믿어보자!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샀는데, 이번엔 정말 확실하게 나를 사로잡아버려서.

그래서 신경숙이 함께 추천했던 에밀 아자르의 <자기앞의 생>도 구입한 상태다. 이 책 역시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만큼이나 훌륭하길 바라진 않지만, 어쨌든 부디 나를 흡족하게 만들어 주어서 다음에도 신경숙을 믿고 책을 살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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