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요즘 내가 읽는 것들, 2009년 6월 본문

피도 눈물도 없이

요즘 내가 읽는 것들, 2009년 6월

dancingufo 2009. 7. 3. 00:49


<구입한 책>
마크 해던 -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문학수첩리틀북스)
유시민 - 유시민과 함께 읽는 프랑스 문화 이야기(푸른나무)
유시민 - 대한민국 개조론(돌베개)
유시민 -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푸른나무)
유시민 - 노무현은 왜 조선일보와 싸우는가(푸른나무)
유시민 - 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 이야기(푸른나무)
장 지글러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갈라파고스)
장하준 - 나쁜 사마리아인들(부키)
한비야 -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푸른숲)

<읽은 책>
김규항 - 예수전(돌베개)
유시민 - 후불제 민주주의(돌베개)
유시민 - 거꾸로 읽는 세계사(푸른나무)
구드룬 멥스 - 작별 인사(시공주니어)
유시민 - 유시민의 경제학 까페(돌베개)
마크 해던 -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문학수첩리틀북스)
유시민 - 노무현은 왜 조선일보와 싸우는가(개마고원)
유시민 - 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 이야기(푸른나무)


읽은 책은 읽은 순대로 적고 있지만 구입한 책은 작가의 이름순으로 기록하고 있다.

사실 난 굉장히 편독 성향이 강한 독자라서 (교과서나 잡지류는 제외하고) 사는 동안 읽은 책의 90% 이상이 문학 작품일 가능성이 높다. 나머지 10% 중 7~8%는 역사 관련 책일 것이며, 그러고도 남는 2~3%가 이런저런 기타 장르의 책들일 것이다. 그러니까 난 인문·사회·경제·정치 등등의 책들에 정말 관심이 없다는 말이다. 정말이다. 그나마 철학이니 심리학이니 하는 것은 좀 낫지만 그 외의 책들은 다 재미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달, 정치니 경제니 하는 것들을 계속 읽었다. 무엇이든 눈에 들어오는 대상이 있으면 일단 읽어야 하는 것이 습성이다. 덕분에, 마음이 좀 많이 허한 한 달이었는데 그러는 동안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기도 했고, 더불어 그렇고 그런 생각들을 떨칠 수도 있었다.

이 달, 내가 처음 손에 쥔 책은 김규항의 <예수전>이다. 그러고 보니 김규항을 처음 읽은 것도 벌써 4년 전 일이다. 2005년 봄, 저자에 대한 꽤 멋진 평과 함께 <B급 좌파>를 추천받은 일이 있어 그때 처음으로 이 사람의 책을 읽었다. <B급 좌파>는 꽤 멋진 책이었고 그래서 망설임 없이 <나는 왜 불온한가>도 손에 들었다. 사실 읽기 전에는 <B급 좌파>만 하겠는가, 싶었는데 그와 비교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어서 그 이후로 나는 김규항의 블로그를 기웃거리며 살았던 것 같다.

딱히 팬이라고 할 것은 아니나, 김규항의 말이나 생각들은 대체로 내 마음에 드는 쪽이었고 분명히 닮고 싶은 쪽이기도 했다. 그래서 2~3일에 한 번씩 블로그를 기웃거리다, 언젠가 곧 신간이 나올 거라는 글을 읽었고, 그래서 그 책을 꽤 기다렸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전>이다.

김규항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서 사람들이 김규항의 신간에 자극이나 카타르시스를 기대하겠지만, 책 팔려고 작정한 게 아니라면 뻔히 알면서도 그런 기대에 부응할 수 없다는 식의 글을 남긴 적이 있다. 그러므로 신간 <예수전>에는 그런 기대에 부응하지 않기 위한 여러 가지 장치들이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이 딱 맞게끔 <예수전>은 <B급 좌파>나 <나는 왜 불온한가>와는 많이 달랐다. 하지만 나는 김규항에게 자극이나 카타르시스 같은 것을 기대하는 독자가 아니기에, 불타오르는 김규항이 없어도 책을 참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따로 리뷰를 남긴 적이 있는 책이니 더 길게 이야기할 것은 아니나,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읽어볼 만한 책임은 분명하다.

<후불제 민주주의>는 유시민이 가장 최근에 발표한 책이다. 정치에도 경제에도 관심 없는 내가, 경제학과를 졸업한 前 장관의 책을 열심히 읽고 있다는 것은 내가 보기에도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그런데도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절반은 쉽게 글을 써내려간 저자의 역량덕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저자에 대한 내 관심의 덕이었을 것이다.

유시민의 헌법 에세이’라는 부제에서 알려주듯 <후불제 민주주의>는 교양서적이라기보다는 에세이에 가깝다. 그러니까 이 책은 크게 어렵거나 심오하지 않다. 이 책속에 민주주의에 대한 심오한 진리 같은 게 숨어 있으리라고 기대해선 안 된다. 유시민이 제시하는 건 ‘헌법에 입각한 정치를 하면 민주주의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다.’는 간단한 명제이다.

물론 그 간단한 명제를 모르거나 외면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 그래서 유시민은 답답하거나 안타깝거나 화가 날 것이다. 사람들은 유시민을 흔히 ‘튀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사실 유시민은 그 누구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를 살았기 때문에 (또는 살고 있기 때문에) 자꾸 가파르거나 팍팍한 표정을 짓고, 거침없는 독설을 날리면서 살게 된 게 아닐는지.

개인적으로는 보건 복지부 장관을 맡게 된 과정에 관한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읽으면서 노통 생각이 많이 났고 그래서 조금 가슴이 아팠는데, 이 책에 이 만큼 마음이 아프면 노통의 책은 어떻게 읽을 것인가 겁이 났다. 그래서 일단 나는 다음 길은 우회해서 걸어가 보기로 했다.

그렇게 선택한 <거꾸로 읽는 세계사>는 이달 읽은 책 중 최고라고 할 만한 책이었다. 나름 세계사는 꽤 꿰고 있다고 생각했건만 유시민은 그런 내 생각을 보기 좋게 무너뜨렸다. 로마사를 특별히 좋아해서 그쪽 관련 책들은 여러 권 접했지만 마르크스라든가 레닌이라든가 마오쩌둥 등의 이름이 나오면 어쩐지 마음이 내키지가 않았다. 사회주의는 실패한 주의 같았고,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비극적이므로 마음이 아플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난 로마사도 멸망쯤의 이야기는 잘 읽지 않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5현제 시대의 서막을 연 아우구스투스와 한니발을 무찌른 젊은 영웅 스키피오의 이야기다. 이런 태도를 볼 때 난 어쩌면 역사보다도 영웅담을 좋아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슬금슬금 피해왔던 러시아와 중국의 혁명, 베트남 전쟁과 같은 이야기를 <거꾸로 읽는 세계사>에서 만났다. 역시, 마음이 아팠고 그럼에도 그 동안 이 이야기들은 외면해온 것을 조금 후회하게 되었다. 여러가지 이야기 중에서 특히 내 관심을 끌었던 것은 마오쩌둥이 이끈 홍군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사건을 너무나 흥미롭게 풀어놓아서 읽는 동안 ‘도저히 눈을 뗄 수 없다.’라는 기분이 들었다. 

정치도 별로고 과학도 별로고 교양, 언론, 종교 이런 것 다 별로 흥미롭지 않지만 그중에서도 최악은 지리와 경제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난 지리와 경제에는 언제나 젬병이었다. 때문에 나는 이 두 분야와 평생토록 화해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무의식 중에 가지고 있었는데, <경제학 까페>가 하필이면 유시민의 대표작 중 하나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 책을 읽기로 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이라면 <경제학 까페>가 나 같은 초보가 읽기에도 무리 없는 책이라는 사실이었다. 유시민이 제시한 ‘저축도 때로는 악덕이 된다.’는 것이나 ‘모든 독점이 사회악은 아니다.’라는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었고 당연하게 옳다고 여겨왔던 것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끔 해주었다. ‘합리적 다수결은 없다.’라는 파트는 굉장히 재미있었고 그래서 경제라는 게 마냥 지루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잠깐 느끼기도 했다. 덕분에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과 <나쁜 사마리아인>(이것은 <후불제 민주주의>에서 유시민이 언급했던 책 중 하나다.)을 구입할 용기를 낼 수 있었으니 나는 지금 유시민 덕분에 조금씩 용감해지고 있는 중이다.

잠깐 잊고 지나갈 뻔 했는데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읽는 도중에 <작별 인사>라는 아주 짧은 동화를 한 편 읽었다. 어느 날 갑자기 병에 걸려 죽은 언니에게 작별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동생의 이야기였는데 덤덤한 문체의 글이었음에도 조금 가슴이 짠했다.

그리고 <경제학 까페>를 끝낸 후에는, 뭔가 며칠 내내 밥과 채소만 먹었으니 이제 달고 단 초콜렛이나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는 기분 같은 게 들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이다. 사실 내가 읽고 싶었던 책은 <조지와 샘>이었는데 이 책은 구할 수가 없어서 대신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을 샀다. (두 책 모두 얼마 전에 읽은 닉 혼비의 책에서 저자가 거론했던 책이다. 이 책들은 모두 자폐증 아이를 등장시키고 있는데 닉 혼비 역시 자폐증 아이를 두고 있다. 닉 혼비는 자신의 아이가 자폐증을 앓고 있다는 이유로 그와 관련된 책을 자주 읽는 것은 아니지만, <조지와 샘>은 매우 훌륭하다고 평했다. 그에 비해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은 사건>에 대해서는 특별히 좋지도, 특별히 나쁘지도 않은 정도의 평가만 내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책은 ‘엄청나게 재미있다!’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분명히 ‘소설’이었기 때문에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계속해서 행복함을 느꼈다. 그러니까 내가 얼마나 소설을 사랑하는지(좋아하는 게 아니다. 사랑한다!) 새삼스레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틀 만에 후다닥 이 책을 다 읽어버리고 책장 앞에 서서, 다시 또 소설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잠깐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어쩌랴. 현재 내 책장엔 들고 다니면서 읽을 만한, 아직 읽지 않은 소설책이 한 권도 없다. 그래서 난 <노무현은 왜 조선일보와 싸우는가>를 골라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노무현은 왜 조선일보와 싸우는가>는 아주 재미있는 책이다. 그러니까 재미로만 치자면 웬만한 소설 못지않았다는 뜻이다. 이 책은 2002년 여름, 노통의 지지율이 바닥을 칠 때 출간된 것으로 당시 유시민은 거대 언론의 ‘노무현 죽이기’와 후단협의 노무현 낙마 움직임에 대해 분노하고 있었다. 그 힘으로 이 책을 6시간 만에 썼다고 하니,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단번에 술술 풀어내는 유시민의 능력도 참 대단하다.

이 책을 읽어보면 새삼 노통의 대담함과 용기, 그리고 보통 사람이라면 쉬이 가질 수 없는 배짱 같은 것을 느낀다. 옳은 신념을 가지고 있고 이 신념을 행동으로 옮길 용기가 있으며 위협에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대담함을 갖추었기 때문에, 유시민은 그토록 노무현을 사랑했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이 책을 읽는 동안, 권력은 늘 경계해야 하는 것이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권력을 의심하지 않고 그들이 말하고 보여주는 것을 그대로 믿는 동안에는 그 뒤의 진실을 영영 눈치 채지 못한 채로 살게 될 것이므로 말이다.

이 달의 마지막 책은 유시민의 <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 이야기>이다. 유시민은 역사를 믿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로 책을 시작해, 그럼에도 역사를 믿어야만 한다는 이야기로 책을 끝낸다. 즉, 역사가 말해주는 사실 그대로를 믿어서는 안 되지만 그럼에도 역사는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므로 역사의 힘을 믿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은 우리가 역사를 대하는 자세에 대해 알려주는 지침서라고 생각했다. 물론 책 속에는 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담겨져 있다. 하지만 유시민은 단지 사건을 알려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속에 어떤 의미가 숨어있는가를 보라고 말하고, 그 의미를 파악하여 역사를 이해하라고 이야기한다. 더불어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노라면, 그가 각각의 사건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하는 것도 어렴풋이 느껴진다.

내가 보는 유시민은 언제나, 지극히 주관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사람이다. 감정적이라거나 이성적이지 못하다는 뜻이 아니다. 그가 늘 자신의 뜻과 생각을 밝히는 데 있어 거리낌이 없다는 뜻이다. 유시민이 MBC ‘백분토론’을 진행할 때도, 시사평론가로 활동할 때도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종종 논란에 휩싸이곤 했던 것도 아마 이러한 이유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영웅과 대중’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7장이 꽤 재미있었다. 그가, 하필이면 경제학을 공부해 학위를 딴 이유로 앞으로도 경제를 다룬 책을 몇 권 더 읽어야 한다는 것은 조금 슬프지만(나에게 독서는 때때로 ‘의무’다. 싫거나 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읽어야 한다. 물론 대체로는 즐겁게, 내가 좋아하는 쪽을 고르긴 한다. 하지만 아무도 내게 읽으라고 강요하지 않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책들을 나는 왜 읽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저서 중간중간에 내가 즐기는 역사책도 섞여 있어 다행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한 달 내내 유시민의 책을 읽으며 버티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몇 권의 책들을 손에 들었다 놓으니 한 달이 금세 갔다. 독서 패턴은 다가오는 7월에도 아마 비슷할 것이다. 당분간은 초콜렛이나 아이스크림보다는 밥과 채소를 먹어야 할 것 같다. 맛은 덜하겠지만, 그로 인해 좀 더 균형잡힌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다면 그 또한 나쁘지 않을 것이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