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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도 눈물도 없이

요즘 내가 읽는 것들, 2009년 8월

dancingufo 2009. 9. 13. 03:26


<구입한 책>
자크 아탈리, 마르크스 평전
찰스 디킨스, 데이비드 코퍼필드2~3
스티든 갤러웨이, 사라예보의 첼리스트
(재구입)
아고타 크리스토프,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1~3
도리스 레싱, 고양이는 별나. 특히 루퍼스는...

<읽은 책>
홍세화, 빨간 신호등
량 슈린, 행복한 의자나무
위화, 허삼관 매혈기
린하이윈, 아버지의 꽃은 지고 나는 이제 어린애가 아니다
장 지글러,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자크 아탈리, 마르크스 평전
위화, 인생

이 달에는 반드시 마감해야 할 일이 하나 있어서 책을 읽을 시간이 별로 없었다. 그쪽으로 계속 신경을 쓰고 있었더니 책을 사는 데도 소홀했나보다. 며칠 전에 겨우 날짜에 맞춰 마감을 했기에, 읽은 책을 정리하는 시간도 늦었다. 결국 이래저래 독서에 소홀했던 8월이었으니, 이달에는 조금 더 열심히 읽기로 하자.

8월 들어 가장 먼저 읽은 책은 <빨간 신호등>이다. 사실 홍세화에 대한 첫 기억을 이야기하자면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중학교 2학년 때였던가, 영어 과목을 맡았던 선생님이 수업 중에 잡담을 늘어놓다가 아이들에게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를 추천한 적이 있다. 나란 사람은 Good-morning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부터 영어를 싫어했으니 영어 시간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는데, 이상하게도 선생님이 이 책을 추천했던 기억만은 또렷하게 남아 있다.

그렇지만 내가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를 읽은 것은 지난해인가 지지난해의 일이다. 오래 전 영어 선생님의 추천은 나에게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했고, 대신 김규항의 호감 가득한 평가가 나로 하여금 홍세화를 읽도록 만들었다. 다행히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는 매우 내 마음에 드는 책이었고 그래서 지난달, <빨간 신호등>을 우연히 발견했을 때 이 책의 저자가 홍세화라는 것을 안 이상 안 읽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별 망설임없이 <빨간 신호등>을 읽었는데, 안타깝게도 이 책은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만큼 마음에 드는 책이 아니었다.  

사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은 홍세화가 쓴 칼럼을 모아둔 책이다. 칼럼 모음집에, 자신의 경험담이 진솔하게 녹아있는 이야기와 같은 크기의 정서적 감흥을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칼럼이라는 것이 본래 쓰는 사람의 개인적인 시각이 매우 중요한 글이라, 내가 홍세화의 생각이나 시각을 불편하게 여기는 부분이 있다면 이 글들을 마냥 좋게 읽을 수만은 없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시선을 가지고 있고, 때로는 비슷한 시선을 가지고 있다 해도 다른 자리를 선택해서 설 때가 있다. 홍세화가 그르다고 말하는 것들이 그른 것임을 나도 믿고 있지만, 책을 읽는 동안 홍세화가 비난하는 것들을 감싸주고 싶을 때도 많았다. 관용. 정의. 포용력. 아량. 그 모든 것들을 나도 사랑하지만, 그럼에도 때때로 홍세화가 조금은 불편하게 여겨진다. 나는 늘 진보적인 지식인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이상하게도 홍세화나 진중권과 같은 이들에게 감정 이입을 잘 못한다. 그것이 내가 진보적이지 않기 때문인지, 그들이 말하는 진보가 구호처럼 여겨지기 때문인지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빨간 신호등>을 다 읽은 후, <행복한 의자나무>라는 짧은 그림책을 한 권 읽었고 그리고 그 다음으로 <허삼관 매혈기>를 읽었다. <허삼관 매혈기>는 내가 처음 읽어보는 위화의 책이다. 위화는 1983년에 데뷔를 한 작가이고 우리나라에 소개가 된 것 역시 10년이 넘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위화의 이름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이럴 때 내 마음의 한 귀퉁이가, 아주 살짝 구겨진다.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작가들이 너무나 많다. 또한 내가 읽지 못한 책들 역시 너무나도 많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왠지 가슴이 조금 답답해지는 기분이다. 한비야는 하고 싶은 일 다 하려면 120세까지 살아야 한다고 하던데, 나도 읽고 싶은 책 다 읽으려면 120세까지는 아니더라도 어쨌든 오래 살아야 할 것 같다.  

우리나라에 일본 소설은 아주 많이 소개가 되지만 중국 소설은 그렇지 않은 편이다. 주위를 보더라도 일본 소설을 즐겨 읽는 사람은 많지만 중국 소설을 즐겨 읽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난 일본 소설을 한때 자주 찾아 읽었는데, 이제 더는 읽고 싶은 생각이 없다. (물론 아주 흥미로운 작품이 나타나면 당연히 읽고 싶어지겠지만.) 그런데 중국 소설은 읽어본 것이 거의 없고 그래서 위화를 알게 되었을 때 이 사람의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인생>과 <허삼관 매혈기> 중 어느 것을 읽을까 고민하다가 후자의 제목이 조금 더 눈에 들어와서 이 책을 먼저 읽었다. (그런데 책은 <인생>이 훨씬 나았다.) <허삼관 매혈기>는 제목 그대로 허삼관이라는 남자가 피를 팔아서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내용인데 1/3 정도까지는 그냥저냥 밍숭맹숭한 기분으로 읽다가 중반부 이후부터는 좀 빠져 읽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허삼관이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지만 실은 자신의 아들이 아닌 일락이를 업고 국수를 먹으러 가는 장면이었다. 그때 난,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장면에서도 독자에게 울컥하는 기분을 전할 수 있는 거구나- 하는 것을 느꼈고 그래서 위화의 책에 좀 더 몰두하고 싶어졌다. 

<허삼관 매혈기>가 중상이라면, 그 후에 읽은 <인생>은 상상이다. (최상까지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이 영화를 원작으로 해 장이모가 만든 영화 '인생'이 1994년 칸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고 하는데 이 좋은 소설을 장이모가 어떻게 영화화했는지 보고 싶다. (물론 영화에서 원작의 감동을 찾기란 어려울 것이다. 그것은 장이모 감독의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어떤 영화도 원작 소설의 감동을 그대로 전해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인생>은 푸구이 노인이 한 평생 살아온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제목 그대로 '살아간다는 것'에 관한 이야기인 셈이다. 푸구이 노인은 한때 부귀를 누렸고, 한때 전쟁터에서 생사를 오가는 위기를 겪었으며, 한때 죽을 듯한 가난을 이겨냈고, 한때 사랑스러운 아들딸 덕분에 웃은 적도 있으나 아들과 딸, 아내와 사위, 그리고 손자마저 차례대로 장사를 지내주고 결국 소 한 마리와 함께 삶의 마지막 시간을 살고 있다. 격변의 시절을 온몸으로 겪어낸 푸구이 노인의 삶은 너무나 슬프고 너무나 아프지만 그럼에도 푸구이 노인은 소리내 울거나 좌절하거나 분노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참아내며 그 하나하나의 슬픔을 인생으로서 받아들일 뿐이다.

이런 푸구이 노인의 삶은 '강한 슬픔'같은 것을 알게 하고 도망가지 않는 삶, 누군가를 탓하지 않는 삶, 운명을 받아들이는 삶 같은 것을 느끼게 한다.

사실 아직 나에게 살아간다는 것은 힘겹게 버티거나 지지 않는 것이다. 주저앉지 않으려고, 뒤처지지 않으려고, 못난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각하기를, 살아간다는 것이 언제까지나 이런 모습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조금 더 나이가 들고 진짜 어른이 되면 지금과는 다른 말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얘기했으면 좋겠다. 

나의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볼 만큼, <인생>은 꽤 괜찮은 책이다. 그러니 이달에 추천할 책은 <인생>으로 정해야겠다. 매달 이렇게 한 권 이상씩은 마음에 쏙 드는 책을 찾을 수 있다니 이런 것은 참 좋다.




<허삼관 매혈기>를 읽고 바로 <인생>을 읽은 것처럼 썼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고, <허삼관 매혈기>를 읽은 후 <인생>을 주문하고 다시 이 책이 도착하는 동안 세 권의 책을 더 읽었다. 

그 중 첫번째는 린하이윈의 <아버지의 꽃은 지고 나는 이제 어린애가 아니다>이다. 이 책은 정말 표지가 무척이나 예쁘다. 내가 이 책을 읽은 것은 정말, 절반은 책 제목 때문이고 절반은 책 표지 때문이었다. 표지는 매우 서정적이고 제목은 너무나 아름답다. <아버지의 꽃은 지고 나는 이제 어린애가 아니다>라니. 이런 것이 정말로 가슴을 두드리는 그런 제목 아닐까.

그런 이유들로 하여 이 책을 선택해 읽었는데, 이 책은 그 이야기의 느낌도 딱 표지 같고 딱 제목 같다. 달리 슬픈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른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잉쯔의 눈은 매우 서정적이고, 꽃이 지는 순간 아버지의 죽음을 예감하고 어른이 되는 잉쯔의 마음은 슬프고도 아름답다. 

그런데 읽고 나서 안 것인데, <아버지의 꽃은 지고 나는 이제 어린애가 아니다>는 린하이원의 <<북경 이야기>> 2권에 속하는 책이었다. 결국 1권을 찾았으니, 순서가 바뀐 것은 좀 아쉽지만 그래도 2권 만큼이나 아름다우리라 기대하고 있는 <우리는 바다를 보러 간다>를 읽어야겠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 <우리는 바다를 보러 간다>를 읽기 시작했는데, 역시 1권의 느낌 또한 매우 좋다.)

 

이렇게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동화를 읽은 후에 내가 선택한 것은 느낌상으론 정반대의 지점에 서있는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이다. 내가 이 책을 사는 걸 보고 룸메이트 H는 '유시민 만난 이후 사람이 변했다.'는 말을 던졌다. 그러니까 난, 언제나 소설을 사랑하던 사람이었고 그 외의 장르를 읽어봤자 역사 정도였단 말이다. 그런데 왜 이런 책들을 읽게 되었느냐 하면, 딱히 이유를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어쩐지 한 번 간 관심을 거두어 들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고서도, 이 책을 구입한 지 몇 달이 지난 지금에야 읽는 건 아무리 관심이 있다 해도 이런 책들이 그다지 재밌지는 않기 때문이다; 역시 재밌기는 소설이 가장 재미있다. 사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 관한 이야기가 <살아간다는 것>에 관한 이야기처럼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며 그리하여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나를 사로잡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그런데도 꽤 집중해서 이 책을 읽어내는 것 보면, 내가 독서란 걸 꼭 재미나 감동 때문에 하는 것은 아닌가보다.

어쨌든 이 책에 대해 잠깐 소개하자면,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UN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인 장 지글러가 자신의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형식으로 '기아'에 대한 설명을 하는 책이다. 세계에는 모든 인류가 배부르게 먹고도 남을 만큼의 음식이 있는데도 세계의 절반이나 되는 나라들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죽고 있는 이유. 사람은 3초 만에 한 명씩 먹지 못해 죽는데, 또 다른 사람들이 먹을 소는 배불리 먹고 있는 현실. 전쟁. 빈한 자와 부한 자. 정치적 대립.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그리고 이기주의. 이런 이야기들을 읽고 있노라면, 사실 가슴이 아프다. 나는 이런 책들을 읽으면서 내가 가난하고 소외되어 있으며 핍박받는 이들의 사정에 대해 무지하지 않은 인간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무지하지 않다면, 또한 그런 이들의 이야기가 마음이 아프다면, 적어도 세상이 좀 더 나은 쪽으로 나아가는 데 작으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 가족, 내 나라가 아니라 이 세상이 조금 더 행복해지는 쪽으로 변해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렇게, 읽고 있고 읽는 것으로 하여 나부터 조금씩 조금씩 변해가기를.

 


그리고 그 다음이 자크 아탈리의 <마르크스 평전>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그동안 한 번도 마르크스에 대해 읽어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마르크스가 무엇을 어떻게 한 사람이기에, 이토록 유명하고 전세계에 그렇게나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지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남들은 다 마르크스에 대해 아는 것 같은데, 왜 나는 아는 게 하나도 없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사실 읽는 내내 마르크스의 삶이 크게 마음에 와닿지는 않았다. 

왜 그런가 생각을 해보면, 마르크스가 매우 천재적이었을지는 몰라도 특별히 열정적이었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내가 무엇에 자극을 받는가, 생각을 해보면 그것은 깊이있는 통찰력이나 타고난 분석력 같은 것보다는 두려워하지 않는 열정이나 포기하지 않는 집념 같은 것이다. 그래서 난 체 게바라를 흠모하고 한비야의 말에 나를 돌아보곤 하지만 마르크스에 대해서는 정서적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세상엔 읽어야 할 것 같아서 읽게 되는 책들이 있는데, 이 책 역시 그러한 책이었고 내가 알기를 원해서 읽은 것이므로 나름대로 즐거운 앎의 과정이긴 했지만 800page에 가까운 하드커버의 책을 들고 다니며 읽느라 (길어서라기보다는 무거워서) 지친 감도 없지 않았기 때문에 그 다음 책은 재미있는 책으로 고르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위화의 <인생>이었고 위에서 말했다시피 <인생>은 꽤 내 마음에 드는 책이었기에 8월의 독서는 즐거운 마음으로 끝이 났다.

그리고 9월에는 조금 더 열심히 독서를 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읽을 책들의 목록을 대충 미리 정해두었다. 그러니 이 목록에 올려놓은 책들은 빠짐없이 읽어내는 9월이 되기를 바라면서 이달의 독서는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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