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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행제로/09season

[091101] 대전 vs 광주, again and again

dancingufo 2009. 11. 2. 02:59

나는 꼭, 이기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기분 좋은 골을 보고 갈 수 있다면, 꼭 승리하지 못하더라도 웃으면서 돌아갈 수 있다고 말이다.

우리는 비록 올해도 시즌 내내 중하위권에 머물러 있었지만, 그래도 난 최근의 대전 시티즌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권집도 좋고 박성호씨도 좋고 계룡산 루니도 무척이나 좋아서, 이렇게 시즌이 끝난다 하더라도 슬프거나 아쉬울 것 같지 않았다.

올해는 정말 마음 만큼 자주 가지 못했고 때로는 일주일에 하루뿐인 일요일을 무리하기 싫어서 중계 방송을 시청하는 것에 만족하기도 했다. 그랬는데도 오늘만은, 혼자서 가야하는 길인 것을 알면서도 망설이지 않고 대전행 버스를 탄 것은, 적어도 시즌의 마지막은 함께 하고 싶은 팬으로서의 마음 때문이었다. 나는 언제부턴가 대전 시티즌에게 따뜻하고 다정한 마음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그 마음 때문에 걸음걸음 걸어서 올시즌의 마지막 인사를 하려고 퍼플 아레나로 갔다.

그러니까, 바라는 것이 많지 않았는데. 나는 그냥 루니의 골이나 한 번 더 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랬는데 대전 시티즌이 보여준 것은 신명나는 3-1의 승리였다. 고창현은 한 골이 아니라 두 골에다 어시 하나까지 더 보태어 보여주며 내년에도 다시 이곳에 오라고 인사하는 듯했다. 나는, 바보처럼, 축구는 어쩌면 이토록 즐겁고도 신나는 것일까- 에 대해서 생각했고 대전 시티즌이 너무나도 사랑스럽다는 느낌에 빠졌다.

고창현이 보여준 두 번째 골은 너무나도 멋지고 훌륭해서 오랜만에 나는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너만 그런 골을 넣을 수 있는 게 아니야. 나도 충분히 넣을 수 있어! 그렇게 말을 하듯, 비슷한 자리에서 비슷한 모습으로 쐐기골을 넣어준 박성호씨도 아주 많이 멋졌다. 실은 우리팀에 온 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는데도 '성호씨는 우리 창단 멤버지?'라는 농담을 하게끔 만드는 박성호씨. '웨인 루니가 와도 너랑은 안 바꿔!' 라고 소리치게 만드는 즐거운 고창현.

아아, 좋다. 정말이지 참으로 좋다.

내가 사랑하는 이 팀이, 가난하고 미숙해도 지역 시민들의 사랑으로 오손도손 커가는 진짜 축구팀이라서 참 좋다. 부끄러울 것도 없고 창피해할 것도 없는 떳떳한 팀이라서 참 좋다. 이렇게 많은 것을 '잃고 수많은 것이 달라져도 이 팀이 '퍼플 아레나를 홈구장으로 하는 대전 시티즌'인 이상 난 아마 한동안은 이 팀의 팬으로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다시 봄이 오면 또 다시 이 팀을 보기 위해 돌아가야지. 그러니 그때까지 건강하고 힘차게 살고 있어야겠다. 이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이 시즌을 보낼 수 있다니, 어쩌면 나는 꽤 축복 받은 축구팬인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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