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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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도 눈물도 없이

2009년 10월, 요즘 내가 읽는 것들

dancingufo 2009. 11. 14. 00:46

<구입한 책>
제임스 엘킨스, 그림과 눈물
김남희,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2-스페인 산티아고편
빌 브라이슨,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 산책
니코스 카잔차키스, 스페인 기행
유시민, 청춘의 독서
빌 브라이슨, 거의 모든 것의 역사
할레드 호세이니, 천 개의 찬란한 태양

<읽은 책>
찰스 디킨스, 데이비드 코퍼필드 (1)
헤더 레어 와그너, 오바마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1Q84 (1), (2)
김남희,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2-스페인 산티아고 편
빌 브라이슨,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 산책
유시민, 청춘의 독서



<위대한 유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난 <위대한 유산>을 조금도 좋아하지 않았다. 첫인상이 특별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찰스 디킨스에게도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읽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다름아닌 '닉 혼비' 때문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닉 혼비. 그리고 닉 혼비가 <런던 스타일 책 읽기>에서 가장 자주 언급한 <데이비드 코퍼필드>. 그러니 나로서는 반드시 이 작품을 읽어야만 했다. 그 정도의 의무는 다 해야만 닉 혼비의 팬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1권을 읽은 후에 나머지 뒷 이야기들을 읽지 않고 다른 책으로 넘어간 것은 <데이비드 코퍼필드>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1편만 읽었을 땐 거의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데이비드 코퍼필드>가 재미있어진 것은 3편 중반부부터이다. 그럼에도 1편 역시, <위대한 유산>보다는 마음에 들었다. 그러니까 이 책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른 책으로 넘어간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저 업무상(!) 버락 오바마의 이야기를 한시라도 빨리 읽어야 했던 것이 이유의 전부이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읽던 책을 잠시 손에서 놓고 <오바마 이야기>로 넘어갔으니, <데이비드 코퍼필드>에 대해서는 11월이 끝난 후 이야기하도록 하자. (고백하자면, 어제 4편을 드디어 다 읽었다.)

<오바마 이야기>. 읽으면서 '부시의 8년이 있었기 때문에 오바마가 있을 수 있었다.'라던 첨맘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인간은 본래 모두가 보수적이며, 보수가 썩을 대로 썩어야 진보가 전면에 나설 수 있다.'라던 말씀도. 오바마의 연설은 '지도자 연설'의 본보기라 해도 좋을 것이라던 말씀이 떠올라, 연설문을 하나하나 새겨가며 읽었다. 사실 난 이 사람에게 조금 호감을 가지고 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난 후에도 이 호감을 버리지 않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아직 살아서 할 것이 많은 사람의 전기를 읽고서 이보다 더 많은 것을 느끼기는 힘들었다. 뭐, 고생하며 살았구나- 하는 것? 많이 노력하며 살았구나- 하는 것? 이 사람에 관한 것은 더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나도 내가 뱉은 이야기에 대해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런 다음 <데이비드 코퍼필드>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손에 들어온 <1Q84>를 몇 장 넘겨보다가 도저히 도중에 끊기가 힘들어서 그냥 <1Q84>부터 끝내기로 했다. 이 책에 대해서는 일기를 쓰다가 틈틈히 얘기를 한 것 같지만, 어쨌든 다시 또 말하자면 <1Q84>는 매우 재미있는 책이다. 특히 1권은 아주 흥미롭게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도중에 책을 덮기가 다소 곤란할 정도이다. 확실히 하루키는 이야기꾼이어서 맹숭맹숭하거나 다른 누가 했을 법한 이야기를 들려주진 않는다. 공기 번데기. 리틀피플. 마더와 도터. 이번에도 하루키가 생각해낸 세계에 존재하는 것들은 독특하고 신선하다. 그리고 아름다운 비유로 가득차 있는 문장들. 때때로 훔쳐가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표현들. 하루키는 분명히 훌륭한 점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작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루키를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만들어내는 인물들은 늘 비슷한 성격으로 비슷한 삶을 살아간다. 그래서 때때로  이 작품의 주인공과 저 작품의 주인공이 같은 인물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상실의 시대>의 와나타베는 <해변의 카프카>에 등장하는 15세 소년 카프카와 닮은 데가 있다. 그런데 <1Q84>의 덴고는 마치 소년 카프카의 '성인형'이란 느낌이 들며 때문에 어린 시절의 덴고는 소년 카프카와 아주 흡사하다. 게다가 성인이 된 덴고의 삶은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에 등장하는 '하지메'의 삶과 닮았다. 하루키에게는 특별히 좋아하는 어떤 '인물상'이 있고 그래서 나는 종종 '하루키스러운' 주인공을 그의 책에서 만난다. 그런데 나는 그 인물에 그다지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특성을 그의 장점보다는 단점이라고 느끼는 듯하다.   
 
또한 하루키는 늘 끝부분이 시작부분보다 약하다. 때문에 종종, 일을 크게 벌여놓고 뒷처리를 완벽하게 못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1Q84>도 그와 마찬가지여서 나는 아오마메가 후카에리의 아빠를 만나는 부분부터 맥이 빠졌다. 모든 것을 신처럼 다 꿰고 있는 인물이 있어, 이야기가 필연적으로 흘러가게끔 하는 것은 참 재미가 없다. 그런데 덴고에게는 후카에리가, 아오마메에게는 후카에리의 아빠가, 이미 정해져 있는 필연에 대해서 알려주니 나는 자연스럽게 맥이 빠졌다는 것이다. 도입부의 신선함을 마지막까지 이어갈 수 있었다면 <1Q84>는 매우 훌륭한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그 이야기들을 그런 식으로가 아니라면 마무리 짓기가 어려웠는지도 모르지만, 어쨌건 그건 처음 이야기를 만들어낸 이가 마지막까지 책임져야 할 몫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1Q84>를 다 읽을 때쯤, 스페인으로 떠나고 싶은 병이 다시 도져서- 스페인으로 떠날 수 없다면 그와 관계된 책이라도 읽자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여 고른 것이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2-스페인 산티아고 편>이다. (이로 인해 <데이비드 코퍼필드>는 또 뒤로 밀려난 것이다;)

산티아고 길은 2천 년 전,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이었던 야고보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예루살렘에서부터 걸어온 길이다. 그 길의 끝에 야고보가 잠들어 있는 도시, 산티아고 데 코포스텔라가 있다. 이곳은 예루살렘, 로마와 더불어 기독교 3대 성지에 속하며 오래 전부터 유럽의 순례자들이 이 길을 걸었다. 1993년 유네스코가 이 길을 세계 문화 유산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스페인 산티아고 편>은 도보여행가 김남희가 바로 이 길을 걷는 동안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걸으면서 우정과 사랑을 나누고, 따뜻함과 정겨움을 느끼며, 생전 처음 보는 데도 한없는 반가움을 주는 이들을 가슴에 안는다. 걷다가 무릎이 망가져 일주일 동안 휴식을 취하기도 하지만, 그 후엔 다시 걷던 곳으로 돌아가 마지막 목적지까지 한 걸음 한 걸음을 걸어내는 인고의 시간.

그 걸음을 끝냈을 때 그들이 느끼는 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다만, 그 걸음을 걷는 동안 삶에 대한 생각은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걷는다는 것은 인간이 몸으로 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일이다. 때문에 인간이 몸을 움직이면서 생각을 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일이기도 하다. 그런 일을 하면서 목적지까지 간다는 것은 어쩐지 낭만적으로 느껴진다. 언젠가 <밤의 피크닉>을 읽으면서도 했던 생각이지만, 말없이 걷는 일속에는 낭만이 있다. 물론 많은 시간과 불편함과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낭만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을 덮은 후 또 한 번 더 떠돌아다니는 이들의 글이 읽고 싶어서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 산책>을 펴들었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지금 읽고 있는 책이다. 두어장 읽고는 아아, 재미없겠다! 생각했는데 대여섯장 읽어보니 의외로 흥미진진하다.)로 유명한 빌 브라이슨은 <The times>로부터 '현존하는 가장 유머러스한 여행 작가'라는 칭찬을 받은 바 있다. 나 역시 이 칭찬에 혹해 <발칙한 유럽 산책>을 선택했는데, '굉장히 유머러스하다!'라고는 생각지 않지만 어쨌든 재미있는 것은 사실이다.

가끔 '미국인인' 그가 다른 나라 국민들의 행동에 대해, 그들의 국가가 예전에 저질렀던 옳지 못한 일들을 이야기꺼리 삼아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이 좀 거슬리긴 했다. 그래서 두어번 인상을 썼고, 잠깐 짜증이 치밀어 오르기도 했지만, 어쨌든 사람이란 다들 제 얼굴에 묻은 건 잘 보지 못하는 게 천성이란 생각을 하며 그 사실 하나만으로 이 작가에게 화를 내진 않기로 했다. 그렇게 결심하고나자 이 책을 읽는 게 한결 편해졌고, 때로는 이 작가의 어떠한 말들 때문에 지하철에서 책을 읽다가 (실제로 소리를 내서!) '풉'하고 웃기도 했다. (지하철에서 책 읽다가 운 적은 있어도, 소리내어 웃은 적은 처음이다_-_) 그러니 어떻게 내가 이 책을 재미있게 읽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발칙한 유럽 산책>의 책은 매우 재미있다. 그래서 <거의 모든 것의 역사>도 산 것이다. 만약 이 책도 재미있다면 <나를 부르는 숲>이나 <발칙한 영국 산책>을 살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면서 깨달은 것인데, 알곡보니 난 여행기를 매우 즐거워하는 독자였다. 그러니 누가 재미있는 여행기가 담긴 책을 알고 있다면 부디 나에게 추천을 좀 해주시길.

그리고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가 이 달에 읽은 마지막 책이다. 재미있기로 치면 <발칙한 유럽 산책>이 최고였고 <1Q84>가 두 번째였지만, 그래도 <청춘의 독서>가 가장 좋았다고 말을 하고 싶을 만큼- 이 책은 내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읽은 책이다. 

이 책은 유시민이 청춘의 자신을 흔들었던 열네 편의 글에 관한 자신의 생각과 느낌들을 풀어놓은 책이다. 언젠가 강연이 끝난 후, '이번에 나올 책이 재미있을 거예요.'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 말을 들은 후, 내내 이 책을 기다렸다. 마침 교보에서는 이 책이 출간되기도 전에 예약판매를 한다며 친히 문자를 보내왔다. 그 문자를 받고 바로 예약을 해둔 후, 며칠 후에 이 책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기 위해 먼저 읽던 책을 최선을 다해 빨리 읽어내고, 그리고 이 책을 손에 들자 묘하게도 마음이 참- 즐거웠다.

내가 좋아하고 따르며 멋있다고 생각하는 누군가가, 이 길로 이렇게 와보라고 손짓을 한다면, 나는 그 길이 조금 멀거나 험하더라도 열심히 걸어갈 수 있다. 유시민이 하는 모든 일에 언제나 관심을 기울이며 살지는 못하지만, 그가 내게 해주는 일은 '이 길로 와보라고 손짓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좋은 책을 알려주고, 좋은 의견을 들려주고, 하여 내가 그 얘기들에 귀를 기울이게끔 만들어준다는 말이다. 

세어보니 열네 편의 글('책'이라고 말하지 않는 이유는 그 속에 '공산당 선언'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는 중 내가 읽은 책은 고작 다섯 편뿐이다. 하여, 곧 <대위의 딸>과 <사기>와 <광장>을 읽을 계획이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된다면 <전환 시대의 논리>와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어야겠다. 

한때는 대체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고민을 하기도 했고, 하여 책을 고를 때 실패한 적도 많았는데, 요즘은 읽어야 할 책이 많아서 고민은 해도 읽을 책이 없어서 고민하는 일은 없다. 책이란 것도 결국은 읽을수록 더 많은 좋은 것들이 눈에 보여, 내 독서의 부족함을 느끼는 것이다. 

올해는 또 무엇을 했나- 생각하면 그래도 좋은 책들을 많이 읽었다, 라는 것만은 기분 좋게 말할 수 있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계속해서 이런 대답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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