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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가 읽는 것들, 2009년 11월 본문

피도 눈물도 없이

요즘 내가 읽는 것들, 2009년 11월

dancingufo 2009. 12. 13. 13:38

 

<구입한 책>

최도성, 일생에 한 번은 스페인을 만나라

빌 브라이슨,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영국 산책


<읽은 책>

찰스 디킨스, 데이비드 코퍼필드 2, 3, 4

할레드 호세이니, 천 개의 찬란한 태양

최도성, 일생에 한 번은 스페인을 만나라

빌 브라이슨, 거의 모든 것의 역사

박지성, 멈추지 않는 도전


나에겐 약간의 강박증이 있다. 20대 중반이 되기 전에도 나는 그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그런데 그 해 관람한 축구 경기를 그 경기가 열렸던 정확한 날짜와 스코어로 기억하는 나를 보고 친구들이 혀를 내두를 때 그것이 조금 이상한 습관임을 알았다. 그리고 4년째 같이 살고 있는 친구가 나를 두고 ‘의무감의 여왕’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을 때, 나에게 약간의 강박증 같은 것이 있음을 알았다.


예를 들면, 한 번 읽기 시작한 책은 아무리 재미가 없어도 끝까지 읽어야 한다. 책을 읽을 때는 그 속의 글자 한 자라도 빠뜨리고 읽는 것이 싫다. 내가 재미있게 글을 쓴다고 생각한 작가, 또는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는 저자가 생기면 그 사람이 쓴 책이 내 관심사와 가깝든 그렇지 않든 무조건 다 읽어야 마음이 편하다. 책장 속에 책은 나라별로 잘 정돈이 되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마음이 편치 않다.


이런 성향은 독서가, 순수한 취미 생활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취미 생활로 인해 내가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게끔 만든다. 그러니까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읽으면서도 나는 이런 강박증에 영향을 받았다. 사실 이 책의 1권을 읽기 시작했을 때, 난 이미 이 책이 내 타입의 책이 아님을 알아챘다. 그럼에도 뒷이야기를 읽지 않으면 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2, 3, 4권도 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쨌든 <데이비드 코퍼필드>는 다 읽었다. 가끔 재밌기도 했지만, 그것은 ‘생각보다는’이라는 전제조건 하에서이고, 순수한 재미를 생각하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들이 찰스 디킨스의 어떤 점에 그렇게 매료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시간이 나면 <런던 스타일의 책 읽기>를 한 번 더 읽을 생각이다. 닉 혼비는 이 책을 매우 재미있게 읽은 것 같았는데, 어떤 점을 그렇게 재미있어했는지 새삼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겨우 다 읽고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읽었는데, 이것은 의무감에 의한 책 읽기에 지친 나를 확실하게 위로하고 격려해준 책이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음음- 내가 가끔 흥분하며 ‘무척이나 재미있어서 책을 덮기가 힘들다!’라고 외치는 그런 종류의 책이다. 권당 300page쯤 되는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읽는 것은 꽤 수고스러웠는데, 600page에 가까운 이 책은 이틀 만에 해치워버렸다. 놀랍게도 이 책은 첫 장부터 재미가 있었는데, 더욱 놀랍게도 그 재미가 마지막까지도 잘 유지된다.


이 책의 작가인 할레드 호세이니는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작가이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 역시 아프가니스탄의 이야기인데, 그 이야기의 중심에 마리암과 라일라가 서있다.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고 내전이 일어나고 탈레반 정권이 폭정을 일삼고 다시 또 미국과의전쟁이 일어나고, 그 끝없는 전쟁 속에서 마리암과 라일라(로 대표되는 아프가니스탄의 여성들은) 죽음과 같은 삶을 산다. 그들을 괴롭히는 것은 비단 전쟁만이 아니다. 지독한 가난과 빼앗긴 평화보다 더 잔인하게 그들을 괴롭히는 것은 여성이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야 하는 ‘차별’이다.


어떻게 사는 것도 죽는 것보다는 낫다, 라고 생각하지만 마리암과 라일라의 삶은 죽음보다 나을 것이 없어 보인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마리암이 죽지 않고 삶을 견뎌내는지 신기한 한편 마음이 아프고 슬펐다. 나는 타리크를, 라일라를, 아지자를 좋아했지만 마리암 만큼은 아니었다. 나는 마리암이 사랑하는 잘릴을 기다리는 장면을 읽었을 때, 그러니까,


“마리암은 벌떡 일어나, 만면에 미소를 짓고 기분 좋게 손을 흔들면서 개울을 건너는 그를 바라보았다. 마리암은 나나가 자신이 어떻게 하는지 살피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에게 달려가지 않고 문간에 서서 잘릴이 서서히 자신을 향해 오고 있는 걸 바라보며 기다리는 덴 늘 노력이 필요했다. 그녀는 자신을 억제하고 아버지가 재킷을 어깨에 걸치고, 빨간색 넥타이를 미풍에 흩날리며 키가 큰 풀 속으로 걸어오는 모습을 인내심을 갖고 지켜보았다.”


라고 서술된 이 장면을 읽었을 때, 그때부터 마리암을 좋아했다. 마리암은 사랑할 줄 아는 마음과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을 가진 아이였다. 그때 마리암은 열다섯 살도 안 되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마리암은 행복하지 못했다. 아버지 잘릴은 그녀가 길바닥에서 자도록 내버려두었고, 열다섯 살이 되었을 때 마흔이 넘은 남자에게 시집보내 버렸다. 마리암의 남편인 라시드는 툭하면 마리암을 때렸고, 라일라가 나타나자 마리암을 인기 없는 구식 자동차 취급했다. 만약에 라일라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래서 아지자의 사랑스러운 눈을 마주보지 못했다면 어른이 된 후에, 마리암은 단 한 번도 행복을 느끼지 못한 채 죽어갔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라일라에게 조금은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라일라도 불쌍하고 안타까운 삶을 살지만, 그래도 라일라에게는 아름다운 순간이 있었다. 죽은 줄 알았던 타리크가 돌아왔을 때,


“그녀는 그가 멀리서 가물거리는 아지랑이, 조금만 건드려도 사라질 덧없는 환영일까봐 감히 숨을 쉬지도, 눈을 깜빡거릴 생각도 하지 못했다. 라일라는 전혀 미동도 하지 않고 서서, 공기가 부족해 가슴이 터지려 하고 눈이 깜빡거리려고 몸부림을 칠 때까지 타리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숨을 들이쉬고 눈을 감았다가 떴을 때, 그는 기적적으로 아직도 거기에 서 있었다. 타리크는 아직도 거기에 서 있었다.

라일라는 그를 향해 한 걸음을 떼었다. 또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리고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라일라가 그를 향해 뛰어가는 장면을 읽었을 때, 나는 이 장면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가슴이 뛰었다. 라일라가 진심으로 행복할 거라고도 생각했다. 타리크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타리크에게는 라일라 밖에 없었고 라일라에게 역시 마찬가지였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그런 책이다. 아프고 슬프고 고통스러운 전쟁이 있지만 그 속엔 아주아주 아름다운 사랑도 있다.


결국 라일라가 타리크를 만나고 아지자를 되찾고 잘릴이 남겨둔 돈까지 찾았을 때, 나는 이 이야기의 결말에 조금 실망했다. (큰 실망은 아니다. 그냥 ‘아주 조금’ 그랬을 뿐이다.) 라일라가 힘든 시간을 견뎌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대가로 모든 것이 좋아질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삶은 그런 것이 아니다. 아주 많은 것을 견뎌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무언가를 견뎌내야 하는 것이 삶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할레드 호세이니가, 라일라와 아지자를, 그리고 타리크를 조금만이라도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다면 그건 나로서도 뭐라 할 수 없는 부분이다. 나 역시 그들이 같이 있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책을 다 읽은 후에도 마리암이 생각나서 조금 억울한 기분이 들었을 뿐이다. 어째서 마리암에게 허락된 행복은 라일라와 함께 마시는 차 한 잔, 자신을 바라보며 웃는 아지자의 눈동자 같은 것 밖에 없었을까?


여튼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하라고 한다면 아주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게 된다. 그만큼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매우 마음에 드는 책이다. ‘요즘은 통 읽을 책이 없네.’ 싶은 사람들이라면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읽어봤으면 좋겠다. 세상엔 좋은 책이 많다. 정말이다. 적어도 두어 달에 한 번쯤은 이렇게 아름다운 책을 만나게 되지 않는가.


그리고 다시, 스페인과 관련된 책을 찾다가 <일생에 한 번은 스페인을 만나라>를 읽기로 했다. 사실 우리나라엔 스페인과 관련된 책이 워낙 적어서 선택의 폭이 굉장히 좁다. 그만큼 좋은 책을 만날 가능성도 많지 않다. 하여, 큰 기대 없이, 그저 스페인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읽고 싶으니까- 하는 마음 하나로 이 책을 선택했는데, 그래도 이보다는 재미있게(또는 알차게) 책을 만들어야 했던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일생에 한 번은 스페인을 만나라>는 어째서 사는 동안 꼭 한 번은 스페인을 만나야 하는지에 대한 것을 알려주진 않는다. (그리고 느끼게 해주지도 않는다.) 그저 스페인의 카스티야, 안달루시아, 카탈루냐, 북부 지방을 차례대로 언급하며 그 지방의 대표적인 도시들을 몇 군데 소개할 뿐이다. 그 소개라는 것도 다른 여행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도의 것이라 특별한 감흥은 없다. 그래서 좀 실망스러웠고, 스페인 여행과 관련된 좀 더 재미난 책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새삼스레 해보았다.  


다음으로 선택한 것은 <거의 모든 것의 역사>이다. 지난달에 읽은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 산책>을 꽤 재미있게 읽은 탓에, 이번 달에는 빌 브라이슨의 대표작이라는 책을 읽어보기로 한 것이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은하계와 태양계, 세포나 원자, 지구와 인류 문명 등 거의 모든 것의 역사에 관한 책이다. 나는 ‘역사’ 그 자체는 매우 좋아하는 편이지만 우주나 원자, 세포 등에 관해서는 아무런 흥미가 없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일이 쉽지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책이 내가 최근 관심이 생긴 작가의 책이라는 이유만으로,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꼼꼼하게 읽어내려고 노력하는 나를 보면서, 내가 강박증을 가지고 독서를 하고 있음을 새삼 느끼고 만다.


물론, 난 왜 이렇게 인생을 피곤하게 사는지. 재미가 없으면 안 읽어도 되는 것 아닌지. 관심이 없는 분야면 좀 건너뛰어도 되는 것 아닌지. 에 대해 의문을 가져보았지만, 역시 기질을 고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몇 차례나 심호흡 해가며 끝까지 다 읽었다. 그리고 끝까지 다 읽은 소감을 말하라면, 나름 재미가 있는 부분이 있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썩 재밌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음음- 두 번 읽고 싶은 책은 아니라는 뜻이다.


박지성의 에세이집인 <멈추지 않는 도전>이 이달의 마지막 책이다. 사무실에 이 책이 굴러다니기에 이런 종류의 책, 재미가 없을 거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손에 들어보았는데 예상 외로 읽을 만하였다.


키가 작고 유난히 부끄러움이 많던, 별 볼일 없어 보이던 소년이 월드컵에 나가고, 그 무대에서 골을 넣고, 네덜란드에 진출하고, 결국 세계적인 명문 구단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선수가 되었다. 올림픽 대표팀에 차출될 때의 기쁨과 퍼거슨 감독이 자신을 원한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의 기쁨에 대해 이야기하는 박지성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어쩐지 함께 감격스러워지고 그리고, 새삼 박지성이란 존재가 흐뭇하게 여겨졌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박지성을 처음 보았을 때, 10년 후에 박지성은 홍명보와 같은 대한민국의 캡틴이 되어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박지성이 이렇게까지 잘 자랄 줄은 예상을 못했다. 호나우도나 메시와 같은 재능을 보고 있으면 놀랍고 경이롭지만, 그래도 난 박지성과 같은 재능들을 더욱 좋아한다. 내가 찬사를 보내고 싶은 것은 타고난 감각 같은 것이 아니다. 그보다도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스스로 이겨내는 힘, 스스로를 관리하고 제어할 줄 아는 능력, 좌절하여 주저앉았다 하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마음, 자신을 믿고 주위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꿋꿋함. 나는 몇몇의 축구선수들이 가지고 있는 그러한 재능이 너무나도 훌륭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박지성의 팬은 아니지만, 역시 박지성은 부족함 없이 대단한 선수라고 여기는 것이다.


요즘은 상황이 별로 좋아보이지 않는데, 일이 어떤 식으로 진행이 되든 박지성이 계속해서 훌륭한 선택을 해내리라 믿는다. 사실 이쯤 되면 이제 우리가(팬들이, 또는 기자들이) 박지성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박지성은 언제나 알아서 잘 해왔고 그 모습을 지난 시간 동안 지켜봐왔으니 이번에도 잘 해내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지켜보면 되는 것 아닐는지.

어쨌든 이렇게 11월의 독서가 끝났다. 대충 권수를 세어보니 작년 이맘때보다 10권 남짓 적게 읽었다. 하여, 12월에는 조금 더 열심히 읽어야겠구나- 생각을 해본다. 이쯤에서 굉장히 멋진 책 한 권을 더 만난다면 아주 즐거운 기분으로 올해의 독서를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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