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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도 눈물도 없이

요즘 내가 읽는 것들, 2010년 1월

dancingufo 2010. 2. 10. 01:17

2009년 12월

<구입한 책>

김어준, 건투를 빈다
빌 브라이슨, 나를 부르는 숲
사마천, 사기열전1~2
할레드 호세이니, 연을 쫓는 아이

<읽은 책>
이금이 - 유진과 유진
김어준 - 건투를 빈다
빌 브라이슨 -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영국 산책
알렉산드르 푸쉬킨 - 대위의 딸
빌 브라이슨 - 나를 부르는 숲

2010년 1월

<구입한 책>
빌 브라이슨, 빌 브라이슨의 재밌는 세상
조지프 오닐, 네덜란드

<읽은 책>
사마천, 사기1
할레드 호세이니, 연을 쫓는 아이
이청해, 막다른 골목에서 솟아오르다
조지프 오닐, 네덜란드

지난달에(라고 쓰고 보니 벌써 지지난달이 되어버렸지만, 여하튼 2009년 12월에) 읽었던 책들에 대해 아무런 말 없이 넘어간 것 같아서 두 달 치를 몰아 쓴다. 사실 그냥 넘어가도 상관 없긴 한데 <건투를 빈다>와 <나를 부르는 숲> 정도는 거론을 해주어야 할 것 같아서 늦게나마 지금이라도.

사실 인생 매뉴얼에 관한 책들은 대부분 관심 밖이지만, 이상하게도 <건투를 빈다>는 처음 봤을 때부터 읽어보고 싶었다. 그럼에도 몇 달을 그냥 묵혀뒀다가 한 해가 끝나가는 시점에 기분 전환이라도 하자- 라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처음 기대했던 것보다도 더 확실하게 기분 전환을 했다.

그러니까 김어준이 반복해서 하는 말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라는 것'이다. 남의 눈치를 보지 말고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선택하라는 것, 그게 김어준이 말해주는 인생 매뉴얼의 핵심이다.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인생을 딱 한 번밖에 살 수 없기 때문이고, 한 번 잃으면 절대로 가질 수 없는 것은 돈이나 명예가 아닌 시간이므로 원하는 것을 해보지 않고 죽으면 후회하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매우 단순한 사실인데 그럼에도 우리는 이 사실을 아주 자주 잊어버린다. 나 역시 그렇게 살았던 것 같은데, <건투를 빈다> 덕분에 실로 오랜만에 ‘시간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봤다. 그리고 음음음, 굳이 이야기하자면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저당 잡히는 삶을 살지는 말아야겠다는 것도 함께 생각을 한다. 사는 게 너무 무료하거나 자신이 뭘 원하는 건지 도저히 모르겠거나 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용기가 없어서 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봐도 좋을 것이다.

<나를 부르는 숲>은(언젠가 일기를 통해 한 번 이야기를 한 것도 같지만) 내가 그 동안 ‘그럭저럭 마음에는 들지만 시원하게 정곡을 찔러주지는 못하던’ 빌 브라이슨을 계속해서 읽은 수고에 대한 대가를 확실하게 돌려준 책이다. 빌 브라이슨은 대체로 재미있고 유쾌한 농담을 늘어놓는 사람이지만, 때로는 매우 따뜻한 시선으로 감성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그 사실을 어렴풋하게만 인식하고 있었는데, <나를 부르는 숲>을 읽은 후에 나는 빌 브라이슨이 어떤 작가인지, 그리고 이 작가의 진짜 매력이 어디에 있는지, 드디어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빌 브라이슨은 종종 과장된 어투로 무언가를 꼬집고 비웃으면서도 자신의 어떠한 점에 대해서는 절대로 젠체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빌 브라이슨이 뭔가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내면, 그것이 정말로 진심으로 느껴져서 마음이 찡해온다. 지난해 연말에 나는, 심신이 매우 지쳐있는 상태였고 그래서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툭하면 꾸벅꾸벅 졸곤 했는데, 희한하게도 이 책을 손에 들고 있노라면 졸음이 말끔하게 달아나고는 했다. 사실 난 카츠가 길을 잃어버렸을 때(이 책은 빌 브라이슨이 미국의 조지아 주에 있는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걸으며 일어난 일들에 관해 쓴 책인데, 카츠는 그 때 빌 브라이슨과 함께 트레일을 걸었던 친구이다. 빌 브라이슨의 책을 읽은 사람들이라면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이 카츠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카츠는 브라이슨이 스무살쯤 되었을 무렵에 그와 함께 유럽 여행을 떠났던 친구이고, 그 시절에 관한 이야기가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 산책>에 수도 없이 등장하니 말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 카츠를 브라이슨의 다른 책에서 다시 또 만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놀랍게도 <나를 부르는 숲>에서 카츠와 재회하게 되었다. 게다가 <나를 부르는 숲>의 카츠는 <발칙한 유럽 산책>에서 만났던 카츠보다 훨씬 더 정감가는 존재여서 나는 카츠가 그 후로도 부디 술을 많이 마시거나 살이 더 찌지 않은 채로 건강하게 지내고 있기를 바라게 되었다.) 조금 울기도 했고, 브라이슨이 카츠를 찾아헤매는 장면을 읽으면서는 이렇게 아름다운 책을 만나게 된 걸 감사하는 마음마저 생겼다.

그러니까 <나를 부르는 숲>을 읽으면서, 이렇게 좋은 책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에 아주 좋지 않은 순간에도 내 삶에는 즐거움이 끼어들 여지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달에는(그러니까 2010년의 첫달에는) 마음에 쏙 드는 책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사기>는 그럭저럭 재미있게 읽을 만한 책이긴 하지만, 크게 흥미롭지는 않다. 게다가 2권은 아직 다 읽지도 못했다. 웬만하면 책 두 권을 동시에 같이 읽진 않는데, <사기>의 경우에는 정말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다. 그러니까 하드커버로 만들어진 이 책의 권당 쪽수가 어떻게 되는 줄 아는가? 1권은 887쪽! 2권은 무려 933쪽이다! 이 책을 가방에 넣고 다니면 정말이지 어깨 한쪽이 무너질 것 같아서 집에서만 읽어야 한단 말이다. 결국 <사기>는 주말 전용 책이 되었고 평소에는 다른 책들을 읽고 있다.

<연을 쫓는 아이>는 초반부엔 굉장히 마음에 들어서, 이 책이 <천 개의 찬란한 태양>에 이어 다시 한 번 나를 두근거리게 할 거라 믿었지만 중반부 이후부터는 영 기대에 못 미친다. 이 책과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나란히 생각할 때면 할레드 호세이니가 데뷔작을 끝낸 후 두 번째 작품을 쓰는 동안에 얼마나 큰 성장을 했는지가 느껴진다.

여담으로 한 가 지 고백하자면, 방금 전까지도 나는 할레드 호세이니가 여자인 줄 알았다. 누가 내게 그런 말을 해준 적은 없는데, 그냥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읽으며 너무나 당연하게도 작가는 여자일 거라고 믿어버렸다. 그런데 방금 이 작가의 이름을 포탈에서 검색해보니 놀랍게도 할레드 호세이니는 수북하게 까만 수염을 기른 남자였다! 음, 그러니까 그 사실은 어쩐지 충격적이다. 이 작가는 남자이면서 어떻게 마리암이나 라일라(<천 개의 찬란한 태양>의 주인공인 여자들)를 그토록 가슴 깊이 동정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에 반해 아미르(<연을 쫓는 아이>의 주인공인 남자)는 어째서 그렇게 매력없는 인물로 그려졌을까? 보통 진짜 매력적인 여자 캐릭터는 여자 작가들이 만들 수 있고, 진짜 매력적인 남자 캐릭터는 남자 작가들이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구나. 모든 일에 다 그렇듯 여기에도 확실한 예외의 경우가 있구나.

다음으로 읽은 책인 <막다른 골목에서 솟아오르다>는 교보문고에서 무슨 이벤트에 당첨되었다며 보내온 책이다. 읽을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읽지도 않은 책을 내 책장에 계속 꽂아두기 좀 그래서 결국은 읽어보기로 결정을 했다. 그런데 사실, 음음음- 뭐랄까. 혹시나 이 책을 쓴 작가가 이런 이야기들을 볼까봐 마음이 걸려서 있는 대로 솔직하게 말하기가 그럴 정도로, 이 책은 영 별로였다. 스토리가 문제라기보다는 기본적인 글쓰기 능력 자체가 부족하다는 느낌인데, 책을 읽다보면 곳곳에서 문장이나 단어가 툭하고 마음에 걸려 술술술 책을 읽어나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도 끝까지 읽은 것은 (한 번 읽기 시작한 책은 어떻게든 끝까지 읽는 습관 때문이기도 했지만) 대체 그래서 이 사건이 어떻게 결말이 나려나- 하는 궁금증이 있었던 탓이니 어쨌든 이 작가에게 스토리를 만들 능력은 있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계속해서 소설이나 글, 뭐 그런 걸 쓰고 싶은 거라면 문장을 좀 더 많이 많이 다듬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마지막이 <네덜란드>다. 내가 만약 크리켓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었다면, 조금 더 쉽고 조금 더 빠르게 이 책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이 책에는 종종 크리켓 경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초반부엔 경기 장면이 서술되기도 한다.) 그것을 이해하는 게 쉽지 않아서 한동안은 이야기를 따라잡는 데도 힘이 들었다. 그러다 이 이야기가 무엇에 관한 이야기인지 조금 감을 잡은 후에야 한스가 느끼는 것에 대해 같이 생각할 수 있었다. 한스가 뉴욕에서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은 한스가 네덜란드인이기 때문만은 아닌지도 모른다. 서울에서 나고 서울에서 자라더라도 삶은 종종 우리를 허무하게 만들곤 하니까. 그러니까 한스가 느끼는 것이 단순히 뉴욕이라는 도시(또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이질감이나 거리감만은 아닐 거라는 말이다. 그것은 마치, 나를 남겨두고 바쁘게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삶에 대한, 주위의 모든 것들에 대한 허무함 같았다. 그래서 나는, 조금 마음이 허전했고 사는 동안 이 허무함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

두 달 간의 독서는 여기까지. 때로는, 읽지 못한 좋은 책을 수도 없이 남겨두고 죽어야 할 거란 생각에 슬플 때가 있다. 부디 나에게 좋은 책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이 있었으면 좋겠고, 그럴 수 있다면 나에게 좋은 책이 다가오는 행운이 자주 일어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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