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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도 눈물도 없이

2010년 4월, 요즘 내가 읽는 것들

dancingufo 2010. 5. 20. 12:09

 

4월


<구입한 책>

한비야,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한비야, 그건 사랑이었네

유시민, 운명이다.

김남희, 유럽의 걷고 싶은 길


<읽은 책>

카롤린 필립스, 황허에 떨어진 꽃잎

로젤린느 모렐, 오렌지 1kg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한비야,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3)

한비야,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4)

도리 힐레스타드 버틀러, 트루먼 스쿨 악플 사건

박완서, 엄마의 말뚝

김향미․양학용,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

구병모, 위저드 베이커리

아르토 파실린나, 기발한 자살 여행

닉 혼비, 피버 피치



4월에는 업무상 읽은 책들이 몇 권 있다. <황허에 떨어진 꽃잎>, <오렌지 1kg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트루먼 스쿨 악플 사건>, <엄마의 말뚝>,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 <위저드 베이커리>, 이렇게 여섯 권이 그러한 책. 이 책들은 집어삼키듯이 읽은 책들이니 그냥 넘어가자. 그래도 굳이 한 마디만 하자면, 책따세 추천 도서인 <트루먼 스쿨 악플 사건>은 무척 재미있었다.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 (3)권과 (4)권도 4월에 읽은 책이지만, 3월 도서 목록을 정리하면서 같이 언급했던 책들이니 이달은 패스한다. 하여, 남은 책들을 보면 딱 두 권. 



<기발한 자살 여행>


이 책은 ‘지식인의 서재’에서 한비야가 추천했던 책이라 구입한 것이다. 예전에 신경숙의 추천 독서 목록 중 몇 권을 골라 읽으면서도 했던 생각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좋아하는 책이라고 해서 나에게도 그 책이 반드시 좋으리란 법은 없다. 그러니까 나에게 <기발한 자살 여행>은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는 뜻이다. 제목 그대로 자살을 꿈꾸던 사람들이 모여 여행을 하는 동안에 일어난 일들에 관한 이야기데, 이런 이야기들이 펼쳐지겠구나- 그래서 결국 집단 자살을 하지는 않겠구나- 뭐 그런 것들을 미리 예측하게 되는 책이라 그냥 그냥 흘러가는 대로 읽었다는 느낌이다. 


<피버 피치>


이에 비하면 <피버 피치>는 정말로 놀랍다. 나는 이 책을 이번에 읽은 것까지 합해 꼭 세 번을 읽었다. 두 번까지 읽었던 책은 꽤 많지만 세 번까지 읽은 책은 <삼국지>와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그리고 <피버 피치> 뿐이다. (아, 그러고보니 <슬램 덩크>도 있다. 나는 서태웅과 정대만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어떤 책을 세 번까지 읽는다는 것은 두 번째 읽었을 때도, 처음 읽었을 때에 못지않은 재미나 감동 (또는 처음 읽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재미나 감동)을 느꼈다는 뜻이다. <피버 피치>는 정말로 그런 책이었고, 그래서 문득 다시 한 번 더 읽어보고 싶은 마음에 손에 든 것인데 놀랍게도(!!!) 세 번째 읽었을 때 역시 첫 번째와 두 번째에 못지않은 재미와 감동 (그리고 그 때와는 또 다른 재미와 감동!!!)을 느꼈다. 어쩐지 <피버 피치>는 읽을수록 ‘내 인생의 책’ 리스트에서 상위권으로 올라가는 듯한 느낌이다.


<피버 피치>를 처음 읽었을 땐, 축구팬이긴 했지만 지금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기 때문에 닉 혼비의 마음을 모두 다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냥 이런 책도 있구나- 싶어서 흥미롭게 읽었고 세계적으로 유명하며, 자주는 아니지만 어쨌든 가끔은 우승도 하는 아스날을 좋아하면서 너무 심하게 엄살을 떠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대전 시티즌에 비하면 아스날은 여러 가지 면에서 얼마나 멀쩡한가 말이다.)


그러다 1년 정도 후에 이 책을 다시 한 번 더 읽었는데, 그때는 나도 꽤 축구에 심각하게 빠져있던 상태라 혼비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매우 잘 이해가 되었다. 혼비의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 깊이 와 닿았고 그래서 이 책의 수많은 구절을 외다시피 기억하게 되었다. <피버 피치>를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것도 바로 두 번째 읽었던 때다. 나는 지하철에서 이 책을 읽으며 혼자 소리를 내 키득키득거리곤 했고, 혼비의 글이 주는 재미에 푹 빠져들었다.


그런데 이번에 <피버 피치>를 읽으면서 내가 느낀 감정은, 재미나 흥미로움이나 동질감 같은 것이 아니라 당황스럽게도 ‘슬픔’이었다.


난 이번엔 어쩐지 <피버 피치>가 슬펐다. 실은 혼비가 굉장히 우울한 마음으로 축구장에 서있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혼비가 그토록 아스날을 괴로워한 이유가 아스날이 토트넘같은 축구를 하지 않아서, 또는 아스날이 매해 우승컵을 들지 않아서가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이것이 실은 축구에 관한 이야기(또는 아스날이나 또는 한 축구광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난 세 번째 읽었을 때에야, <피버 피치>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던 것이다.


<피버 피치>는 혼비의 자서전이다. 아니, 그냥 성장 일기 뭐 그런 거라고 해두자. 어쨌든 이것은 혼비의 삶에 관한 이야기였다. 예전엔 그 속에 든 축구, 아스날, 축구팬들 이런 것이 보였는데 이제는 어린 혼비, 우울한 혼비, 방황하는 혼비, 꿈을 이루고 싶어하는 혼비가 보인다.


그런데 감히 이것이 <피버 피치>의 본질이라고는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난 이 책을 세 번째 읽었을 때에야 이 사실을 깨달았으니까. 또 몇 년이 지난 후에 네 번째로 이 책을 읽게 되었을 때, 그때 내가 다시 무엇을 느끼게 될지 알 수 없으니까. 그러니까 <피버 피치>에 대해서 뭔가를 단호하게 말하기란 참 힘들다. 그럴 수 있는 것이 딱 한 가지 있다면, 내가 이 책을 정말로 좋아한다는 것뿐이다.


누가 나에게 넌 책이 좋니? 축구가 좋니? 라고 묻는다면, 난 당연히 책이 좋다고 말할 것이다. 나는 책을 읽지 않고는 살 수 없을 것 같지만, 축구를 보지 않고는 살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를 미칠 듯이 기쁘게 만들고 또 때론 견딜 수 없이 괴롭게 만들거나 한없이 우울함에 빠지게 만드는 것은 축구이다. 책은 친구 같지만, 축구는 연인 같다. (하지만 난 축구보다는 책 같은 연인이 좋다.) 그렇게 따지면, <피버 피치>는 친구 같은 연인이거나 연인 같은 친구다. 그러니까 <피버 피치>는 거의 완벽한 존재라는 말이다. 간섭은 하지 않으면서도 외로움은 달래주거나, 가슴을 설레게 해주면서 말까지 통하는 존재만큼 완벽한 게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난 이번에도 변함없이 <피버 피치>에 다시 반한다. 누구나 자신이 아끼고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는 표현을 하고 싶은 법이다. 말로서든 글로서든 그림으로서든 행동으로서든. 혼비는 자신의 전 생애(라고 해도 좋을 만큼의 오랜 시간)를 사로잡았던 대상과 그 대상에 사로잡혀있던 자신에 대해 정말로 멋지게 표현해냈다. 이런 것 참, 멋진 일이란 생각이 든다.


닉 혼비를 위해서라도 다음 시즌에는, 아스날이 우승을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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