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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16] 전북 1 vs 1 제주, 지지 않는 제주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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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16] 전북 1 vs 1 제주, 지지 않는 제주

dancingufo 2010. 10. 19. 13:04


01.


킥오프를 하고 1~2분쯤 시간이 지났을 때, 전북의 첫 번째 제대로 된 공격이 시작되었을 때, 그 공격을 제주가 여유롭게 막아내지 못했을 때, 그때 그런 생각을 했다.


‘제주가 오늘 좀 이상한데?’



02. 


그러니까, 그런 예감이 있다. 축구를 볼 줄은 모르지만, 그래도 승리나 패배를 감지하는 그런 예감은 있다. 매 경기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떤 경기에서는 어느 순간 이 경기는 이기겠구나- 싶을 때가 있다. 그리고 그와 반대로, 이 경기는 좀 힘들겠는데? 라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제주는 강한 팀이다. 수비가 탄탄하고, 선수들 간에 의사소통이 잘 이루어지며, 모든 선수들이 많이 뛴다. 전술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서 경기 중에 박경훈 감독이 전술을 바꾸면 그게 바로바로 먹히는 게 보이는 팀이다. 때문에 나는 웬만해서는 제주가 경기를 힘들게 끌어 갈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가끔, 제주 선수들은 유난히 체력적으로 힘들어 보이거나(7월 24일, 2대3으로 역전승했던 인천전이 그랬고) 유난히 움직임이 활발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제주가 첫 패배를 당했던 4월 10일, 울산전이 그랬다.) 그리고 이번 전북전을 이야기하자면, 평소 제주 선수들답지 않게 침착함이 부족해 보였다. 시작부터 상대 선수들의 역습에 당황하는 것 같았고, 많이 헤매는 듯 보였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한 것이다.


‘오늘은 제주가 좀 이상한데?’

 

라고 말이다.



03.


전북은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이동국과 루이스를 앞세워 빠른 공격을 전개했다. 이에 제주의 수비수들은 조금 당황하는 듯 보였지만, 다행히도 전반전의 중반으로 접어들자 평소의 움직임을 되찾았다.


문제는 제주의 중원이었다. 제주는 4-2-3-1의 포메이션으로 경기를 시작했는데, 간단하게 그려보면


---------김은중-----------

--네코----산토스----김영신-

----구자철-----박현범------

-이상호-강민혁-김인호-마철준-

---------김호준------------ 


이쯤 되지 않나 싶다. 그런데 이 경기에서는 박현범의 중원 장악력이 떨어지고, 구자철이 평소 같은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지 못하면서 공격과 수비의 연결이 끊어지고 말았다. 결국 전북에 중원을 내준 것이 제주가 어려운 경기를 한 이유가 아니었나 싶다.



04.


구자철의 이름이야 익히 들어왔지만 지난 시즌까지는 구자철이 어떤 플레이를 하는 선수인지 잘 몰랐다. 그러다 올해부터 제주 경기를 자주 보면서 ‘저래서 다들 구자철, 구자철 했던 거군.’하고 깨달았는데 사실 전북전에서의 구자철은 그다지 훌륭하지 않았다. 어시스트 하나를 추가하며 도움 1위 자리를 좀 더 확고히 하긴 했지만, 90분 경기 전체로 봤을 땐 평소의 활약에 못 미쳤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보니, 베스트 11에 또 한 번 이름을 올린 모양이다. 그래서 이 경기에서의 구자철이 별로였다- 라고 말하는 게 머쓱하긴 하지만 그래도 정말 그렇게 보였다. 구자철은 평소 같지 않았고, 구자철이 막히니 제주의 플레이도 조금 덜 시원했다.


그래서 걱정이다. 다음 경기부터는 아시안컵 때문에 구자철과 홍정호가 빠질 것이다. 이 중요한 시점에 이토록 중요한 선수 없이 남은 경기들을 치러야 하다니, 제주로서는 정말 아쉽기 그지없는 부분이지만, 박경훈 감독은 분명 구자철과 홍정호 없이도 잘해낼 수 있다고 인터뷰 하시겠지? 뭐, 실제로도 그리 된다면 좋겠지만 확실히 구자철이 없다면 그 빈자리가 클 것 같긴 하다.



05.


루이스와 진경선이 계속 측면으로 파고들면서 전북이 공격면에서는 앞서 나갔다. 하지만 제주의 수비진은 꽤 탄탄해서 쉽게 골을 내주지는 않는다. 그러다 후반 45분, 루이스와의 일대일 상황에서 김호준 골키퍼가 반칙을 범하며 페널티 킥을 허용하고 만다. 이 페널티 킥을 이동국이 성공하면서 전북은 1대0으로 앞서나가기 시작했고, 더불어 이동국은 K리그 통산 97골을 기록하면서 100골 경쟁을 하고 있는 김은중에 한 골 앞서나갔다.



06.


전반이 끝나기 직전에 한 골을 허용한 건 참 많이 아쉬웠다. 사실 전반전에 제주가 평소 같지 않은 모습을 보여서, 나는 일단 얼른 하프타임이 되길 바랐다. 평소의 제주 경기를 보면, 전반전에 뒤지다가도(또는 주고받는 공방전을 펼치다가도) 후반 들면서 전술을 바꿔 시원한 승리를 거두는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박경훈 감독이 상황에 맞게 전술을 바꿀 줄 알고, 그 전술에 대한 선수들의 이해도가 높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도 박경훈 감독이 그리 해줄 거라 믿었는데, 전반 종료 직전에 한 골을 내주고 만 것이다. 계속해서 전북에 역습을 허용하는 가운데서도 골을 내주지 않고 잘 버텼던 제주인데, 그런 식으로 선제골을 내주다니 참으로 아쉬운 장면이었다.



07.


그래도 후반 들며 제주는 좀 더 공격적으로 경기를 전개했다. 그리고 이런 제주를 막느라고 전북 수비수들의 옐로카드가 많아졌다. 그런데 문제는 결국 경기를 해결해줘야 할 김은중이 다소 고립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 날 전북이 가장 잘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김은중을 잘 막았다는 것이다. 전북은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 심우연에게 김은중의 전담 마크를 맡기는 동시에, 김상식 역시 틈틈이 김은중의 옆으로 가 더블 마크에 들어갔다. 그렇지 않아도 중원에서 밀리며 공수 연결이 잘 되지 않았던 제주의 입장에서는, 김은중마저 전북의 협력 수비로 인해 고립되어버리자 돌파구를 찾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08.


그 와중에 제주에서 공격에 활기를 불어넣은 선수가 있다면 그 선수가 바로 김영신이다. 개인적으로 이 경기의 MOM을 꼽자면 김영신이 아니었나 싶다.


제주에는 발 빠르고 많이 뛰는 측면 공격수들이 많다. 산토스와 네코, 배기종과 이상협, 이현호와 김영신. 이들은 제각각 조금씩 다른 강점들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크게 보면 비슷한 타입의 공격수들이다. 개인적으로는 여섯 모두 우열을 가리기 힘들 만큼 괜찮은 선수들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개인기가 좋은 선수는 산토스이고 가장 돌파력이 좋은 선수는 배기종이며 가장 슈팅이 날카로운 선수는 이상협, 그리고 가장 투지가 넘치는 선수는 이현호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날만은 그 어떤 공격수들보다도 김영신이 훌륭했다. 사실 지금까지는 김영신이 다른 측면 공격수들보다는 한 수 아래라고 여겨왔는데, 이 경기를 보니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전북전에서의 김영신은 빠르고, 부지런하고, 투지에 넘쳤다.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빈 공간을 잘 보고 들어간다는 것인데, 이러한 플레이가 상대 수비진을 흔들어 놓는 듯하다. 최근의 김영신은 시즌 초반보다 훨씬 더 대담하고 자신만만한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런 김영신이 후반 중반에 부상을 당하며 교체아웃되었다. 전날 경기에서는 대전의 공격을 주도하던 한재웅이 부상으로 나가더니, 이날은 김영신이라니. 어쩐 일인지 내가 인상 깊게 보는 선수들마다 부상이다. 뒤에서 이야기하겠지만, 제주는 남은 경기들에서 전력 누수가 큰 편인데 김영신마저 아프면 문제가 커진다. 제주가 일 년 내내 잘해온 것에 걸맞는 결과를 가져가려면, 이제부터는 카드도 잘 관리하고 부상도 좀 더 조심해야 할 것이다.



09.

 

그렇게 부상으로 김영신이 아웃되면서 고메스가 투입되었다. 이현호가 나오지 않을까 했는데 의외로 고메스였다. 그런데 결국 이 선택이 승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니 박경훈 감독의 선택은 이번에도 옳았다. 후반 31분, 구자철의 프리킥을 고메스가 헤딩슛으로 연결한 것이 골망을 흔들었다. 결국 경기는 1대1, 원점으로 돌아왔다.

골을 넣은 고메스.
좋아하는 제주의 선수들.
<photo by iris>

당사자들 입장에서는 피 말리는 경기겠지만,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한 재미가 없다. 10월 27일, 제주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리는 제주와 GS의 경기는 말 그대로 미리 보는 결승전이다. 이 경기에서 박경훈 감독은 어떤 지략을 가지고 나타날지 내심 기대가 된다. 재미있는 경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결과 또한 만족스러운 그런 경기 말이다.

 

우승컵과 MVP.
부디, 올해는 그런 것들이 김은중의 것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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