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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430] GS vs 제주,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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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430] GS vs 제주,

dancingufo 2011. 5. 1. 01:36


김은중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이상해,
잔뜩 비에 젖어서 고개를 숙인 모습.
어째서 그런 것들이 이렇게까지 마음 깊이 아플까.




내가 축구를 볼 때 감정 이입을 조금 덜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몇 만의 관중 속에서도 나만이 김은중을 보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지.
그리고 이러한 감정이입 때문에 축구가 조금 괴롭다.




패배하는 김은중을 보는 것이 괴로워.
그럴 때면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는 것조차도 너무나 힘이 들지.
축구가 그냥 축구이기만 하면 좋았을 거야.
그렇다면 패배 같은 것도 묵묵히 받아들일 수 있었을 거야.



하지만 김은중의 축구 앞에서는 그럴 수가 없어.
김은중은 내가 아는 축구의 전부지.

때로는 잊어버리고 외면하고 의심하거나 못마땅하게 여겼어.
더 훌륭한 것, 더 위대한 것을 생각하고 또 가끔은 더 애틋하고 더 설레는 쪽을 바라봐.

그런데도 김은중은 내가 아는 축구의 전부야.
나는 김은중을 통해서 축구를 알았고,
김은중을 통해서 축구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응원하는 것을 끝까지 믿는 것도,
패배와 실망 속에서 무너지지 않는 방법도,
오로지 김은중을 통해서 배웠어.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축구는 김은중의 축구지.
완벽하게 만족해본 적도 없고 이쯤에서 됐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어.
그래도 나는 김은중의 축구 앞에서 언제나 가슴이 벅차.
그것이 내가 아는 축구의 모든 것을 담고 있기 때문이지.




힘을 내라고 말하고 싶었어.
조금 늦게 시작해도 괜찮다고.
100골이든 최다골이든 그런 것도 말이야,
조급하게 생각할 필요가 조금도 없다고.

아프지 말라고도 말하고 싶어.
믿고 있다고,
아주 많은 것을 이겨내며 여기까지 오지 않았느냐고,
그러니 이제와서 새삼 힘이 들게 뭐가 있느냐고.




비가 내리고,
발목을 치고 들어오는 태클에 김은중이 넘어졌다.
웬만해서는 오래 주저앉아 있지 않는 김은중이,
경기장 밖으로 나와서 한참을 앉아 있었어.

그 순간, 요즘은 어전지 쉽게 잠이 들지 않는다던 말이 생각 났지.
뭔가가 불편한듯 고개를 갸웃하던 모습도.

어쩌면 김은중도 두려운 적이 있지 않았을까.
쉽게 실망하거나 비난하는 말들이 괴롭던 때도 있지 않았을까.




경기가 끝난 후, 비 속에서 고개를 숙이는 김은중을 보았어.
누군가는 환호하고 누군가는 울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김은중은 아주 잠깐 고개를 숙였을 뿐이지.
그리고 곧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후배들을 추스려서,
이쪽 관중석과 저쪽 관중석 사이를 오갔어.



만약 김은중이 화를 내거나,
실망하는 기색을 내비치거나,
아프다고 말을 하고,
힘이 든 내색을 하는 사람이었다면,
패배하는 김은중을 보는 일이 이렇게까지 힘들진 않았을 거야.




 김은중이 얼마나 괜찮은 선수인지 말로서 다 전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나의 말들은 이토록 진부하고 보잘 것 없어,
고작 김은중이 지금까지 몇 골을 넣었고,
어떤 힘든 시기들을 이겨냈으며,
앞으로도 잘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는 말 밖에 하지 못해서 슬퍼.

김은중이 내게 보여줬던 축구들.
그 모든 것들을 고마워하고 자랑스러워하지.

나의 축구는 김은중과 함께 시작되었고,
그리고 김은중이 없다면 축구의 의미도 달라질 거야.

바라는 것이 있다면 김은중의 마지막이 아름답고 영광되었으면, 하는 것이지.
그럴 수만 있다면 그 어떤 패배도 참아낼 수 있을 것 같아.
앞으로 나는 또 무엇을 보아야 하고,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까.

하지만 그에 대한 정답이 무엇이든 변함이 없는 것은,
끝까지 믿으면서 지켜보겠다는 거야.

힘을 내도록 하자.
지치고 피곤한 날들이 계속된다.
하지만 내일엔 새로운 달이 뜨고 곧 맑은 날이 올 거야.
그때까지 비를 맞는 시간은 그저 애잔한 추억이 될 수 있게끔,
힘을 내도록 하는 거야.

그렇게 할 수 있지?
셀 수 없이 많은 축구 선수들 속에서도,
언제나 가장 훌륭한 우리들의 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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