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2011년 5월 29일, 본문

아무도 모른다/2011.01 ~ 2011.12

2011년 5월 29일,

dancingufo 2011. 5. 29. 22:23

나에게 대전 시티즌은, 자랑스러운 팀이었다. 국가대표를 키워낸 적도 없고 AFC 같은 대회에 나가서 우승컵을 거머쥔 적도 없는 대전 시티즌을 K리그의 자랑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겠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팀이 대전 시티즌이라는 사실을 늘 자랑스러워 했다.

우리 팀은, 비록 늘 가난했고, 그래서 우승 같은 건 꿈도 못 꾸게 만드는 팀이었지만, 그래도 시민들의 팀이 되겠다고 마음 먹은 최초의 팀이었고, 그래서 지명 뒤에 기업의 이름 대신 '시티즌'이란 이름을 붙인 팀이었다. 우리는 비록 온전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팬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을 모으고 모와서 여기까지 왔고, 그러니까 십년이 지나고 백년이 지나도 연고이전 같은 건 할 리가 없는 '대전'만의 팀이었다.

그러니까 난, 내 팀이 자랑스러웠다. 우리는 기업이 마음을 바꿔 먹으면 하루 아침에 다른 도시로 옮겨갈 수 있는 그런 팀이 아니라고. 그 힘든 와중에도 우리는 리그에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는 선수들을 참 여럿 키워냈다고. 생각을 하면 뿌듯하고 흐뭇해, 지금까지 나는 단 한 번도 대전 시티즌을 부끄럽게 여긴 적이 없었다. 

그래, 그랬었고 그런 시간들이 나에게 있었고, 이제 그 시간들이 추억으로 남는다.

내가 슬픈 것은, 그 동안에 내가 해온 응원이 아깝기 때문이 아니다. 너희가 부끄러워서도 아니고, 승부 조작이 잘못된 일이기 때문만도 아니고, 내가 배신 당했다고 생각하기 때문도 아니다. 

그저 나는, 우리의 노장 골키퍼가 소리를 지르던 모습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 훌륭한 골키퍼가, 대전 시티즌을 사랑한 대가로 받은 것은, 실력에 걸맞지 않는 실점율이었고 그래서 나는 그 수치가 늘 마음이 아팠다. 우리가 한 골을 먹을 때마다, 최은성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 그것은 내가 이 골리의 팬이기 때문이 아니라, 오랜 시간 이 팀을 지켜보는 동안 어쩔 수 없이 이 사람의 진심을 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어이없는 실점을 한 후에 최은성이 소리를 지르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팠는데, 그랬는데, 너희는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대신 너희들은 그 앞에 서서 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며 몇 천의 돈을 받은 대가로 어떻게 하면 그럴 듯하게 실점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생각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견딜 수가 없다. 누군가는 패배를 괴로워하고, 진 경기를 반성하면서, 다음 경기를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너희는 그 속에 서서 그 모든 반성과 노력을 헛된 것으로 만들었다는 사실. 그 사실을 견딜 수 없고, 그래서 미운데, 미워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왜 그래야 했을까- 에 대해서 생각하는 내가 싫다.

그런 건 생각하지 말아야지. 그냥 뒤도 돌아보지 말아야지. 이게 기회다. 도망칠 수 있는 기회. 그러니까 퉤, 하고 침을 뱉고 축구란 게 이렇게 더러운 거라고 생각하면서 좋아하는 내내 너희가 날 기쁘게 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느냐고, 늘 패배에 마음 아프게 만들지 않았느냐고, 그래서 난 이제 패배에 익숙해져 더는 속상해하지도 않는 팬이 되었는데, 그랬는데 왜 이런 꼴까지 보게 만드느냐고 말하면서, 돌아서서 도망가야 하는 것이란 말이다.

내가 바란 것은 그냥 대전 시티즌이 없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축구를 해주는 것뿐이었다. 언젠가는 그리운 누군가가 돌아와 이곳에서 은퇴를 해주었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지만, 또 언젠가는 십 년이 지나고 이십 년이 지난 그 언젠가는 한 번쯤은 우승컵을 들어봤으면- 하고 꿈을 꾸기도 했지만, 그렇지만 사실 내가 진짜 바란 것은 그냥 대전 시티즌이 계속 이 자리에서 축구를 해주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실은 그게 축구가 아니었다고 하니까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너희는 잘못했다고 말하고, 미안하다고 말하고, 무릎을 꿇고, 그래서 울지만, 그렇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뭐가 있을까?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내가 마음이 아프다 하더라도 이제와서 내가 또 대전 시티즌을 자랑스러워 할 수 있을까? 내가 다시 이 모든 것을 믿고 마음을 걸면서 너희를 바라보고 서있을 수 있을까?

다시 사랑은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무언가가 사라졌다. 내 마음 속에 있었던 아름다운 무언가. 그게 뭐였는지 감히 짐작도 못할 거면서.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툭하면 꼴찌 비슷한 걸 하는 팀을 좋아하고 있는지 상상도 못하면서. 너희는 참 염치 좋게도 그 무언가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언젠가 어두운 퍼플 아레나에 앉아서 커피를 마셨던 적이 있다. 또 언젠가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퍼플 아레나가 너무 아름다워, 그 앞에서 내렸던 적이 있다.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가다가, 저 멀리 퍼플 아레나가 보이면 우리는 반갑다고 손을 흔들곤 했다. 우리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을 때는 기분이 어떠했더라. 그 주 내내 나는 어떤 기분으로 살았더라. 기억을 되짚어 돌아가다보면 너무 아름다워서 가슴이 아파. 김은중이 부상 때문에 움직이지도 못하는 팔을 하고선 역전골을 넣었던 순간을 너희가 기억할까. 이관우가 상대 골키퍼는 미처 움직이지도 못하는 사이에 프리킥 골을 넣던 순간은. 최은성이 15년 동안 대전의 골문 앞에서 무엇을 지켜냈는지 너희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장현규가 우리에게 왔던 순간은. 김창수가 퍼플 아레나에서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었을 때의 감동은. 어떤 날은 누군가의 등에서 눈부신 날개를 보았다. 또 어떤 날은 아버지 같고 스승님 같던 분을 떠나보내기 싫어서 울었다. 그 모든 시간 동안 나는 너희가 이겨도 좋았고, 져도 좋았고, 골을 넣어도 좋았고, 골을 넣지 못해도 좋았다. 그게 나의 대전 시티즌이었다. 그래,그게 나의 대전 시티즌. 

아마 한동안 많은 사람들이 대전을 욕할 것이고, 비웃을 것이고, 또 수많은 사람들이 참 쉽게 너희들에게 돌팔매질을 할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마음이 아플 것이고, 울고 싶을 것이고, 너희를 안아주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말이다. 그렇다 해도 나는 예전처럼은 안 될 것 같다. 다시 또 대전 시티즌이 좋겠지만, 예전과 같은 크기로 좋아할 수도 있겠지만, 예전과 같은 마음은 아닐 것이다. 무언가가 사라졌고, 추억은 그냥 추억이 되었다. 너희가 안쓰럽겠지만, 너희를 보고 기뻐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무언가가 달라진 것이다.

울지 말아라, 대전 시티즌. 때로는 눈물로도 달래지지 않는 것이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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