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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행제로/11season

[110702] 강원 vs 제주, 최고의 선물

dancingufo 2011. 7. 4. 02:47



 

01. 축구장에 가야겠다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밤에는, 개인적인 일이 있어 밤을 꼬박 새야 했다. 아침 6시가 넘어서야 잠이 든 나는, 8시에 일어나 출근을 하고, 오후 4시가 넘어 퇴근을 할 수 있었다. 게다가 회사를 나서는데 갑자기 비가 마구 쏟아져, 강변으로 가서 춘천행 버스를 타려던 나는 잠깐 주춤거릴 수밖에 없었다. 졸리고 피곤했다. 비도 왔고, 같이 춘천으로 갈 사람도 없었다. 춘천은 처음 가보는 곳이었고, 종합 운동장이니 시야가 좋을 리도 없었다. 그러니 그냥 집에 갈까? 집에 가서 편하게 씻고 앉아 문자 중계나 볼까?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사실 축구란 게 뭐 그리 대단한 것이라고 이렇게 피곤한 몸을 이끌고 춘천까지 가야 하나 싶기도 했다. 나는 더 이상 축구 때문에 무리하고 싶지 않았다. 정말이다. 난 축구에, 조금 지친 상태였다.


그런데도 축구를 보러 갔다. 왠지, 내가 가면 김은중이 골을 넣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2003년부터 이어져 온 징크스(?) 같은 것이었다. 내가 경기장의 W석에 앉아 있노라면, 김은중은 어김없이 골을 넣었다. 몇 경기 골이 없다 싶어서, ‘골 좀 넣으시란 말을 하러 왔습니다.’ 하고 찾아가면 김은중은 늘 인내심 없는 저의 팬에게 기분 좋은 골을 선사했다. 그래서 나는 춘천으로 갔다. 김은중이 골을 넣게 하려면, 내가 축구장에 가야만 할 것 같았다.



02. 아는 길도 물어가라!


그렇게 도착한 강변 터미널. 그리고 버스 티켓을 끊고 보니, 좌석 번호가 18번이었다. 예전에 나는, 대전에 내려갈 때면, 꼭 18번 좌석을 찾아 앉았다. 그렇게 하면 기분 좋은 결과를 볼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오늘은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18번 자리. 그래서 왠지 기분이 좋아진 나는 친구에게 멘션을 날렸다.


‘버스 탔는데, 좌석 번호 18번이다! 좋은 징조!’


응, 확실히 좋은 징조였다.


그리고 피곤에 지쳐 잠깐 잠이 들었다가 일어나니 어느 새 춘천으로 들어와 있었다. 터미널에 내리니, 6시 30분. ‘종합 경기장’은 ‘춘천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도보로 15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다기에(!) 경기 시작 전에는 충분히 도착 가능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마음껏 여유를 부리며, 현금 인출기를 찾아 현금을 좀 뽑고 편의점에 들러 음료를 한 병 샀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종합 경기장 가는 길을 물어보았는데(평소에 나는 모르는 길도 웬만해서는 물어보지 않건만),


이럴수가. 이럴수가! 알고보니 축구가 열리는 곳은 종합 경기장이 아니라 종합 축구장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거긴 여기서 머냐고 물었더니 걸어서 가려면 1시간은 걸린단다. 결국 헉, 큰일이다! 싶은 나는 후다닥 터미널을 빠져 나와서 택시에 올라탔다. 그리고 이번엔 혼잣말 멘션.


“늦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늦었다! 내 인생 늘 이래! 늦었다고 생각할 때만 늦은 게 아니구나. 그래서 난 또 택시 타고 휭~ 오늘도, 나는 달린다.”


하지만 다행히도 경기 시작 전에 경기장에 도착했다. 만약 그때 경기장 가는 길을 물어보지 않았다면, 나는 느긋하게 춘천 시내를 산책하며 엉뚱한 경기장으로 향할 뻔 했다. 하지만 숱한 헤맴의 결과로 ‘아는 길도 물어가라!’는 깨달음을 얻은 나는 다행히 적절한 시간에 경기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때부터는 헤매지 않기 위해 매표소도 물어서 바로 찾고, 경기장 들어가는 입구도 물어서 바로 찾고, 그리고 대충 자리를 잡고 앉으니 선수들이 입장한다.

 

음, 축구 경기. 진짜 오랜만이다.



03. 김은중의 선제골


김은중의 선제골은 전반 4분 만에 터져 나왔다. 산토스가 중앙으로 찔러 넣어준 힐패스를 김은중이 이어받았고, 김은중은 이를 아주 침착하게 골로 연결시켰다. 천천히, 데굴데굴,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골문 안으로 굴러 들어가는 그 골을 보면서 나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역시, 이번에도 느낌이 통했다. 나는 김은중이 골을 넣을 거라 생각했고, 김은중은 그 생각 그대로 정말 골을 넣었다.

 


04. 뜨거운 강원팬들


강원의 홈경기를 보는 것은 두 번째이다. 2년 전에 강릉까지 가서 원정 경기를 본 적이 있고, 그리고 이번엔 춘천에서 한 번 더. 그리고 그때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팬들의 열기는 뜨거웠다. 물론 경기장을 찾은 사람들은 많지 않아 관중 집계를 보니 고작 삼천여 명 정도를 넘어섰을 뿐이었다. 누군가는 강수일의 이름을 기억해내지 못해, ‘김수일인가? 윤수일인가보다!’ 하고 틀린 결론을 내리고, 또 누군가는 강원 편을 들면서도 ‘이을용 말고는 아무도 모르겠다.’고 말하지만, 그럼에도 강원팬들의 열기는 꽤 뜨겁게 느껴졌다. 시종일관 ‘강원 이겨라!’고 외치는 아이들의 극성스런 응원이 90분 내내 이어졌고, 제주의 매서운 공격에 ‘쟤들은 어쩜 저렇게 잘하냐?’고 불만스레 묻는 아주머니의 강원 편향도 확실했다. 승리나 패배, 순위나 스타 선수의 존재 여부, 관중의 많고 적음과도 관계없는 어떤 뜨거움이 강원팬들에겐 존재했다. 



05. 앞서나가는 제주


하지만 그런 강원팬들의 응원과는 관계없이 경기는 제주에 유리한 쪽으로 흘러갔다. 경기 시작하자마자 터졌던 김은중의 선제골에 이어 전반 27분, 두 번째 골도 제주 선수인 이현호의 발끝에서 나왔다. 상대 골키퍼도 어쩔 수 없는, 멋진 중거리 슈팅이었다. 지난해에는 리그에서만 4골을 터트렸던 선수인데 그리 많은 골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웬만해서는 볼을 빼앗기지 않는 드리블 실력과 남다른 돌파력 때문에 늘 눈에 띄는 선수였다. 이 선수가 올해는 영 결과를 내지 못한다 싶더니, 드디어 시즌 첫 골을 터트렸다.


그렇게 제주가 2대 0으로 앞서가자 나는 마음이 편해졌다. 축구란 게, 늘 끝을 알 수 없는 것이긴 하지만 제주는 웬만해서는 역전패를 당하지 않는 팀이다. 홈에서는 패하지 않고, 역전승을 잘 거두며, 한 골 차 승부가 많고, 선제골을 넣으면 지지 않는 제주. 그래서 제주의 축구는 재미있고 믿음직스럽다. 그래서 나는 마음속으로 제주와 (현재 2위인) 포항의 승점차를 계산하며 잘만하면 머지않아 2위로 올라설 수도 있겠구나- 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06. 따라잡는 강원


하지만 강원은, 흔히 상상하기 쉬운 꼴찌팀의 무기력함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보다도, 이런 팀이 어떻게 리그 최하위에 머물러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끔 만들었다. 중요한 순간마다 제주 선수들에게 인터셉트를 당하는 것이 아쉽긴 했지만, 강원은 계속해서 위협적인 역습을 시도했다. 강원의 공격은 빨랐고, 유현 골키퍼의 선방도 멋졌다.


그러다 전반 36분, 결국 이을용이 추격골을 넣는 데 성공했다. 9분 전에 터진 이현호의 골 만큼이나 멋진 골이었다. 제주에 김은중이 있다면, 강원에는 이을용이 있다는 걸 새삼 일깨워주는 골이었다. 제주의 캡틴 김은중을 고작 서른셋밖에(!) 안 된 ‘청춘’으로 느끼게 만드는 이을용은 올해 자그마치 서른일곱. (하지만 김은중이 이을용보다 선배이다. 김은중은 1997년 데뷔, 이을용은 1998년 데뷔) 그럼에도 여전한 킥력을 선보이는 이을용을 보고 있자니 새삼 축구가 젊음이나 힘, 에너지 같은 것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걸 알겠다.


그리고 그로부터 5분 후, 강원은 또다시 한 골을 더 성공하며 경기 상황을 원점으로 되돌려 놓았다. 이을용의 추격골 이후 분위기가 강원으로 기울어진 상태였기에, 전반을 이대로 끝내기만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김영후가 동점골을 넣었고, 그렇게 경기는 순식간에 2-2 동점이 되고 말았다. 제주가 두 골이나 앞서가다가 내리 두 골을 내주는 이런 상황을 처음 본 나는 (물론 지난달 18일, 전북과의 경기에서도 2-1로 앞서다가 2-3으로 역전패를 당하긴 했지만 난 이 경기를 못 봤으니까.) 당황스런 마음으로 앉아있는데, 내 주위에서는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다들 신이 났다. 원정 경기를 혼자 보러 오는 것은 이렇게 외로운 일이다. 나만 착한 편인 것 같고, 나머지는 죄다 나쁜 편인 것 같은 기분. 아니라면 다들 착한 편인 것 같은데 나만 나쁜 편인 것 같은 기분.


나는 그런 기분을 느끼며, 춘천송암스포츠타운 주 경기장에, 외롭게 앉아있었다.



07. 그리고, 승부를 결정짓다


후반전은 그야말로 일전일퇴의 팽팽한 승부였다. 제주의 공격, 강원의 역습, 패스 미스나 인터셉트, 다시 제주의 역습, 강원의 선방. 뭐 이런 흐름이 35분 동안 쉼 없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런 경기를 보고 있노라니 아쉬움의 탄성이 절로 커져,


‘아, 이런! 영신아, 제발. 현호야현호야, 너 뭐하니? 샤프, 골!’


이런 말들을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게 되었다. 그러다보면 뭔가 민망한 생각도 들지만, 경기가 너무 박진감이 넘쳐서 혼자라는 이유로도 더는 조용하게 앉아서 얌전히 경기를 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이런 나를 세상에서 가장 눈치 없고, 분위기 파악 못하며, 욕먹기 딱 좋은 축구팬으로 만든 것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김은중의 세 번째 골이었다.



08. 백 번째 골을 눈 앞에서


후반 35분, 강수일이 내준 공을 김은중이 이어 받았다. 김은중은 이것을 오른발 슈팅으로 연결했고, 이 슈팅은 그대로 강원의 골망을 시원하게 흔들었다. 이 골로 제주는 다시 3대 2로 앞서가기 시작했고, 골 침묵에 빠진 것 같던 김은중은 부활의 신호탄을 쏜 듯 했으며, 만약 김은중이 한 골을 더 넣는다면 오늘 통산 100골의 기록을 달성하겠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던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실, 줄곧 김은중의 백 번째 골을 생각하고 있었다. 50-50이나 통산 최다골 갱신 같은 것도 마찬가지였다. 벌써 2~3년 전부터 나는 내내 김은중이 앞으로 세워나갈 기록들을 생각하고 있었고, 만약 김은중이 어떤 기록을 달성한다면 부디 그 자리에 나도 함께 하고 싶었다.


그런데 김은중의 40-40을 눈앞에서 보았고, 그리고 백 번째 골도 이렇게 눈앞에서. 


그래서 나는 어떻게든 기쁨을 표현하고 싶었지만, 김은중이 다름 아닌 백 번째 골을 넣었다는 걸 아는 사람은 그 자리에 나밖에 없는 것 같았고, 그래서 외로워진 나는 나보다 더 오랫동안 샤프를 좋아해온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지는 않았지만, 그 짧은 대화 속에 김은중을 지켜보고 살아온 10년의 시간이 있었고, 그 10년을 생각하자니, 가슴 뻐근한 뿌듯함이 느껴졌다.



10. 최고의 선물

 

김은중은 나를 자랑스럽게 만드는 선수다. 세상엔 멋있는 선수가 많이 있고, 훌륭한 선수도 많이 있다. 김은중이 가장 훌륭하다고 말할 생각도 없고,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나는, 내가 축구팬으로서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은 수많은 선수 중에서 김은중을 좋아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때는 왜 김은중은 국가대표가 되지 못하는 거냐고 생각했다. 어째서 김은중은 유럽 진출 같은 건 꿈도 꾸지 않는 거냐고 탓했다. 대표팀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지 못한 것에 대해서, 한 번도 해트트릭을 달성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더 치열하거나 열정적인 태도를 보여주지 않는 것에 대해서, 때로는 못마땅하게 여기고 때로는 아쉽게 생각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런 나한테 김은중이 준 것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김은중이라면 분명히 다시 일어설 거라는 믿음이었다. 부상. 주전 경쟁. 팬들의 비난. 팀과의 불화. 그런 모든 어려움들을, 김은중은 이겨내고 극복해내고 그리하여 결국엔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올 거라는 믿음이었다. 나는 때때로 김은중을 걱정하기는 했지만, 불안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안타까워 한 적은 있어도 안쓰럽게 여길 필요는 없었다. 김은중은 강했고, 분명했으며, 그 누구보다도 믿어도 좋을만한 선수였다. 언제부턴가 나는 그런 김은중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되었고, 이런 뿌듯함은 선수가 팬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란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최고의 선물을 받은 것이다. 나는 김은중이 좋은 것 만큼이나 내가 김은중의 팬이라는 사실이 참 좋다.



11.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반 41분, 결국 산토스가 쐐기골까지 성공하면서 경기는 4대2, 제주의 승리로 끝이 났다. 이 골이 들어가자 내 뒤에 앉아서 강원의 슛이 골대를 빗나갈 때마다 짜증을 내던 열 살 남짓의 어린 소년은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아이가 짜증을 낼 때마다, 그러지 말라며 아들을 달래던 아버지는 결국 우는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 아이에게도 이 경기에서의 승리는 무척이나 간절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팠다. 계속해서 축구를 좋아하며 살아갈 것이라면, 앞으로 그런 눈물을 수도 없이 흘려야 할 것이다. 그러다 나중에는 익숙해져서, 더는 눈물도 나지 않아서, 어느 정도는 포기하고 또 어느 정도는 관대해져서, 울지 않게 되는 날도 올 것이다. 그러다 어떤 날 문득, 축구란 게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축구가 좋다는 것도 깨닫게 될 것이다.


사실 나는, 축구가 좀 지겨웠다. 내가 K리그를 보러 다닌 이후에, 올해만큼 경기장 가는 일이 뜸했던 해도 없었다. 내가 그토록 애달파했던 것들이 때로는 진실이 아니었다는 것에, 내 진심이 거부당했다는 생각에, 그래서 이제는 믿는다는 말이 할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우스운 것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에, 나는 지치고 허탈했다.


그래서 나는 도망갈 생각이었다. 여전히 인터넷을 하면 가장 먼저 축구 뉴스부터 챙겨 보고, 여전히 경기가 있는 날이면 각 팀들의 경기 결과를 확인하고, 또 여전히 나의 팀이 패배보다는 승리와 가깝기를 바랐지만, 그럼에도 나는 예전과는 같아지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그냥 축구를 즐기는 정도만 하겠다고. 다시는 축구 때문에 울거나 웃는 건 하고 싶지 않다고.


하지만 관중석에 앉아서, 축구를 하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여전히 그것들이 너무 예뻐, 나는 결국 조금 슬퍼졌다. 어째서 마음이 이런 것에 이토록 굳게 매어있는 것일까. 어째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한다.’라는 마음이 생기는 것일까. 나는 그럴 수 있다면, 축구를 그만 좋아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축구가 좋다는 걸 깨달았다.



12.  오늘 난 운이 좋다


그렇게 경기가 끝난 후, 경기장을 빠져 나왔다. 너무 기분이 좋아서, 혼자서 폴짝폴짝 뛰어서 경기장을 나왔다. 한 1000m쯤 달리라고 해도 달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날아갈 것 같은 기분으로 경기장 밖으로 나오긴 했는데, 나오고 보니 남춘천역까지 어떻게 가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하여, 버스 기사 아저씨를 붙잡고 물어보니 한 번에 가는 버스는 없고 갈아타야 된다고 말씀하신다. 그럼 택시를 타야겠구나, 싶어 큰 도로로 나왔으나 다니는 택시는 거의 없고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콜택시를 부른 후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그럼 나도 콜택시를 불러야겠구나 싶어 번호를 찾아보는데, 누군가 내 앞에 차를 세웠다.


그러니까, 좀 특이하게 생긴 차를 타고 있는 이 아저씨는, 내게 가는 데까지 태워다 주겠으니 타라고 했다. 사람 좋게 생기긴 했으나, 그래도 그렇지. 이 어두운 밤에, 이런 험한 세상에, 여자 혼자서 남자 혼자 있는 차를 타겠는가! 싶어 나는 그냥 웃었다. 괜찮습니다. 그랬더니, 아저씨도 웃는다. 안 탈 줄 알았죠. 요즘 세상이 하도 험해서. 그래서 그냥 머쓱하게 서있으니, 여긴 택시 잘 안 다닌단다. 그리고 차에 써있는 거 안 보이냐고. 그제야 봤더니, 교통 법규 지시 차량- 뭐 이런 큰 문구가 적혀 있다. 그렇다 해도, 설사 경찰 차량이라 해도, 옆에 다른 사람들도 많은데 딱 나만 태워다 주겠다는 것도 왠지 불안하여,


나쁜 사람 아닌 건 알겠는데, 그래도 안 탈래요.


했더니, 알았다고 아저씨도 웃으신다. 그리고 출발하시는데,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럼 탈게요-(;;) 하면서 나는 차를 탔다.


그러니까, 차를 타고 나서도 나는 내가 이걸 왜 탔지? 라고 한 열 번쯤 생각했으니, 앞으로는 절대!!! 이런 일이 있으면 절대!!! 모르는 사람의 차를 안 탈 것이다. 그런데도 이번에는 탔다. 나도 내가 이상한 건 안다. 하지만 가는 내내 그다지 불안하지는 않았다. 아까 택시를 타고 오는 길과 똑같은 길로 달렸고, 차 안이 좀 무섭게 생기긴 했으나 아저씨는 그 이후로 나한테 거의 말도 걸지 않았고, 나는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전화를 걸려고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었고, 아니 실은 그 모든 것과 무관하게 그냥 느낌이, 좋은 사람 같았다.


그리고 아저씨는 남춘천역 근처까지 와서야, 외지에서 온 것 같은데 어떻게 강원 경기를 다 보러 왔냐고 물으신다. 혼자서 원정 다닐 때마다 듣는 얘기다. 그래서 실은 제주 유나이티드 경기를 보러 왔어요- 했더니, 하긴 그렇겠지. 하시는 아저씨. 여긴 강원홈인데도 강원팬이 별로 없단다. 그래서 성적이 안 좋으니 더 그런 걸 거예요, 했더니 그러게 처음엔 그래도 칠천씩은 들었는데 이젠 삼사천도 잘 안 든다고. 혹시 경기를 보셨냐 했더니, 원래 하는 일이... 라며 뭐라고 설명은 하셨는데 잘 알아듣진 못했다. 그러니까 여하튼 경기장에 들어오는 차량과 관계된 일을 하시는 것 같았는데, 그래서 경기는 공짜로 볼 수 있단다. 그래서 오늘 경기도 보셨다고. '지긴 했지만, 강원도 잘 하더라구요. 경기도 재미있고.'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고작 그 정도뿐이었다. 그리고 내리면서, 감사합니다. 라고 세 번 이야기했고, 내린 후에는 택시비도 아꼈고 편하게 여기까지 왔으니 나 오늘 좀 운이 좋은데? 라고 생각은 했지만, 어쨌든 다시는 모르는 사람 차를 안 탈 거다(...) 왜냐하면 그건 좀 위험한 일이니까.


   

13. 축구장에 가야겠다


그렇게 나는 남춘천역까지 왔다. 내리는데 아저씨가, 육교를 건너서 가라고 길도 알려주셨다. 그래서 나는 진짜 좋은 아저씨군! 생각을 하며, 또 폴짝폴짝 뛰어서 육교를 건넜고, 1시간 30분쯤 혼자서 지하철 여행을 끝낸 후에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후에 김은중을 잘 알지도 못하는 언니를 붙잡고, 오늘 경기가 얼마나 멋졌는지에 대해 열변을 토한 후에 잠을 자려고 누우니,


새삼, 축구장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는 나도 축구장을 가지 않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축구가 한때의 열정으로만 남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아직은 축구가 좋은 것 같다. 그러니까 모든 게 다 부질없다는 내 생각이 맞을지라도, 실은 내 진심이 배신당한 것이 맞을지라도, 그렇다 해도 축구장에 가야겠다. 그 모든 걸 지켜봤는데도 여전히 이렇게 마음이 끌리는 것을 보면, 그곳에 내가 좋아하는 정말 아름다운 뭔가가 있는 것 같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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