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2011년 8월 13일, 본문

아무도 모른다/2011.01 ~ 2011.12

2011년 8월 13일,

dancingufo 2011. 8. 13. 23:02

중국에서 들어와 며칠 우리집에 묵고 있던 큰 언니가, 가만히 내 책장을 보고 있더니, 갑자기

"저렇게 많은 책을 다 읽었어?"

하고 묻는다. 그리 많은 책도 아니지만, 어쨌든 새삼스러운 질문이라 대답도 않고 쳐다 보았더니,

"저렇게 많은 게 머리속에 있다니, 네 머리속은 참 복잡하겠다."

라는 것이 이어지는 언니의 말이다.

큰언니는, 작은언니가 사회성이 없는 삶을 사는 것이 책속에만 빠져 살아서라고 생각한다. 나는 큰언니가 다독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올해 들어서야 처음 알았다. 사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런 사람들조차도 독서는 권장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독서가 인생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오히려 그것이 삶을 좋지 않은 방향으로 끌고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의 언니라니, 어쩐지 조금 당황스럽다.

문제는 큰언니 역시 책을 안 읽는 편은 아니었다는 데 있다. 어렸을 때, 기억에 따르면, 우리 가족 중 책을 읽지 않는 여자들은 없었다. 그런데 언니는 이제 나에게 

네가 책을 많이 읽어서, 그렇게 복잡한 삶을 사는 거야.

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릴 때 나는, 언니를 따라 만화방에 처음 갔다. 그곳에서 <17세의 나레이션>과 <별빛속에>와 같은 강경옥의 만화를 처음 만났고 우리 자매들은 모두 다 웬만한 소설보다 훨씬 더 감동적인 강경옥의 만화를 매우 좋아했다. 그리고 그 만화방에서 언니가 빌려왔던 <태백산맥>과 <아리랑>을 우리는 셋이서 번갈아가며 읽었고,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데미안>도 언니의 책장에서 꺼내 읽은 책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냉정과 열정 사이>를 굳이 중국까지 들고가 끝내 돌려주지 않았던 것도 큰언니이고, 내가 꼭 읽어보라고 몇 번을 거듭하여 추천했던 <마당을 나온 암탉>을 앉은 자리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낸 것도 큰언니였다. 그런데 왜 언니는 이제와서, 책을 너무 많이 읽는 건 좋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된 것일까.

항상 큰언니는 나에게 특별한 의미의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언니의 말 때문에, 다시 또 꽂을 자리가 없어 빼곡히 책이 쌓여가는 내 책장이 부끄러워졌다. 내가, 사람들이 어른이라고 말하는 나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방황하고 꿈을 꾸며 어디론가 떠날 생각만 하는 것이 책의 탓이 되어버리 것 같아서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내가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은 책을 읽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보다 훨씬 덜 괜찮은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이 정도로나마 살고 있는 것이 책을 읽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언니에게 이해시킬 수 없어서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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