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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도 눈물도 없이

김어준, 닥치고 정치

dancingufo 2011. 11. 13. 23:17


  [대선 정도면 명실상부한 메가 트렌드라고. 5년에 한 번 대중의 마음이 국가적으로 움직이는 거니까.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느냐를 이 관점에서 예측할 수 있다는 거지. 5년간 대통령 하면, 그게 누구든, 어떤 방식으로든, 때론 그의 장점조차, 사람을 피로하게 만드는 부분이 반드시 있거든. 그로 인한 피로감, 그리고 그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결핍을 메우려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된다고. 

  그렇게 이명박이 결여한 부분. 사사롭고, 약속 안 지키고, 말 뒤집고, 거짓말하고, 이권만 챙기고, 자기들만 해먹고, 그래서 이명박이 피로하게 만드는 부분, 겁나고 자조하고 자괴하고 비루하게 만드는 그 부분에 지쳐서 이제 사람들은 이명박이 아닌 것의 합집합을 찾고 있는데, 바로 그 지점을 선점한 게 박근혜야. 최근까지는 선점 정도가 아니라 독점을 해왔다고봐야지.
  그런데 유시민이나 손학교의 강점은 거기 있지 않거든. 사람들은 이제 이명박이 아닌 것의 합집합을 찾는데, 진중하고, 사사롭지 않고, 약속 지키고, 속이지 않는 사람, 그런 가치가 요구되는 시대적 타이밍인데, 유시민은 그 요청에 응답할 자질의 측면에서 사람들 머리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아니라고. 물론 내가 아는 실제의 유시민은 그런 자질이 있고도 남지만 대중이 가진 이미지의 평균으로는 아니라고. 그래서 박근혜가 선점한 그 지점에서 박근혜와 맞부딪쳐 이길 수가 없다고. 이건 참여당과는 무관해. 참여당이 있든 없든, 전직이 이명박인 상황에서 차기를 놓고 박근혜와 싸울 자로 유시민은 아니라고. 손학규는 말할 필요도 없고.

  문재인. 똑같은 지점에서 맞설 수 있는 사람은 문재인 밖에 없다고 생각해. 사사롭지 않고, 진중하고, 의리 저버리지 않을 것 같고. 박근혜가 강한 지점과 정확히 일치하는 강점을 가졌어. 그런데 문재인 스스로는 자신의 약점을 언급하면서 자질이 없다고 하지. 문재인은 이런 식으로 표현하거든. '나한테 정치하라는 것은 음치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상황에선 그런 자기 분석이 틀리지 않았어. 노무현은 대중 앞에 나서는 걸 즐겼고, 이야기하다 보면 스스로 신이 나고 흥이 났던 사람이야. 10분 얘기할 자리에서 한 시간도 이야기할 수 있었던 양반이니까. 지식인과 연예인의 자질을 동시에 갖추어야 대중정치인으로 성공할 수 있는데, 노무현은 둘 다 가진 사람이었어.
  그런데 문재인은 자기한테는 그런 연예인 기질이 전혀 없다고 말하고 있는 거거든. 자신에게는 대중정치인으로서 성공할 수 있는 자질이 없다, 그게 문재인의 자기 인식이야. 그게 일반으론 틀린 분석이 아닌데, 이번 대선에선 틀린 이야기야. 이번 대선에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자질은 그게 아냐. 유려한 화술이나, 선동적인 수사나, 매끈한 제스처가 아니라고. 이번엔 어눌해도 전혀 상관없어. 느려도 자기 할 말만 하면 돼. 거기서 진정성이 느껴지기만 하면.
  그런데 그런 종류의 진정성이란 건 훈련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타고난 애티튜드에서 나오는 거라고. 그런데 문재인은 그게 있다고. 그래서 문재인 스스로 단점으로 생각하는 게 사실은 이번 대선에선 오히려 최대의 강점이라고. 박근혜를 봐. 말을 잘해, 말을 많이 해, 박근혜도 바로 그런 애티튜드를 타고났거든. 그래서 문재인은 지금 그대로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게 나의 주장이야.]

  [흔히 문재인의 문제점으로 권력의지가 없다는 걸 지적한다고. 하지만 그건 권력의지라는 말의 정의를 협소하게 해서 그런 거야. 문재인에게 내가 하고 싶다, 내가 해야 한다는 식의 권력의지가 없는 건 맞아. 일반적인 정치인들은 내가 하고 싶다, 나는 자격이 된다, 거기가 출발점이지. 그리고 되어야겠다, 어떻게 하면 될까로 연결되지. 그런 욕망을 권력의지라고 부르는 거고.
  그런데 문재인 같은 사람들은 그 순서가 달라. 거꾸로라고. 문재인 같은 사람들은 자신을 도구화할 줄 알거든. 유시민, 노무현 그런 사람들은 어떤 상황 앞에서는 그 대의를 위해 스스로를 도구화하고, 그래서 이런 식으로 생각이 흐르지. 내가 도구가 되는 게 의미가 있으려면 적합한 도구여야 한다. 출발점이 거기야. 그런데 과연 내가 그런 도구로서의 자질이나 자격이 있는 것인가. 문재인의 경우는 자신에게 그런 자질이 없다고 스스로 진단한 순간, 거기서 딱 정지한 거야.
  내가 나가서는 이길 수 없다. 왜냐, 정치인의 자질이 없으니까. 그래서 남의 기회만, 예를 들면 유시민의 기회나 빼앗고 우리 진영의 에너지만 낭비시키고 결국 정권 교체의 기회를 놓치게 만들 거다. 이런 생각. 이런 사람에게 일반적인 의미의 권력 의지를 묻는 건 번지수를 완전히 잘못 찾는 거지. 그런데 난 문재인이 딱 멈춘 그 지점, 자질이 없다고 생각한 바로 그 지점이 오히려 이번 대선에선 최대 강점이 되는 지점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거지.

  문재인과 박근혜의 차이는 무엇인가. 박근혜의 사사롭지 않음은 사사로울 필요가 없어서 사사롭지 않은 거야. 아버지가 국가고, 정치는 제사고, 생활은 관념이니까. 사사로울 이유가 없는 거야. 하지만 문재인의 사사롭지 않음은 문재인의 선택이라고. 얼마든지 사사로울 수 있었으나 품성과 지성의 힘으로 사사롭지 않은 길을 선택한 거라고. 누구든 박근혜의 자리에 있으면 사사롭지 않을 수 있어. 하지만 아무나 문재인의 자리에서 사사롭지 않을 수는 없는 거야.]

  [이명박 같은 자가 그런 남자를 죽이다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내가 노무현 노제 때 사람들 쳐다볼까 봐 소방차 뒤에 숨어서 울다가 그 자리에서 혼자 결심한 게 있어. 남은 세상은,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그리고 공적 행사에선 검은 넥타이만 맨다. 내가 슬퍼하니까 어떤 새기까 아예 삼년상 치르라고 빈정대기에, 그래 치를게 이 새끼야, 한 이후로, 봉하도 안 간다. 가서 경건하게 슬퍼하고 그러는 거 싫어. 체질에 안 맞아. 나중에 가서 웃을 거다. 그리고 난 아직, 어떻게든 다 안 했어.

  그럼 어떻게 할 계획인데?

  그래서 어떻게든 하기 위해, 최근 방송 하나 만들었다. 스마트폰용으로 <나는 꼼수도>라고. 얼마 전 시작했는데 아직은 사람들이 몰라. 하지만 이거 대박 난다. 안 나면 말고. (웃음)]

  [이명박을 싫어하는 범진보 진영의 마음 중 가장 큰 덩어리를 차지하는 정서의 속성을 표현할, 가장 적확한 단어가 뭐냐. 노무현이야. 믿건 말건, 이건 내가 노빠인 것과 무관해. 노무현이라고 묶이는 정서는 그런 거야. 논리로 무장한 이념적 진보 말고, 그냥 타고난 경향성, 내가 맨 앞에 이야기했던 기질적이고 정서적인 진보성, 학습의 세례를 받지 않아 정교하진 않지만 인간에 대한 이해가 보수의 그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감수성. 그 구분은 쉬워. 그런 감수성을 가진 사람들만 노무현을 잃고 울었다. 노무현 서거에 울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을 진보라고 하든 보수라고 하든 상관없이, 이 바운더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울었어야 옳다는 게 아니야. 감수성이 다르단 거지.
  국민참여당은 그중에서도 그 감수성이 가장 예민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야. 그들은 노무현을 잃었을 때 자기 자신의 장례식을 치른 거야. 무슨 소리냐면, 노무현은, 내가 아주 어린 시절 옳다고 배운 모호한 정의에 대한 감각, 우리 편은 이기고 나쁜 놈은 진다는 수준의 정의에 대한 감각, 그래서 나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반드시 그렇진 않다는 걸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지만 여전히 그런 게 있다고 믿고 싶은 그 정의에 대한 원형질에 가까운 감각이, 사람으로 체화된 상징이야. 그래서 노무현의 죽음은, 아직도 내 안 어딘가에서 살아 있던, 그런 단순한 정의를 믿었던 어린아이의 동반 죽음이야. 내 안의 어린 아이가 죽은 거라고.]

  [아, 유시민. 지금 현존하는 정치인 중에서 유시민처럼 오해받는 정치인이 또 있을까. 유시민은 이제 권력욕에 불타는 권모술수의 화신이 되어버렸잖아. 나, 유시민 잘 안다. 정치인 중 가장 많이, 그것도 주기적으로 인터뷰했고, 그 지역구의 주민으로 마실에서 만나던 사이고, 그 누님들도 잘 안다. 그래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 유시민은 권력의지가 졸라, 아주 졸라 없는 사람이야. 내가 유시민에 대해 가진 가장 큰 불만이지. 그럴 거면 정치를 하지 말든가. 시작했으면 불타는 권력의지를 발휘하든가.
  유시민에 관한 모든 오해는 바로 거기서부터 출발해. 유시민을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반드시 권력을 쟁취하려는 모사꾼으로 바라보는 그 지점. 정말 그렇게 불타는 권력의지로 잔꾀를 부리다가 지금 그 꼴이 되었으면 억울하지나 않지. 그런데 대중의 그런 오해가 이해가 될 만도 한 것이, 유시민의 행보는 기존 정치의 문법으로는 잘 이해되지 않거든. 저 사람이 왜 저러지. 그래서 결국 기존 문법 중에서 가장 음흉한 놈을 들이대서 해석할 수밖에 없지. 그걸 여기서 일일이 설명할 순 없으니까 건너뛰자. 여기선 유시민이 주인공이 아니니까.
  두 가지만 짚어두자면, 유시민은 그런 사람이 결코 아니다. 유시민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순정한 사람이다. 바로 그 순정함 때문에 더 오해를 받는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유시민이 국민참여당을 이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지만, 아니다. 국민참여당의 탄생 근거와 목적과 정서를 이해하는 유시민이, 그 놈의 타고난 책임감 때문에, 국민참여당에 끌려가고 있는 거다. 유시민을 죽이고 있는 건 바로 국민참여당이다. 이 말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는 국민참여당 지지자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싶다만. 노발대발하는 국민참여당 당원들의 목소리가 벌써 환청으로 들리는구나. 유시민이 작년에 내게 이야기했지. "참여당의 지지율을 내 지지율만큼 끌어올리는 것이 내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대답했지. "유시민의 지지율이 참여당의 지지율만큼 끌려 내려갈 일만 남았다."
  유시민은 자기를 도구화하는 사람이거든. 이게 대다수 기성 정치인과의 결정적 차이야. 자기가 여기에 쓰일 도구라는 것을 이해하고, 그것을 거부하지 못하는 사람이지.] 

  [유시민은 자신을 위해 그 길을 가는 게 아니야. 유시민은 소년 가장이야. 소년 가장이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입양되는 거야.]



나는 늘, 유시민을 생각했다. 꼭 유시민이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늘 유시민을 생각했다. 문재인이라면 좋겠지. 아주 훌륭하겠지. 유시민이 문재인의 손을 잡고, 노통의 손을 잡고 웃었을 때처럼, 그렇게 다시 한 번 웃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너무나 행복하겠지. 만약 2012년이 박근혜가 아니라 문재인의 것이 된다면, 이라고 상상만 해도 나는 가슴이 두근거린다. 문재인은 아주 훌륭한 사람이야. 반듯하고 옳고 신중하고 정의롭지.

하지만 유시민은 안 될까? 나에게 유시민은 사리취의, 사생취의, 그런 것들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나는 유시민은 정말 안 되는 걸까? 하고 자꾸 묻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유시민이 안 된다고 하면,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거지만, 그래도 평생 내가 가지고 싶었던 두 번째 대통령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것이다. 




아, 그리고 <닥치고 정치>에 대해 한 마디 하자면, 나 정말 정치에 대해 아는 거 없는 사람인데, 그래도 이 책 너무 재미있어서 하루 반만에 다 읽었다. 혹시나 어려운 이야기 아닐까 고민들 하지 말고, 실은 나꼼수보다 더 쉽게 이해할 만한 내용들이니까 꼭들 읽어보시라고. 읽고 나서 제발 우리 다음 대선 제대로 하자. 이명박만으로도 충분히 암울한데 그 다음이 박근혜라고 생각하면 너무 갑갑하다. 그러니까 꼭 누구여야 한다는 게 아니라, 어쨌든 박근혜는 아니야. 왜 아닌지 다들 읽고 생각 좀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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