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2012년 1월 4일, 외딴 방 본문

아무도 모른다/2012.01 ~ 2012.12

2012년 1월 4일, 외딴 방

dancingufo 2012. 1. 5. 01:46



  [풍속화 속의 고독의 날들 속에서 내가 자주 힘겹게 떠올린 건 도시로 나오던 그 날 밤, 외사촌이 보여준 사진집 속의, 아득한 밤하늘 아래, 별을 향해 높고 아름답게 잠든 새들이었다. 나, 그들을 내 눈으로 보러 갈 날이 있을 것임을 힘겹게 나에게 기약하며 그 풍속화 속에서의 나날들을 살아내곤 했다. 훗날, 살아가는 피로와 관계의 부재 속에 처절하게 외로워졌을 때도, 그날 밤 외사촌이 들고 있던 화보 속의 새들, 백로들. 숲속에, 밤이 온 숲속에, 마치 세상의 모든 일들을 다 용서한 듯, 서로 올망졸망 기대어 숲을 아름다이 잠으로 뒤덮고 있던 백로들의 무리를 내 눈으로 버라 가겠다는 마음 버리지 않았다. 나, 언젠가, 기차의 창틀에 팔을 흔들리며, 눈앞을 가로막는 능선을 넘어서 가리라고, 절망과 고독의 날일수록 남몰래 나에게 기약하였다.

  그 기약으로부터 십육 년.
 
  나는 아직 새를 보러 떠나지 못했다. 잊은 건 아니다. 잊기는...... 오히려 연년세세 내 마음속의 하얀 백로들 더욱 눈부시게 도드라지며 내 기약을 아로새기는 날들이 많아졌다. 피로한 발바닥을 주무르다가도, 아직 가보지 못한 그 숲속, 별을 향하고 잠들고 있을 나무 위의 백로의 무리를 생각하면, 내 피로가 가져다주는 고단함은 물론이고 간혹 찾아드는 기쁨들하고조차 웬일인지 덤덤해질 수 있었다. 쓰라리게 느껴지던 불행도, 여러 날 계속 내리는 찬비 같은 고독도, 왠지 쓰잘데없이 느껴져서 그 힘으로 다시 다음날을 맞이하고 살아갈 수 있었다.

  하나, 지금 이 이름, 희재언니, 그녀의 부재가 이루어지던 그때의 그 아득한 슬픔 속으로도 그 백로의 무리가 날아들었는지, 그때도 언젠가 그 숲속에 가보겠다는 내 마음속의 기약을 아로새길 수 있었던 것인지.]


- 신경숙, <외딴 방> -


Comments